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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귀주에서 거란을 물리치다

<낙성대(서울 관악구)>   

“거란군 쪽으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공격을 퍼부어라.”

“우와! 귀주 벌판이 거란군의 무덤이 될 것이다.”

“나를 따르라!”

귀주에서 군사를 이끌고 거란군과 맞서 싸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어떤 전술로 거란과 맞서 싸웠을까요?

거란이 고려를 넘보다

고려와의 1차 전쟁을 협상으로 마무리한 거란은 안심하고 송과 전쟁을 벌였어요. 10여 년에 걸친 전쟁 끝에 거란이 승리하였어요. 패배한 송은 해마다 거란에 은 10만 냥과 비단 20만 필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전쟁은 마무리 되었지요.

송에게 승리한 거란은 이제 고려를 넘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거란은 강조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추대한 것을 구실로 두 번째로 고려를 침입하였어요(1010년, 현종 1). 하지만 2차 전쟁은 두 나라 모두 큰 피해만 입고 별 소득 없이 끝났어요.

이때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고려 현종은 직접 거란 황제를 찾아뵙는다(친조)는 거짓 약속을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거란이 약속한 친조를 요구하자 현종은 병을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강동 6주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거란은 현종이 친조를 거부하자 강동 6주를 다시 가져가겠다고 일방적으로 알려왔어요. 물론 고려는 이를 거부했지요.

1018년 고려는 거란의 세 번째 침입을 받았어요. 소배압을 총사령관으로 앞세운 10만의 거란군이 쳐들어 왔어요. 소배압은 처음부터 고려의 성을 하나씩 점령하기 보다는 고려의 수도 개경을 단숨에 점령하여 전쟁을 단숨에 끝내버리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지요.

물론 고려도 거란과의 전쟁을 대비해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지요. 현종은 강감찬에게 고려군의 총지휘를 맡기고 거란군과 맞서 싸우게 하였어요.

<거란족 병사의 모습>   

흥화진 전투를 승리를 이끌다

강감찬은 군사들을 이끌고 흥화진으로 출동했어요. 흥화진은 개경으로 가기 위해 거란군이 꼭 지나쳐야 할 곳이었지요. 강감찬은 흥화진 옆 하천에 이르러 기병 1만 여 명을 뽑아 산골짜기 안에 숨겼어요. 그리고 큰 줄로 쇠가죽을 꿰어 묶어 성 동쪽의 큰 개천을 막고 거란군을 기다렸지요.

거란군이 도착하여 강을 건너려고 하자 막고 있던 쇠가죽을 끊어 물줄기를 터뜨렸어요. 갑작스런 물줄기에 놀라 우왕좌왕하던 거란군을 미리 숨어 있던 고려의 기병들이 기습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뒀어요. 함락하기 힘든 흥화진을 우회하여 가려던 거란군의 진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준비한 고려군의 승리였어요.

거란군은 흥화진에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경으로 진격을 멈추지 않았어요. 하지만 강감찬은 거란군의 속셈을 알아채고 군대를 나누어 일부는 거란군을 추격하게 하고, 일부는 따로 개경을 지키도록 하였어요. 추격하던 고려군은 만 여 명의 거란군의 목을 베기도 했어요.

거란군이 개경 인근에 도달했을 때 개경은 이미 빈틈없는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어요. 거란군은 기습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마저 고려군에 들켜 실패하고 말았어요. 거란군은 거듭된 패배로 전쟁을 지속할 의욕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어요. 결국 소배압은 더 이상 공격할 자신이 없어 개경 포기하고 군사를 되돌렸어요.

귀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다

철수하던 거란군은 귀주에 도착하였어요. 귀주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만 평지와 연결되어 있어 방어하기가 쉬운 군사적 요충지였어요. 그런데 강감찬은 성 안으로 들어가 수비하지 않고 들판에 군사를 배치했어요. 강감찬은 귀주 동쪽으로 퇴각하는 길목을 막고 소배압의 거란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자 했던 거지요. 또 앞서 개경으로 보낸 군대로 거란군의 뒤를 쫓게 해 협공을 준비하였어요.

두 나라 군사들은 모두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어요. 그러나 승패가 쉽사리 결정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고려의 지원군 1만 명이 추가로 도착했어요. 전세는 고려에 결정적으로 유리해졌지요.

<귀주 대첩>   
전쟁기념관

때마침 갑자기 북쪽의 거란군 쪽을 향해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어요. 거세 바람을 타고 고려군의 화살들이 거란군 진영으로 비처럼 쏟아졌어요. 반대로 거란군의 화살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지요. 하늘마저 고려를 돕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강감찬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총공격 명령을 내렸어요.

사기가 오른 고려군은 매섭게 공격하였고, 거란군은 크게 패하여 달아나기에 바빴어요. 고려군은 여세를 몰아 달아나는 거란군을 악착같이 쫓아가 공격하였어요. 패한 거란군의 시체가 들판을 덮었으며 사로잡힌 병사와 획득한 말과 낙타·갑옷·무기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어요.

또한 10만 명의 거란 군사 중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에 불과했어요. 거란의 참혹한 패배였어요. 이렇게 강감찬이 거란군을 맞아 귀주에 크게 승리하였다고 하여 이 전투를 ‘귀주 대첩’이라고 불러요.

한편 패전 소식을 들은 거란 황제는 크게 분노하며

“네가 적을 얕잡아보고 적국 깊이 들어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보려는가? 내가 너의 낯가죽을 벗긴 뒤에 죽일 것이다.”

라고 하며 소배압을 꾸짖고, 멀리 유배를 보냈어요.

고려의 국왕은 강감찬의 군대를 직접 맞이하며 위로했어요. 이후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침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이로서 거란과의 전쟁은 강감찬의 활약 덕에 고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지요.

귀주 대첩으로 거란은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했던 친조를 더 이상 강요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압록강 연안의 성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어요. 다만 이 전쟁의 결과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고, 고려와 거란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는 실마리가 마련되었어요.

우리 민족은 외적이 침입했을 때 주로 산성에 의지해 지키면서 지쳐있는 적을 공격하는 작전을 많이 펼쳤어요. 그런데 강감찬은 귀주에서 뜻밖의 작전을 구사했어요. 기병을 동원하여 넓은 벌판에서 거란 기병과 맞서 싸웠지요. 강감찬은 왜 이전과는 다른 작전을 펼친 것일까요? 넓은 벌판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말을 몰아 외적을 물리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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