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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조선의 음악을 세우다

<난계국악박물관(충북 영동군)>   

“제 피리 소리가 어떻습니까?”

“소리와 가락이 곱지 않습니다. 박자감도 좋지 않고, 좋지 않은 버릇이 굳어져 고치기 어렵겠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배울 테니 한 수 가르쳐 주시오.”

과거를 보러 온 한 청년은 궁중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악공에게 피리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어요. 이 청년은 누구일까요?

부모 잃은 슬픔을 피리 소리로 달래다

이 청년은 바로 왕산악,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히는 박연이에요. 그는 열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더니 스물한 살에는 어머니마저 떠나보냈어요.
연달아 부모를 잃은 슬픔은 무척 컸어요. 그래서였을까요? 박연은 더욱 열심히 피리를 연주했어요. 달빛이 내려앉은 밤에 산소를 지키며 부는 피리 소리는 구슬펐어요. 심지어 피리 소리를 듣고 온 호랑이가 박연을 잡아먹지 않고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요.

피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박연은 공부하는 틈틈이 이웃에게 피리 연주를 배웠어요. 점차 그가 살던 충청도 영동 고을에서는 피리 잘 부는 청년으로 널리 소문이 났지요.
피리에 빠진 박연은 과거 보러 궁궐에 와서도 악공에게 피리를 배웠어요.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고된 연습을 했지요. 덕분에 앞으로 재능이 크게 꽃필 것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어요.

세종의 스승이 되다

1411년 박연은 34세에 과거에 급제했어요. 처음에는 음악과는 상관없는 집현전 등에서 다양한 관직을 거쳤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는 일이 벌어졌어요.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는 관청의 관리가 되었거든요. 그곳에서 박연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세종을 만나게 되었지요.

“나라를 다스리는데 예와 함께 음악이 중요하오. 의례에 맞는 음악을 연주해야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오.”

“저 또한 그리 생각하옵니다.”

“그대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듯하니, 훗날 내가 임금이 되거든 나를 좀 도와주시오.”

나라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면 항상 음악이 울렸지요. 세종은 훗날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 음악을 발전시킬 인물로 박연을 미리 점찍어 놓았어요. 그는 학문도 공부하고, 음악에 대한 지식도 깊으니 조선의 음악을 발전 시킬만한 뛰어난 인재였지요.

<세종과 박연의 만남>   

박연은 세종이 왕이 된 후 곧바로 음악에 관한 일을 하는 관청의 관리가 되었어요. 국가 행사 때 연주되던 음악을 책임지게 되었지요.

음의 기준을 잡고, 궁중 음악을 정비하다

조선시대 궁중에는 향악, 당악, 아악이 연주되고 있었어요. 향악은 우리 음악, 당악은 당나라 음악, 아악은 중국 주나라 때 음악으로 고려 시기 송나라에서 전해진 음악이지요. 잔치 때는 주로 향악과 당악이, 제사 때는 주로 아악이 연주되었어요.

“전하, 궁중에서 여러 음악이 한데 섞여 연주되니 복잡합니다. 나라의 행사 때는 아악을 연주함이 마땅합니다.”

“조선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는 우리 음악을 듣고, 죽은 뒤 장례나 제사를 지낼 때 중국 음악을 듣게 되니 이 어인 일이오?”

“나라를 다스리는데 기본이 되는 학문이 송의 성리학이옵니다. 그러니 국가 행사에서 아악을 연주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다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소. 하지만 중국에 부끄러워할 것은 없소. 중국의 음악인들 어찌 바르게 되었다 할 수 있겠소?”

박연은 중국 태평성대 시대인 주나라 음악을 복원하려고 했어요. 세종은 아악과 우리 향악이 조화롭게 연주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고요.

세종의 명을 받은 박연은 궁중 음악인 아악을 잘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인 향악도 함께 연구했지요. 또 악기를 손보고, 악보도 정리해 책을 펴냈어요. 차근차근 우리 음악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지요.

어느 날 박연이 세종에게 글을 올렸어요.

“중국 음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기준음을 찾을 수 있는 율관을 만들어 소리를 바로 잡으십시오.”

율관은 국악에서 사용하는 12가지 음을 내는 관이에요. 박연은 율관 중에서도 기준음을 내는 황종 율관을 제대로 만들고자 했어요.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황종 율관을 늘리고 줄여 나머지 11개 율관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그는 음악에서 표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어요.

박연은 중국처럼 기장의 길이를 바탕으로 삼아 황종 율관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다른 악기인 편경 소리와 비교해 보았는데, 원하던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중국의 기장과 조선의 기장은 길이가 달랐거든요. 하지만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완전한 황종 율관을 만드는데 성공했어요.

<12율관 : 악기를 만드는데 기본이 되는 12음을 낼 수 있는 원통형의 관(난계국악박물관)>   

“드디어 기준 음을 찾았구나!”

황종 율관을 만들어 기준음을 찾아낸 박연과 세종은 무척 기뻤어요.

편경을 만들어 조선의 소리를 찾다

박연은 여러 악기의 음을 맞출 수 있는 편경이라는 악기를 만들기도 했지요. 그동안 조선은 중국에서 보내온 편경을 써 왔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망가져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요. 매달린 옥돌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음도 제대로 맞지 않았고요. 세종은 박연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다른 악기들의 음을 맞추려면 어떤 경우에도 음이 변하지 않는 편경이 필요하오.”

“네, 알겠사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편경을 만들려면 옥돌이 필요한데, 옥돌은 중국에서만 나니 어찌하옵니까? 그동안 흙을 구워 만든 기와로 편경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제 소리가 안 났습니다.”

“마땅한 재료가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시오.”

박연은 옥돌을 찾아 여기 저기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편경에 딱 맞는 옥돌을 구해냈어요. 경기도 남양에서 나는 옥돌로 편경을 만들어 보았더니, 소리와 가락이 잘 맞았어요. 박연은 우리나라 옥돌로 만든 편경을 만들어 세종에게 올렸어요. 편경을 연주하자 세종이 고개를 갸우뚱 했어요.

“한 음이 조금 높지 않느냐?”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박연이 돌을 살펴보니 돌을 갈기 위해 그어놓은 먹줄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돌을 다 갈지 않아 음정이 정확하지 않았던 거예요. 세종 또한 대단하죠? 음정을 정확히 알아내니 말이에요. 돌을 다시 갈아 다시 소리를 내보니 그제서야 그 음이 맞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냈다고 해요. 이렇게 완성된 악기가 바로 조선의 편경이에요.

<편경(난계국악박물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숨기라고 한 악기가 바로 편경이다. 음이 변하지 않아 다른 악기들의 음을 맞추는 기준이 되었다.

편경은 모든 악기 음의 기준이 되는 악기로 돌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요. 돌의 두께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데 두꺼울수록 높은 음이 난다고 해요. 세종은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편경을 보고 무척 기뻐했어요. 드디어 조선의 소리를 찾았으니 말이에요.

후대에 더욱 빛난 궁중 음악, 아악

세종은 박연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음악을 더욱 발전시켰어요. 악보를 직접 만들고, 음악도 만들었지요.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을 담은 여민락이라는 곡도 지었고요.
이렇듯 세종 시기 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박연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정리한 음악들이 바탕이 되었으니 말이에요. 그가 정리한 음악은 후대에 더욱 빛났지요.

박연이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타고난 천재성 때문일까요?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는 노력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무엇보다 세종과 박연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았기에 독자적인 기술로 우리 악기를 만들고, 조선의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답니다.

[집필자] 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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