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조선의 성립과 발전3. 왜란과 호란의 극복[3] 병자호란을 겪은 후에 북벌 운동을 추진한 까닭은?

북벌 운동

두 차례의 호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정부나 백성 모두가 청에 대한 적대 감정과 복수심에 불탔다. 이에 청을 쳐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북벌론이 일어났다.

특히, 청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효종은 북벌을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았다. 효종송시열, 이완 등과 함께 남한산성 및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군대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이는, 청이 한족의 반발을 누르면서 중국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으로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청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하였고, 이에 따라 경제적, 문화적 교류도 빈번해졌다. 그런가 하면, 18세기 후반에는 청의 발달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이 무렵, 만주 북부의 헤이룽 강 부근에 러시아가 침략해 오자, 청은 이를 물리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은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를 출병시켜 큰 전과를 올렸다. 이를 나선 정벌이라고 한다.

이완이 썼던 투구(경기도 박물관 소장)
이완에게 내린 홍패 교지(경기도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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