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3. 신라의 삼국 통일[1] 고구려가 수⋅당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안시성 싸움

수가 망한 뒤에 중국을 통일한 당은 건국 초기에는 고구려와 화친을 꾀하였다. 수와 전쟁할 때 잡힌 포로들을 서로 교환하기로 하여 고구려는 1만여 명의 포로를 송환하였다.

그러나 당 태종이 즉위한 뒤부터는 두 나라의 관계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 당 태종은 세계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주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는 한편, 고구려에도 압력을 가해 왔다. 이에 고구려는 랴오허 강 주위의 국경선에 천리장성을 쌓고 당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이 때,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비롯한 여러 대신을 제거하였다.

이어 연개소문은 왕의 조카를 보장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대막리지가 되어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연개소문은 강경한 대외 정책을 써서 신라와 당에 맞섰다. 백제와 힘을 합해 신라에 대한 공격을 한층 더 강화하였으며, 신라에 대한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당의 간섭을 단호히 물리쳤다.

이에 당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삼아 고구려에 쳐들어왔다. 당 태종은 육군과 수군으로 양쪽에서 공격해 왔다. 먼저, 랴오허 강을 건너 요충지인 요동성, 백암성 등을 차례로 함락한 후. 안시성을 공격하였다.

안시성은 조그마한 산성이었지만 서쪽 변경의 중요한 요새였다. 안시성은 당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하루에도 6, 7회의 공격을 받았으며, 마지막 3일 동안 총공격을 받았으나 함락되지 않았다. 안시성에서는 성주를 비롯한 모두가 굳세게 저항하여 끝내 당군을 물리치고 성을 지킬 수 있었다(645).

그 후에도 고구려는 당의 침입을 몇 차례 받았으나, 이를 모두 물리쳤다. 고구려가 수⋅당과 거듭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잘 훈련된 군대와 성곽을 이용한 견고한 방어 체제, 탁월한 전투능력 및 요동 지방의 철광 지대 확보, 그리고 굳센 정신력에 있었다.

수⋅당의 침입에 맞서 고구려가 거둔 승리는 우리 역사상 매우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당시 수⋅당은 고구려를 정복하여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가 이들을 물리침으로써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안시성 싸움

당은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60여 일 걸려서 흙으로 높은 산을 쌓고 이를 발판으로 하여 성을 공격하였으나, 끝내 함락하지 못했다.
고구려와 당의 전쟁
안시성 | 중국 요령성
말 탄 무사(쌍영총 벽화) | 평남 용강
백암성 | 중국 요령성 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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