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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조선을 건국하다

<선죽교(황해북도 개성)>   

“장맛비가 계속 오는데 명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자!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갑시다.”

“왕명 없이 여기서 군대를 돌리면 역적이 됩니다.”

“내 한 목숨 보다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더욱 귀합니다. 나를 믿고 나를 따라 주세요.”

1388년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떠났던 한 장수가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향했어요. 그는 이후 어떤 일을 했을까요?

권문세족과 왜구로 고려가 혼란해지다

몽골의 침략을 받고 40여 년간 굳세게 저항하던 고려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어요. 전쟁에서 진 고려는 몽골이 세운 원의 간섭을 받게 되었지요.

원 간섭기 원을 등에 업고 권문세족이라는 새로운 권력자들이 생겨났어요. 이들은 불법으로 백성들의 땅을 빼앗아 대농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을 노비로 만들어 농지를 경작하게 하였지요.

하지만 권문세족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이들의 악행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노비가 늘고 일반 백성의 수가 줄어들자 나라가 거두는 세금도 줄어들었어요. 부족해진 국가 재정은 다시 일반 백성들에게 거둬들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어요.

권문세족의 부정부패가 넘쳐나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이를 개혁하여 고려를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바로 정도전, 정몽주 등 유학을 공부한 신진 사대부들이었어요.

권문세족들이 고려를 망쳐가고 있을 때 홍건적과 왜구까지 침입해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어요. 도적떼들이 침입해 백성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니 해안가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지요. 홍건적과 왜구가 들끓고 백성들의 허무한 죽음이 늘어나고 있을 때 이성계가 역사 속에 등장하지요.

함경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성계는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았어요.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되찾을 때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아버지 이자춘을 도와 공을 세우기도 했어요. 이성계는 홍건적과 원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조금씩 백성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어요.

1380년, 최영의 홍산 대첩 이후 잠시 주춤하던 왜구가 다시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진포에 상륙해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어요. 고려 조정은 최무선을 보내 화포로 왜선을 모두 격침시켰지요.

배가 모두 침몰하자 살아남은 왜구들은 육지로 도망을 갔어요. 그리고 미리 상륙해 노략질을 하던 다른 왜구들과 합류하였어요. 이들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휩쓸며 지리산으로 모여들었지요.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마을은 텅 비었고, 거리에는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넘쳐났어요. 사람들은 왜구의 침략이 이때만큼 심한 때가 없었다며 모두들 혀를 내둘렀지요.

<진포대첩과 황산대첩>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다

북쪽으로 올라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고려 조정은 이성계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군대를 출전시켰어요. 이성계는 전라도 남원 운봉을 넘어 지리산 부근의 황산에서 왜구와 맞닥뜨렸어요. 왜구는 높은 산에 의지해 진을 치고 이성계의 고려군과 맞섰어요.

이성계는 군사들에게 산을 올라 공격하라고 명령했어요. 그러나 왜구도 죽을힘을 다해 싸우니 고려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산을 내려왔어요. 이성계도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스스로 화살을 뽑아버리고 계속해서 군사들을 지휘하였어요.

“겁먹은 자는 물러나라. 나 또한 적에게 죽을 것이다.”

이성계의 외침에 군사들이 용기를 내어 다시 싸웠어요. 이때 아지발도라 불리는 왜구의 우두머리 장수가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면서 돌진해 왔어요. 아지발도는 어리기는 했지만 무술 실력이 아주 뛰어난 장수였어요. 아지발도에게 맞서던 고려군이 연달아 쓰러졌어요. 아지발도의 활약에 고려군의 사기가 꺾이면서 제대로 된 전투를 치룰 수가 없었어요.

이성계는 군사를 돌려 쉬게 하고 이지란 장군을 불렀어요.

“죽이기에 아까운 자이다. 자네가 생포할 수 있겠는가?”

“만약 사로잡고자 한다면 필시 많은 군사들이 다치거나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자는 얼굴까지 견고한 갑옷으로 싸고 있어 화살을 쏠 만한 틈이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군. 쉽게 잡을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내가 투구의 꼭대기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면 자네가 즉시 쏘아 맞추시게.”

