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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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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 창설된 한국 광복군(韓國光復軍)의 모습이다. 한국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군이었으며,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된 군대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중⋅일 전쟁을 전후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는 일본과 일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피하고, 국제 정세도 일본과 전쟁할 시기가 임박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임시 정부는 상해를 떠나 충칭(重慶)에 도착하기 1년 전쯤 시안에 군사 특파단을 파견하여 병력을 모집하는 한편, 중국 정부에 대하여 군대 조직에 대한 양해와 재정 지원을 교섭하였다. 그 결과 충칭으로 옮긴 직후인 1940년 9월 17일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군사 계획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훈련받은 병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임시 정부는 중국 당국과 교섭하여 한국 청년들을 중국의 정규 군사 학교에 입학시켜 군사 교육을 받게 하였으며,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흥 무관 학교 출신의 독립군 간부들과 중국 대륙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애국 청년을 모아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그런데 광복군은 중국 정부와 맺은 군사 협정에 따라 중국 당국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어 있어 독자적인 작전을 펼 수 없었다. 광복군이 독자성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1945년 초에야 가능했다. 한편 한국 광복군은 1942년에 김원봉이 이끈 조선 의용대의 일부를 흡수 통합하여 군사력을 증강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 정부는 즉각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으며, 한국 광복군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시켰다. 그래서 영국군과 공동 작전으로 미얀마, 인도 전선에까지 공작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광복군은 미국군과 연합하여 항공기나 잠수함을 이용해서 국내에 투입, 일본군을 몰아낼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합작하여 특수부대를 편성하고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훈련을 마치고 국내로 출발하기 직전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실전 투입은 무산되었다.

한국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 군대로서, 대일 선전 포고뿐만 아니라 독일에 대해서도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비록 대한민국 국군에 직접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광복 전까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용감히 싸웠던 정예 군대였으며, 그 역사성과 정통성만큼은 국군에까지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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