역대 국사교과서Ⅴ. 사회 구조와 사회 생활4. 근대 태동기의 사회[3] 사회 변혁의 움직임

사회 불안의 심화

신분제의 동요는 양반 중심의 지배 체제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왔다. 지배층과 농민층의 갈등은 깊어지고,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농민 경제는 파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농민의 의식은 점차 높아져 곳곳에서 적극적인 항거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탐관오리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 갔고, 재난과 질병이 거듭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농민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메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백성 사이에는 비기, 도참설이 널리 퍼지고, 서양의 이양선까지 연해에 출몰하자,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 사회 불안이 점점 더해 감에 따라 각처에서는 도적이 크게 일어났다. 화적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부상을 공격하였고, 수적은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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