<이성계와 아지발도>   

이성계는 말을 달리며 앞으로 나아가 아지발도를 향해 화살을 쏘았어요. 화살은 바로 투구의 꼭지를 맞췄어요. 끈이 끊어져 투구가 기울어지자 아지발도는 급하게 이를 붙잡고 바로 썼어요. 이성계가 다시 쏘아서 꼭지를 맞추니 투구가 마침내 떨어졌어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지란이 곧바로 활을 쏘아 아지발도를 맞췄어요.

아지발도가 쓰러지자 왜구는 급격히 무너졌지요. 이성계가 앞장서서 공격하자 왜구는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어요. 고려군은 기뻐서 북을 치며 함성을 질렀어요. 함성 소리가 천지를 울렸죠. 고려군의 공격에 왜구들이 사방에서 쓰러졌어요. 처음에는 왜구의 수가 고려군보다 10배나 많았어요. 그러나 전투가 끝나고 겨우 70여 명만이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갔어요.

최영과 뜻을 달리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외적을 물리치며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이성계는 고려의 개혁을 주장하던 정도전, 정몽주와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망치고 있던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고려를 안정시키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고려를 개혁하려는 사람들 안에도 서로 생각이 달랐어요. 정몽주는 고려 왕실을 지키면서 개혁을 하고자 했어요. 반면에 이성계와 정도전은 아예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어요. 함께 고려를 개혁해 가던 두 세력이 갈라지는 결정적 순간이 왔어요.

원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한 명이 철령 이북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철령 이북 땅은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되찾은 땅이었지요. 그런데 명은 이 땅이 원래 원의 것이고, 원을 명이 차지했으니 당연히 명의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크게 화가 난 우왕과 최영은 명이 아직 약한 이때 거꾸로 요동을 공격하여 차지하자고 하였지요. 하지만 이성계는 다음 네 가지의 이유를 들어 요동 정벌에 반대하였어요.

“폐하! 지금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못하옵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하는 것이 첫 번째 옳지 못함이요,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이 두 번째 옳지 못함입니다.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니 세 번째 옳지 못함이요,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져 제 역할을 못하고 많은 군사가 역병을 앓을 것이니 네 번째 옳지 못함입니다.”

이성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왕은 여러 지역의 백성들을 뽑아 5만 명의 병사들을 모았어요. 그리고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서경(평양)에서 왕을 지키게 했고, 조민수와 이성계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요동으로 출발하도록 했어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다

요동으로 출정한 고려군은 5월 압록강 하구의 작은 섬 위화도에 이르렀어요. 이때 장맛비가 계속 내렸어요. 이성계는 장맛비를 이유로 군대를 돌릴 것을 우왕에게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러자 이성계는 함께 간 조민수를 설득하여 군대를 개경으로 돌렸어요. 마침내 정변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성계가 정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최영은 개경에 남은 소규모의 군대로 이성계에게 맞섰어요. 그러나 결국 이성계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말았죠. 사로잡힌 최영은 귀양을 가 처형을 당하고 말았어요. 우왕도 폐위되었고, 이성계는 그의 아들 창왕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어요. 하지만 창왕도 곧 폐위되었고, 공양왕이 왕이 되었어요.

<위화도 회군>   

고려를 대신할 새로운 왕조 조선을 세우다

고려의 많은 문제들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정몽주는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며 반대를 했지요. 이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와 함께 새로운 나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부하를 시켜 한 밤중에 정몽주를 죽이고 말아요. 그 현장이 선죽교라고 전해지고 있어요.

고려 왕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죽자 더 이상 고려에 이성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곧 이성계는 정몽주를 따르는 무리를 귀양 보냈고,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왕이 되었어요.

왕이 된 이성계는 처음에는 고려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했으나 곧 ‘조선’이라 바꿉니다. 새로운 나라 조선이 세워진 것이지요.

고려 말기의 여러 혼란스런 상황을 극복하며 이성계는 성장하였고, 정변을 거치면서 새로운 왕이 되었어요. 그는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했고, 도읍지도 새로 정했지요.

새 도읍지 건설의 총책임자인 정도전은 백악산(북악산) 밑에 경복궁과 여러 관청들이 모여 있는 6조 거리를 만들었어요.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을 세웠어요. 그리고 도읍의 이름을 ‘한양’이라 했어요.

1394년 이성계와 그의 신하들은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경을 떠나 조선의 새 도읍지인 한양에 도착했어요. 500년 조선의 역사가 수도 한양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왕이 된 이성계는 조선을 세웠어요. 조선은 고려와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조선은 백성들이 살기에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요?

<경복궁과 6조 거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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