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조선사회의 변동2. 세도 정치와 농민의 저항[2] 농민 봉기가 자주 일어난 까닭은?

홍경래의 난

19세기에 들어와 농민층의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농민 봉기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홍경래의 난진주 농민 봉기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홍경래의 난세도 정치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홍경래 등이 평안도에서 일으킨 농민 봉기였다(1811). 홍경래 등은 가난한 농민들을 중심으로 광부, 품팔이꾼까지 끌어들여 세력을 키웠다. 반군은 한때 청천강 이북의 여러 고을을 점령하였으나, 정주성 싸움에서 패하여 진압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의 농민이 하나로 뭉쳐 탐관오리의 착취와 지방 차별에 반대한 농민 항쟁이었다. 이 난은 평안도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났고, 지도자들이 농민층을 조직적으로 끌어들일 개혁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그 뒤에 발생한 농민 봉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홍경래군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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