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Ⅹ. 대한민국의 발전1.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1] 8⋅15 광복이 가능했던 까닭은?

독립 지사들의 귀국

광복과 더불어 국내의 일부 지도자들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독립 국가의 건설을 준비하였다. 이와 동시에 전국 각지에 수감되어 있던 많은 애국 지사들이 석방되어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 애국 지사들은 각자 이념에 따라 정당과 사회단체를 조직하였다.

한편, 8⋅15 광복으로 외국에 망명하여 독립 운동을 하던 애국 지사들이 귀국하였으며, 일제에 의해 군대, 공장, 광산 등에 강제로 끌려갔던 수많은 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제부터 우리 손으로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과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온 민족이 다시는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 나라의 건설에 나섰다.

1945년 10월에는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고 있던 이승만이 귀국하였고, 이어 다음 달에는 김구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지도자들이 중국에서 귀국하였다. 오랜 망명 생활 끝에 귀국한 이들 지도자들도 정부 수립에 대비하여 정당과 사회단체를 만들었지만, 서로 의견이 엇갈린데다 국민들의 정치적 경험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에 의견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한동안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도움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8⋅15광복 직전에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고 건국을 준비한 세력은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옌안의 조선 독립 동맹, 국내의 조선 건국 동맹 등이었다. 그 중에서 8⋅15 광복과 동시에 가장 먼저 건국을 준비한 세력은 국내에서 조직된 조선 건국 동맹이었다. 여운형조선 건국 동맹을 중심으로 하여 안재홍 등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세력을 규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송진우, 김성수 등 일부 민족주의 세력은 참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환국 환영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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