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조선사회의 변동1. 붕당 정치와 탕평책[3] 실학자들은 어떤 사회를 추구하였는가?

국학 연구

사회 현실에 대한 실학자들의 관심과 비판 의식은 우리의 역사, 지리, 언어, 풍속 등 국학 전반에 대한 연구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국학 연구가 활발해졌다.

역사 연구에서는 안정복, 유득공 등이 유명하였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지어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우리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발해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이 책에서, 신라의 통일은 불완전한 것이고, 북쪽에 발해가 있었으므로 이를 남북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한국사의 무대가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에 걸쳐 있었다는 생각은 실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지리학에서는 이중환정상기, 김정호가 유명하였다. 이중환은 우리 나라의 지리적인 환경과 함께 각 지역의 경제 생활과 풍속을 자세히 조사하여 ‘택리지’를 썼다. 이 책은 특히 자연과 인간 생활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점에서 주목된다.

정상기는 최초로 백 리를 한 자로 축소한 ‘동국지도’를 만들어 우리 나라의 지도 제작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산맥, 하천과 함께 도로망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상업의 발달로 상권이 확대되어 교통로 등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면서 지도도 점차 정밀하게 제작되었다.

국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여 음운 연구서인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와 유희의 ‘언문지’가 나왔다. 이들 연구에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문화적인 자아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의학에서도 광해군 때에 허준이 ‘동의보감’을 펴내 우리 나라뿐 아니라 중국 및 일본의 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예방 의학에 중점을 두고 전통 약재를 사용한 치료 방법을 개발한 것이 특색이다. 또, 고종 때의 이제마는 사람의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여야 한다는 사상의설을 주장하였다.

안정복

이익의 제자로, 이익의 실증주의적이며 비판적인 역사관을 한층 발전시켜 ‘동사강목’을 편찬하였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종래의 중국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나라 역사 자체의 정통성과 독자성을 내세우는 그 나름의 체계를 세워 훗날 민족 사관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대동여지도의 목판과 지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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