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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적, 신분 해방을 외치다

<명학소(망이·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충남 대전시)>   

“토지를 빼앗아 가고, 갖가지 세금을 거두어대니 더 이상 못살겠구먼!”

“같은 양인인데 왜 우리는 온갖 물건을 만들어 나라에 바치며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한단 말이오?”

“때를 잘 만나면 누구나 장수와 재상이 될 수 있소. 우리 같은 노비라고 맨날 뼈 빠지게 일만하며 살란 법 있나?”

불만에 가득 찬 백성들의 아우성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어요. 이 시기는 언제일까요? 그들은 어떤 세상을 바랬을까요?

망이·망소이가 들고 일어나다

고려 중기 무신들이 권력을 잡은 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갖가지 세금을 거두어들였어요. 백성들은 세금 내랴, 공사에 불려나가랴 고달프게 살아갔지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농민들과 특수 행정 구역에 모여 살던 무리들이 들고 일어났지요. 노비들도 봉기를 계획했고요.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의 몸부림에 고려 사회는 혼란스러웠어요.

먼저 눈여겨 볼 사람들이 망이와 망소이 형제에요. 그들은 무신들이 권력을 잡은 지 6년이 지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고 일어났어요.

‘소’는 고려의 특수한 행정 구역이에요. 종이, 숯, 먹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나라에 바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지요. 이곳 사람들은 양인 신분이었지만, 일반 행정 구역인 군현에 살던 양인들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았어요. 마치 천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지요. 소에는 수령도 보내지 않았고요.

공주 명학소는 숯을 만들던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어요. 이곳 사람들은 일반 양인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울분이 쌓이고 쌓인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드디어 망이·망소이 형제는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무리를 모아 들고 일어났는데, 그 세력이 만만치 않았어요.

<공주 관아를 점령한 봉기군>   

봉기군은 순식간에 공주 관아를 점령해 버렸어요. 깜짝 놀란 조정에서는 관리들을 보내 그들을 달래려고 했어요. 봉기군의 기세는 나날이 세져 막을 수 없었지요.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온 3천 여 명의 군대도 보란 듯이 무찔러 버렸어요.

얼마 후 봉기군은 조정에 강화를 요청했고, 조정에서는 그들과 협상을 벌였어요. 명학소를 일반 양인들이 사는 ‘충순현’으로 높여주고, 수령을 보내 백성들을 보살피게 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망이·망소이 무리가 다시 들고 일어났어요. 조정에서 겉으로는 그들을 달래는 척하다 토벌하려 했거든요. 봉기군은 이번에는 덕산 가야사를 약탈한 뒤, 홍경원이라는 절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스님들을 죽이기도 했어요. 지배층과 손잡고 땅을 넓히고, 많은 노비를 거느린 절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죠.

망이와 망소이는 홍경원의 주지 스님에게 편지를 써주며 정권을 잡고 있던 정중부에게 알리도록 했어요.

“우리 고향을 현으로 높여주고 수령을 보내 백성을 보살피게 하더니, 다시 군사를 보내 우리를 토벌하려 하고, 어머니와 처까지 잡아들이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오? 싸우다 죽을망정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개경으로 가 우리의 뜻을 이룰 것이다.”

그들의 기세는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 했어요. 그러나 망이·망소이 무리와 손잡았던 세력들이 나라에서 보낸 군대에게 하나 둘 패하면서 상황은 점점 불리해졌어요. 밀려오는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던 봉기군은 1년 반 만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망이와 망소이는 감옥에 갇힌 뒤 죽었다고 전해요.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실패로만 끝난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의 봉기는 이후 하층민들의 봉기에 영향을 주었어요. 조정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요.

만적, 봉기를 계획하다

망이·망소이 형제가 일으킨 봉기가 실패한 이후에도 곳곳에서 봉기는 계속되었어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의 노비 만적의 봉기예요.

1198년 개경(개성) 북산에 모인 노비들이 만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근래 높은 관리들이 우리 같은 천한 신분에서 많이 나왔소.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겠소? 우리도 주인을 죽이고 그놈들 자리를 차지해 봅시다.”

“만적의 말에 동감이오.”

“우리도 한 번 똘똘 뭉쳐 세상에 천한 사람 없게 해 봅시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봉기 계획을 세웠어요. 얼굴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눈빛은 불타고 있었어요.

“우리 숫자로는 턱도 없소. 더 많은 노비들을 모아야 하오. 개경에 있는 모든 노비들에게 우리의 뜻을 알립시다. 대궐 안의 환관들, 관청 노비들도 설득합시다.”

“5월 갑인 일을 우리가 봉기하는 날로 잡읍시다. 흥국사에 다시 모여 우리의 의지를 다진 뒤 최충헌을 죽이고, 각자 자신의 주인을 죽인 후 노비 문서를 불태워 버려 이 나라에서 천민을 없앱시다. 그러면 우리도 높은 관리와 장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걸 받으십시오.”

만적과 노비들은 누런 종이를 오려 정(丁)자를 새겨 나누어 가졌어요. 그것은 뜻을 같이 할 동지라는 표식이었어요. 종이를 받아든 노비들은 약속한 날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어요. 이들은 단순히 신분 차별을 없애려는 의도를 넘어 정권까지 차지하려고 했어요.

드디어 봉기 날 아침이 밝았어요. 만적을 비롯한 개경의 노비들이 하나 둘 흥국사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어요. 혹여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을까봐 조심, 또 조심했어요.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노비는 곧 수백 명에 이르렀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요.

<정(丁)자를 나눠주는 만적>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요. 개경의 노비가 이것밖에 안된단 말이오. 더 많은 노비들이 모여야 계획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안되겠소. 잘못했다가는 아까운 목숨을 모두 잃게 될 수도 있겠소. 나흘 뒤 다시 모이도록 합시다. 그때는 반드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비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은 성공을 위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어요. 헤어지면서 그 누구에게도 비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당부했어요. 역사적 사건이 성공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법이죠. 한충유의 노비 순정이 배신했거든요. 순정은 그날 밤 주인 한충유를 찾아가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아뢰었지요. 사실을 전해들은 한충유는 한걸음에 최충헌에게 달려갔어요.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충헌은 명령을 내렸어요.

“노비들이 주인을 죽이고,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고? 당장 그들을 잡아 오너라!”

최충헌의 명령에 관군이 출동했고, 만적과 함께 봉기에 참여한 노비 백 여 명이 끌려왔어요.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죽일 수 없어 그 죄를 묻지 않기로 했지요.

“이놈들을 모두 강에 빠뜨려 죽이거라.”

만적을 비롯한 백여 명의 노비들은 강물에 던져졌어요. 최충헌은 비밀을 알려준 순정에게 은 80냥을 내리고, 양인이 되게 해주었어요. 한충유에게는 높은 관직을 내렸고요. 만적은 결국 신분 해방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차디찬 강물 속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어요.

만적의 봉기는 비록 실패했지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역사적 사건이었어요. 또한 우리 역사 속에서 천민이 중심이 되어 신분 차별을 없애려고 한 최초의 봉기로 기억되고 있고요. 만약 만적의 봉기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요?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이 좀 더 빨리 왔을까요?

[집필자] 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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