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조선사회의 변동1. 붕당 정치와 탕평책[3] 실학자들은 어떤 사회를 추구하였는가?

중농 학파와 중상 학파

실학은 18세기에 들어와 그 폭이 더욱 넓어졌다. 실학자들 중에는 농업을 중시하고 토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상공업 활동을 활발히 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농업 문제의 해결을 중시하는 실학자들을 중농 학파라고 한다. 여기에 속한 학자로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있다. 그들은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농민을 중심으로 그 해결 방안을 생각하여 여러 가지 토지 제도의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유형원은 농민들에게 일정한 면적의 농지를 나누어 주자고 주장하였으며, 이익은 농가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를 주어 이것을 매매하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하였다. 정약용도 농지의 공동 소유와 공동 경작 및 수확물의 공동 분배를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이들의 토지 제도 개혁안은 구체적으로는 차이가 있으나,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 중심으로 농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다른 실학자들은 상공업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을 중상 학파라고 한다. 이들은 농촌에서 일생을 보낸 중농 학파와는 달리 한양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학문은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달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중상 학파는 상공업의 발달을 통해 사회의 번영을 이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실학의 새로운 발전이었다.

중상 학파는 상공업 진흥론과 함께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으므로 북학파라고도 불렸다. 이들 중에서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이 특히 유명하였다.

중상 학파는 그들 스스로 보고 들은 청 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청의 문화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현실의 개혁에 대한 강한 의욕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저서에는 당시의 양반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담겨 있었다.

특히, 이들은 상공업의 발전을 중시하여 기술 개발로 생산력을 높이는 한편, 수레나 배와 같은 교통 수단을 발전시켜 상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북학파

청의 수도 베이징을 왕래하면서 청의 수준 높은 문물을 목격하고, 이를 수용하자고 주장한 실학자들을 말한다.
정약용 생가 | 경기 남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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