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민족 문화의 발달2. 중세의 문화[4] 귀족 문화의 발달

글씨, 그림과 음악

고려 문화의 귀족적 특징은 서예, 회화, 음악에서도 나타났다. 서예는 고려 전기에는 구양순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왕희지체의 대가인 탄연의 글씨가 특히 뛰어났다. 후기에는 송설체가 유행했는데, 이암이 뛰어났다.

그림은 도화원에 소속된 전문 화원의 그림과 문인이나 승려의 문인화로 나뉘었다. 뛰어난 화가로는 예성강도를 그린 이령과 그의 아들 이광필이 있었으나, 그들의 그림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 후기에는 사군자 중심의 문인화가 유행하였으나, 역시 전하는 것은 없다. 다만, 공민왕이 그렸다는 천산대렵도가 있어 당시의 그림에 원대 북화가 영향을 끼쳤음을 알려 주고 있다.

한편, 고려 후기에는 왕실과 권문세족의 구복적 요구에 따라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 그 내용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불도와 지장보살도 및 관음보살도가 많았다. 일본에 전해 오고 있는 혜허가 그린 관음보살도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불교 경전을 필사하거나 인쇄할 때, 맨 앞장에 그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한 사경화도 유행하였다. 이 밖에, 사찰과 고분의 벽화가 일부 남아 있는데,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대표적이다.

고려 시대의 음악은 크게 아악과 향악으로 구분된다. 아악은 송에서 수입된 대성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된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격조 높은 전통 음악을 이루고 있다.

속악이라고도 하는 향악은 우리의 고유 음악이 당악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것인데, 당시 유행한 민중의 속요와 어울려 수많은 곡을 낳았다. 동동, 한림별곡, 대동강 등의 곡이 유명하였다. 악기는 전래의 우리 악기에 송의 악기가 수입되어 약 40 종이나 되었다고 한다.

구양순체와 송설체

구양순체는 당나라 때 구양순의 굳세고 힘찬 글씨체이며, 송설체는 원나라 때 조맹부의 유려한 글씨체이다.

구복(求福)

복을 구하는 것

아악(雅樂)

고려 때 송나라에서 수입된 궁중 음악으로, 주로 제사에 쓰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문묘 제례악이 여기에 해당한다.
탄연의 글씨(문수원 중수기)
부석사 조사당 벽화(경북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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