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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 평양성을 포위하다

<석촌동고분(서울 송파구)>   

“백제군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화살을 쏘아라! 돌을 굴려라!”

“폐하! 적이 코앞에 있는데, 어찌 직접 군사들을 지휘하십니까? 위험하오니 뒤로…”

“으윽!”

“폐하! 폐하! 폐하께서 화살에 맞으셨다. 의원을 불러라! 의원을!”

평양성에서 고구려의 왕을 죽이고 북쪽으로 영토를 넓힌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강한 백제를 만든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백제, 고구려를 공격하다

<고구려군의 모습(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313년과 314년 고구려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차례로 멸망시켰어요. 고구려와 백제는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교역로를 놓고 경쟁을 시작했어요. 백제는 아직 상대적으로 고구려의 지배력이 약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북진을 도모하였어요.

이에 맞서 고구려도 4세기 중반 이후 남쪽으로 진출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은 2만 명의 병력으로 백제를 공격하였어요. 고구려군의 공격에 맞서 근초고왕은 태자와 백제군을 지름길을 통해 치양(황해도 연백지역)에 보내었어요. 이때 고구려군을 기습 공격하려던 백제 태자에게 한 사람이 급히 찾아왔어요.

<여러 역할의 병사로 구성된 고구려군>   
한성백제박물관

“저는 고구려에서 온 사기입니다. 태자마마! 저는 원래 백제 사람입니다. 저의 말을 들으신다면 이번 전쟁에서 분명히 승리하실 겁니다.”

“백제 사람이 어찌 고구려 사람이 되었더냐?”

“저는 궁에서 대왕의 말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어찌하다 대왕께서 아끼시는 귀한 말의 발굽에 상처를 냈는데, 대왕께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고구려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런 불충한 자를 보았나. 바로 목을 베어야겠으나 먼저 너의 말을 들어보겠다.”

“저쪽의 군사가 비록 많기는 하나 모두 숫자만을 채운 가짜 군사일 뿐입니다. 날래고 용감한 자들은 오직 붉은 깃발을 한 부대뿐입니다. 만일 먼저 이를 깨트리면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고구려군의 상황을 들은 태자는 사기의 말을 쫓아 붉은 깃발을 한 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어요. 주력 부대를 잃은 고구려군은 우왕좌왕 하다 흩어져 도망을 갔어요. 적을 미리 알고 준비한 전투는 승리할 수밖에 없었죠.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의 뼈 갑옷(복원품, 한성백제박물관)
갑옷의 아랫부분을 185개 뼈 조각으로 만들었고, 뼈 갑옷 위의 가슴, 배 부분은 쇠 찰갑에 천을 두르고 옻칠을 하여 만들었다.>   

백제군은 도망쳐 달아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여 수곡성에 이르렀어요. 이때 장군 막고해가 태자를 막으며 말했어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지금 얻은 바가 많으니 어찌 구할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태자는 이 말을 옳게 여겨 추격을 중지하고 돌을 높이 쌓아 백제군의 승리를 알리는 표지를 만들었어요. 백제군은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포로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왕의 목숨을 빼앗다

371년, 고구려 고국원왕은 치양 전투의 패배를 되갚기 위해 군사를 다시 일으켜 백제로 향했어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근초고왕은 강가 수풀 속에 군사를 매복시켜 강을 건너는 고구려군을 기습 공격하였어요. 고구려군은 다시 한 번 쓰라린 패배를 맛보아야 했지요.

근초고왕은 승리의 기세를 몰아 정예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로 쳐들어가서 평양성을 포위하였어요. 성에 갇힌 고국원왕은 성의 이곳저곳을 돌며 고구려 병사들을 격려했어요.

“국내성에서 곧 우리를 구원해줄 군사들을 보낼 것이다. 백제 무리가 성을 넘지 못하도록 굳건히 지키도록 하라!”

성을 넘으려는 백제군과 성을 지키려는 고구려군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밤낮으로 계속 되었어요. 백제군의 격렬한 공격에 성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면서 고국원왕이 직접 군사들을 독려하면서 평양성을 방어하였어요.

밤이 되자 백제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수많은 사다리와 밧줄이 성벽에 걸리고 병사들이 성벽 위로 기어올랐어요. 고국원왕은 위급해진 성벽으로 구원군을 데리고 가 백제군을 막았지요.

<근초고왕과 북으로 진격하는 백제군한성백제박물관)>   

구원군의 활약에 힘입어 고구려 병사들은 힘을 모아 백제 병사들을 밀어내기 시작했어요. 넘어지는 사다리와 끊어지는 밧줄에 매달린 채 성벽 밖으로 떨어지는 백제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성벽 위에 올랐던 백제 병사들도 하나둘 고구려군의 칼과 창에 목숨을 잃었어요.

그런데 성벽 위의 백제 병사들을 거의 몰아낼 무렵 어둠 속에서 새까맣게 화살비가 덮쳤어요. 호위무사들이 저마다 방패로 급하게 왕을 가렸지만 수많은 화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여러 개의 화살이 고국원왕의 몸에 꽂혔어요. 고국원왕은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백제의 근초고왕은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이고 북쪽으로도 영토를 넓혔지요. 또한 남쪽 마한의 여러 세력을 통합해 전라도 지역 전부를 장악했어요. 백제는 근초고왕 때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어요.

<근초고왕 시기 백제의 영역>   

왜에 칠지도를 보내다

이와 더불어 나라를 더욱 튼튼하게 하려고 대외 교류에도 큰 힘을 쏟았어요. 중국 남쪽에 있는 동진과 교류하여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어요. 또한 바다 건너 남쪽의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백제의 앞선 문물을 전해주었지요. 근초고왕이 왜에 보낸 칠지도는 당시 백제가 왜와 가까웠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어요.

<칠지도
‘일곱 갈래의 가지로 된 칼’로 일본 나라현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있다. 전체 길이는 74.9㎝로 앞면에 34자, 뒷면에 27자가 금으로 상감되어 있다. 백제 근초고왕이 만들어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대가야박물관

이와 같이 근초고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과 외교 활동으로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어요. 다른 백제 왕들에 견주어 근초고왕은 어떤 점이 뛰었났을까요? 근초고왕 이후 백제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집필자] 신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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