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3. 신라의 삼국 통일[2]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과정은?

나⋅당 전쟁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은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게 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신라에도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지배하려고 하였다.

이에 신라는 당군을 몰아 내기 위한 전쟁에 나섰다. 먼저, 신라는 백제의 옛 땅을 찾기 위해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지원하였다. 고구려 유민들을 이용하여 당 침략군을 몰아 내려고 한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도록 하였다. 아울러, 신라군은 당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을 함락하여 웅진 도독부를 없애고, 백제의 옛 땅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당군은 말갈군과 거란군을 앞세워 계속 침범하였으나, 신라는 장기간의 끈질긴 항쟁으로 이들을 물리쳤다. 신라군은 당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크게 물리쳐 군마 3만 마리와 많은 무기를 빼앗았으며, 당의 수군을 금강 하류 기벌포에서 격파하였다. 이렇게 당 침략군을 계속 물리친 신라는 드디어 대동강 이남 땅에서 당군을 완전히 몰아 냄으로써 통일을 이룩하였다(676).

신라의 삼국 통일은, 그 과정에서 중국 세력인 당의 도움을 얻었다는 점과 대동강 이남 지역에 한정되었다는 점에 한계가 있으나, 우리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 민족이 이룬 최초의 통일로서, 새로운 민족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신라가 당의 야욕을 물리치고 통일을 완수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인의 자주적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도움글

⋅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 운동 ⋅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 도독부 등 5도독부를 두고 평양에는 안동 도호부를 두어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직접 지배하고자 하였다.
먼저,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백제인들은 침략자들을 몰아 내려는 싸움을 계속하였다.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은 주류성에서, 흑치상지임존성에서 각각 군사를 일으키니, 200여 성이 호응하여 그 기세가 드높았다. 이들은 일본에 가 있던 왕자 풍을 맞아들여 왕으로 삼고, 사비성을 포위하여 여기에 주둔하고 있던 당군과 신라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백제 부흥 운동은 지도층의 내분으로 실패하였고, 이를 도우러 왔던 일본 세력도 백강(금강 하류)에서 격퇴되었다.
한편,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 유민들도 곳곳에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검모잠은 보장왕의 아들 안승을 왕으로 받들고 당군과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패하였고, 그 유민들은 신라에 포섭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안승금마저에 머물도록 하였다. 요동 지방에서도 보장왕과 그 손자 보원이 부흥 운동에 힘썼으나 당의 회유와 이주 정책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 유민들의 대부분은 발해에 통합되었다.

주류성

복신도침백제 부흥 운동 근거지로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김유신 묘 | 경북 경주
익산 토성 | 전북 익산
백제, 고구려의 부흥 운동과 나⋅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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