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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황산벌의 5천 결사대를 넘어서다

<김유신 묘(경북 경주시)>   

“장군! 5만 군사를 한꺼번에 보낸다면 5천의 백제 군사야 쉽게 물리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이리 시간만 보내고 계신지요?”

“죽음을 각오한 백제군을 가볍게 보면 우리 군의 피해가 클 것이오. 우리 군대의 피해를 줄이면서 이길 방법은 없겠소?”

황산벌에서 적은 수의 백제의 결사대에 맞선 김유신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의자왕의 독재와 백제의 혼란

백제 의자왕은 즉위 초기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 북쪽의 30개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점령하면서 백제 중흥을 이루는 듯 하였어요. 그러나 의자왕은 귀족들을 정치에서 제외시키고 자신의 아들 41명을 최고 관직에 임명하는 등 가까운 사람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고자 했지요.

의자왕이 권력을 독점하려하자 귀족 세력이 거세게 반발하였어요. 나라의 지도층은 분열되고 의자왕이 점차 사치에 빠지자 백제의 국력이 크게 약해졌어요.

성충이나 흥수 같은 충신들이 의자왕의 잘못된 정치를 말리자 이들을 옥에 가두었어요. 이를 본 백성들의 마음도 점차 멀어져 갔지요.

혼자서 백제를 공격할 만한 힘이 없었던 신라는 오래 전 당에 지원군을 요청하였어요. 김춘추가 지원군을 요청한지 16년 만에 당이 군대를 보내면서 나당 연합군이 만들어졌어요. 백제가 흔들리는 틈을 노린 것이었어요.

당의 13만 대군을 태운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백제를 향했어요. 목적지는 백제의 수도 사비를 끼고 흐르는 백강(지금의 금강) 하구의 기벌포였어요. 이에 발맞춰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 군사들도 탄현을 향해 출정하였어요.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백제 의자왕에게 전해졌어요. 의자왕은 감옥에 갇혀있던 흥수에게 사람을 보내 어떻게 방어해야할지를 물었어요.

“기벌포와 탄현은 우리나라 요충지로 한 명의 군사와 한 자루의 창을 가지고도 1만 명을 막을 수 있는 곳입니다. 군사를 보내 두 곳을 철통같이 지키소서.”

기벌포는 바닷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이 생겨나 군사들이 상륙하기가 어렵고 수비하기에 좋은 곳이었어요. 탄현도 높고 좁은 골짜기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곳으로 신라군을 유인하여 공격한다면 적은 수의 군사로 손쉽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곳이었지요. 하지만 몇몇 신하들은 반대하였어요.

“많지 않은 군사를 둘로 나누는 것은 스스로 패전을 부르는 방법입니다. 흥수는 죄인입니다. 임금과 나라를 원망하는 자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기벌포, 탄현, 황산벌의 위치>   

계백에게 의지하는 의자왕

고심하던 의자왕과 귀족들은 결국 흥수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백제 조정에서 시간을 낭비하며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당군은 해안을 수비하던 백제군을 물리치고 기벌포에 상륙하였고,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사비성으로 진격하고 있었어요.

두 나라 군대의 빠른 움직임에 다급해진 의자왕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어요. 의자왕은 어쩔 수 없이 계백을 불러 5천 결사대로 김유신의 신라군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적은 군사로 5만의 신라군을 막아야 하는 계백은 비장한 각오를 하였지요.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없다. 내 처와 자식들이 외적에게 잡혀 노비가 될까 염려가 된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죽어서 혼이라도 편한 것이 나을 것이다.”

계백은 처와 자식을 모두 죽이고 5천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로 출전하였어요.

<백제군과 목책(백제군사박물관)>   

계백은 신라군이 황산벌에 도착해 먼저 수비하기에 좋은 세 곳을 골라 목책을 세웠어요. 계백은 결사대에게 큰 소리로 비장하게 외쳤어요.

“지난 날 구천은 5천 명으로 오나라 70만의 무리를 격파하였다. 오늘 마땅히 힘써 싸워 승리함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자.”

“와! 와!”

계백을 넘어선 김유신

황산벌에 도착한 신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어요. 죽음을 각오한 백제군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고, 네 번 싸워 네 번 모두 승리했어요. 예상보다 강한 백제군의 저항에 신라군의 피해가 늘어났어요.

신라군의 피해가 커지자 김유신은 크게 당황했어요. 계속된 패전으로 군사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고, 게다가 당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도 지키기 힘들어졌어요.

고심하던 김유신은 화랑을 전장에 보내 싸우게 했어요.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의 아들 반굴이 힘껏 싸우다 죽었어요. 반굴이 죽자 이번에는 김유신의 조카 김품일이 16세의 아들 관창을 시켜 선봉에 서게 하였어요.

“계백은 어디 있느냐?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나와 결판을 내자.”

호기롭게 창을 휘두르며 백제군 진영을 휘젓던 관창은 백제군에게 사로잡혀 계백 앞으로 끌려왔지요.

<계백과 관창(백제군사박물관)>   

계백이 투구를 벗게 하니 관창이 어리고 또한 용기가 있음을 아끼어 차마 죽이지 못하였어요.

“신라에게 우리 백제가 대적할 수 있겠는가? 어린 소년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장정들이랴!”

계백은 속으로 탄식하며 관창을 돌려보냈어요. 신라군으로 돌아간 관창은 아버지 품일에게 간단히 인사만 한 후 말을 타고 또다시 백제군으로 쳐들어갔어요. 그리고 다시 사로잡혔지요.

“내 너를 살려 보내줬거늘 어찌 다시 온 것이냐? 나의 머리를 베고 싶다면 더 커서 장수가 된 후에 다시 찾아오너라.”

“또 나를 살려 돌려보낸다면 날카로운 창과 말을 준비해 다시 올 것이다. 그대에게 패했으니 더는 욕보이지 말고 죽여라.”

계백은 어쩔 수 없이 관창의 목을 베어 말에 실어 신라군 진영으로 보냈어요. 관창의 목을 본 신라군은 어린 화랑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였어요.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김유신이 때맞춰 신라 군사들에게 외쳤지요.

“신라의 군사들이여! 어린 화랑들이 죽음으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있거늘 그대들은 어찌 백제군을 두려워하여 몸을 사린단 말인가. 이들의 죽음 앞에 그대들은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그대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준다면 내 오늘 밤 백제를 쳐서 없앨 것이다!”

<신라군과 백제군의 전투>   
백제군사박물관

관창의 장렬한 죽음을 본 신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5만의 군사가 물밀 듯이 백제군을 공격하였어요. 황산벌은 성난 신라군과 나라의 최후를 막으려는 백제군의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 찼어요. 그러나 적은 수의 백제군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하루 동안 벌어졌던 황산벌 전투는 결국 백제군의 패전으로 끝났어요. 계백도 부하들과 함께 황산벌에서 전사하고 말았지요.

마지막 희망이었던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패하자 나당 연합군을 막을 백제의 군대는 더 이상 없었어요. 이윽고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게 포위되었고, 얼마 저항도 못하고 함락되었지요.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도망갔던 의자왕도 곧 항복하고 말았어요. 700여 년 동안 유지되어온 백제의 역사는 결국 황산벌 전투 이후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어요.

김유신의 지략으로 신라군은 계백을 넘어 오랜 백제와의 승부를 낼 수 있었어요. 만약 신라군이 계백의 백제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면 전쟁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요?

<황산벌의 모습>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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