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Ⅷ. 주권 수호 운동의 전개1. 독립 협회와 대한제국[3] 대한제국이 자주 국가를 만들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광무개혁

대한제국은 외국 세력이 서로 경쟁하는 정세를 이용하여 나라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근대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였다. 특히, 산업의 발전과 교육의 진흥에 힘을 기울였다.

농민 생활의 안정과 재정의 확보를 위해 토지를 새로이 측량하였으며, 상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각종 회사와 공장을 설립하였다. 또, 새로운 기술자와 경영인의 양성을 위해 상공 학교, 광무 학교 등의 실업 학교와 의학교 등 각종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으로, 개인이 생산 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많은 사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한편, 대한제국은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자주적으로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제를 개편하여 궁궐과 서울을 지키는 군대를 증강하였고, 지방에도 군대를 주둔시켰다. 대한제국의 개혁은 자주 독립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개혁을 주장하는 독립 협회를 해산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외세의 침략도 효과적으로 막아 내지 못하였다. 특히, 정부 고관들의 외세 의존적인 태도는 외국의 세력을 끌어들이고 열강에 이권을 침탈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전국의 주요 광산이 외국인에 의해 경영되고, 철도 부설권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이는 우리의 민족 자본을 키우고 근대 국가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군제 개편

황제가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를 호위하는 시위대와 지방의 진위대를 증강하였다. 그리고 고급 장교의 양성을 위해 무관 학교를 설립하였다.
도움글

⋅ 운산 금광과 노다지 ⋅

운산 금광은 노다지 금광으로 유명한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운산 금광을 미국인들이 경영하면서 매우 많은 양의 금이 쏟아져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운산 일대의 주민들이 금광 회사의 철조망에 모여들었다. 이때,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인들이 “노 터치(No Touch : 손 대지 말라.)”를 연발하자, 주민들은 이 말을 노다지로 알아들었다. 그 후로 금이 많이 나온다는 말이 ‘노다지’로 통용되었다.
본래, 대한제국이 미국에 운산 금광을 넘겨준 것은 정치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은 정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이권에만 관심을 보였다.
운산 금광에서 미국은 40년 동안 총 900만 톤의 금광석을 채굴하여 총 5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대한제국 시위대의 훈련 모습(모형)
운산 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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