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민족 문화의 발달1. 고대의 문화[3] 고대인의 자취와 멋

건축과 탑

고대의 건축은 궁궐, 사원, 무덤, 가옥에 그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고분과 건축 터를 통하여 이 시대의 건축을 짐작할 수 있다.

궁궐 건축으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장수왕이 평양에 세운 안학궁이다. 이 궁궐 터는 사각형 한 면의 길이가 620m나 된다. 사원 건축으로는 신라의 황룡사와 백제의 미륵사가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크다. 가옥 건축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 구조가 일부 보인다.

삼국 시대에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여 예배의 주대상으로 삼던 탑도 많이 건립되었다. 고구려는 주로 목탑을 건립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은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를 계승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부여에 남아 있다. 신라의 탑으로는 황룡사 9층탑과 분황사탑이 유명하다. 분황사탑은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으로,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다.

삼국 시대에는 방어를 위하여 성곽을 많이 축조하였다. 돌로 쌓은 산성이 대부분이고 지형에 따라 흙으로 쌓기도 했는데, 산의 능선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쌓은 것이 특징이다.

통일 신라의 궁궐과 가옥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사원을 많이 축조했는데, 그 중에서 8세기 중엽에 세운 불국사와 석굴암이 통일 신라의 사원 건축을 대표한다.

불국사는 불국토의 이상을 조화와 균형 감각으로 표현한 사원이다. 정문 돌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직선과 곡선을 조화시켰으며, 축대는 자연의 선에 인공적으로 맞추어 자연과 인공을 연결시키고 있다. 복잡하고 단순한 좌우 누각의 비대칭은 간소하고 날씬한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복잡하고 화려한 다보탑과 어울려 세련된 균형감을 살리고 있다.

인공으로 축조한 석굴 사원인 석굴암은 네모난 전실과 둥근 주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좁은 통로로 연결하고 있는데, 주실의 천장은 둥근 돔으로 꾸몄다. 전실과 주실, 그리고 천장이 이루는 아름다운 비례와 균형의 조형미로 석굴암은 건축 분야에서 세계적인 걸작으로 손꼽힌다.

한편, 안압지는 통일 신라의 뛰어난 조경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안압지의 연못, 인공섬, 구릉과 건물은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꾸며졌다.

발해의 지상 건물은 궁궐 터나 절터를 통하여 당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상경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건설하였다.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다. 궁궐 중에는 온돌 장치를 한 것도 발견되었다. 사찰은 높은 단 위에 금당을 짓고 그 좌우에 건물을 배치하였는데, 이 건물들을 회랑으로 연결하였다.

통일 신라에 들어와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을 완성하였다. 통일 신라 초기의 석탑으로 대표적인 것은 감은사지 3층 석탑이다. 불국사에는 통일 신라 석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3층 석탑과 높은 예술성과 빼어난 건축술을 보여 주는 다보탑이 있다.

신라 말기에는 석탑에서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긴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또,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다.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한다. 이런 승탑과 탑비는 지방 호족의 정치적 역량이 성장하였음을 반영하고 있다.

팔각원당형 승탑

전체 평면이 팔각을 이루는 승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부는 물론이고 그 위에 놓이는 탑신부, 옥개석, 상륜부까지 모두 팔각으로 조성되었다.
황룡사(경북 경주) 복원 상상도
미륵사(전북 익산) 복원 상상도
발해 상경 용천부 평면도
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
불국사 3층 석탑(경북 경주)
진전사지 3층 석탑(강원 양양)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전남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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