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민족 문화의 발달5. 근⋅현대의 문화[2] 일제의 식민지 문화 정책과 국학 운동의 전개

문학과 예술 활동

일제 강점기의 문학과 예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봉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1910년대 문학계에는 이광수 등의 활동으로 근대 문학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3⋅1 운동 이후에는 동인지를 중심으로 예술성만 추구하고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반면에, 동인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은 김소월은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시대 의식을 반영하였다. 한용운 역시 항일 운동의 민족주의 노선을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예술성과 작품성을 강조하는 순수 문학 경향도 대두하였다.

대륙 침략 이후 일제는 우리 문학 활동을 본격적으로 탄압하면서 군국주의 찬양을 강요하였다. 일부 문인은 일제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육사, 윤동주 같은 저항 시인의 활동도 활발하였다.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미술계에서는 전통 회화의 창조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서양식 유화가 새로운 미술 장르로 자리잡았다. 일제의 수탈을 비판하는 풍자화도 등장하였다.

연극계에서는 3⋅1 운동 이후 근대 연극이 도입되어 극예술 연구회를 중심으로 민족적 비극을 무대 예술화하였다. 그러나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탄압과 강요로 일제의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연극 외에는 공연할 수 없었다.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1930년대 이후 일제는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예술 활동을 통제하고 탄압하였다. 이 때, 일부 예술인이 변절하여 친일 활동을 전개한 사실은 광복 후 예술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계급 문학

임화, 김기진, 박영희, 최서해 등은 카프(KAPF)라는 문학 단체를 결성하여 계급 문학을 확산시켰다.
이육사
윤동주
나운규와 영화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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