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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임진왜란을 기록하다

<옥연정사(경북 안동시)>   

“아이고 이런, 나라의 큰 어른이 돌아가시다니!”

“이 어른이 계셔서 그래도 이리 살 길이 열렸는데.”

“당시 상황을 아프지만 기록으로 남긴 그 분의 뜻을 생각해보면 좋겠네.”

나라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돌아가셨어요. 전쟁으로 나라의 어려움이 닥쳐 엄청난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분의 활약은 큰 인상을 남겼어요.

게다가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며 소중한 기록을 남겼어요.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랏일을 맡아 훗날의 위험을 준비하다

이 사람이 바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유성룡이에요. 유성룡의 어머니는 천둥 번개 속에서 구름이 커다란 용으로 바뀌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어요. 아버지 유중영은 이 태몽을 들으며 말했어요.

“구름이 용으로 변한 꿈을 꾸고 태어났으니 아이 이름을 성룡이라고 지어야겠소.”

유성룡은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또 글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유성룡은 21세에 당시 나라의 큰 스승인 퇴계 이황을 찾아뵙고 공부를 이어갔어요. 이황 선생은 바른 자세로 열심히 노력하며 학문에 힘쓰는 유성룡을 보면서 흐뭇해하며 말했어요.

“유성룡은 장차 큰 인재가 될 것이다.”

이후 유성룡은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길에 올랐어요. 벼슬길에 오른 뒤에는 온 힘을 다해 나랏일을 했어요. 지혜롭게 일을 잘 처리한 유성룡은 이후 여러 중요한 관직을 두루 맡으며 어려운 나랏일들을 지혜롭게 풀어갔어요.

유성룡은 나랏일을 맡아하면서 이웃 일본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넋 놓고 있다가는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고 예상한 유성룡은 임금에게 전쟁에 대비해 성을 쌓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당시 많은 대신들은 굳이 전쟁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유성룡을 불러 말했어요.

“육지를 지킬 장군과 전라도 지역 바다를 책임질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누구로 하면 좋겠소?”

유성룡은 자신있게 권율과 이순신을 추천했어요. 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사실 당시 권율과 이순신은 벼슬이 높지 않은 데다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처음에는 권율과 이순신을 추천한 유성룡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유성룡은 우직하게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병법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군사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권율과 이순신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어요. 이에 임금도 유성룡의 말을 듣고 권율과 이순신을 임명했어요.

임진왜란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내다

1592년 4월 부산 앞바다로 일본군들이 쳐들어왔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에요. 일본군은 부산을 함락하고 한양을 향해 물밀 듯이 쳐들어왔어요. 준비가 덜 된 조선은 큰 혼란에 빠졌어요. 굳게 믿었던 신립 장군 마저 충주에서 일본군에 패하자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국왕 선조는 한양에서 평양으로 피난을 떠나기로 했어요. 일본군들은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어느새 한양까지 왔어요. 이 때 유성룡은 영의정으로서 군사의 총책임자 역할까지 맡아야 했어요. 유성룡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이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부상을 당한 백성들을 돌보고 위로했어요. 유성룡은 백성들과 마주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렸어요.

‘어찌 하여 우리 백성들이 이런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가. 너무나 처참하고 슬프다!’

유성룡은 굳게 마음을 먹고 꼭 일본군을 무찌르고 백성들이 평안해질 수 있도록 사방팔방으로 애를 썼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전쟁 상황이 더 나빠지자 선조 임금은 명나라로 도망가려 했어요. 임금을 태운 수레가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유성룡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어요.

“전하, 이 수레가 압록강을 넘으면 아니 되옵니다. 중국 땅으로 단 한 걸음이라도 들어가면 이 나라는 영원히 되찾을 수 없습니다. 여기 남아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유성룡의 간곡한 요청으로 왕의 행렬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어요.

다행히 상황이 바뀌어가고 있었어요. 유성룡이 추천했던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고 전국 각지의 의병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일본군을 무찔렀어요. 이후 조선을 돕기 위해 온 명나라 군대와 함께 빼앗긴 평양성을 되찾았어요.

더불어 유성룡이 추천했던 권율 장군은 평양성에서 쫓겨난 일본군들을 행주산성에서 크게 무찔렀어요. 유성룡은 일본군과 맞선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임진강에서 칡넝쿨로 배다리를 만들어 조선군의 대포와 군수 물자를 이동시키게 하였어요.

<부산진순절도
1592년 4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부산진에서 벌어졌던 일본군과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문화재청

<유성룡과 칡넝쿨 부교>   

유성룡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돌보는 한편 명나라 군대와 협상에도 나서야 했어요. 조선을 도와주러 온 명나라는 조선의 사정을 헤아리기 보다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고 했어요. 이에 유성룡은 조목조목 원칙들을 이야기하면서 명나라를 설득했어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거의 끝날 무렵 유성룡은 반대파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한참이 지난 뒤 선조는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후회하며 유성룡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었어요. 그리고 다시 조정으로 불렀어요. 하지만 유성룡은 끝내 조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했어요.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징비록』을 쓰다

유성룡은 고향에서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뒷날의 어려움에 대비한다’는 옛 말을 새기며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써내려갔어요.

“이제 상황이 조금 안정이 되어 지난날을 떠올리니 너무나 황송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내가 임진년(1592년)부터 무술년(1598년)에 이르기까지 대략 정리하였으니 이것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뜻을 표하고 또 어리석은 신하로서 나라에 보답 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한다.”

사실 유성룡은 부끄럽고 창피한 임진왜란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요. 전쟁으로 죄 없는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 슬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유성룡은 마음을 추스르며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적어갔어요.

“일본군이 한양을 점거한 지 벌써 2년, 전쟁의 화를 입어 천리가 쓸쓸하고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주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 날 밤 큰 비가 내리는데 굶주린 백성들이 내 주위에서 내뱉는, 신음하는 슬픈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생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급박한 전쟁의 순간에도 중요한 일들을 매일 기록하였기 때문이에요.

유성룡이 이처럼 치열하게 기록을 남겨 둔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일본군들에게 당한 것은 분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꼼꼼하게 정리해서 이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징비록을 쓰는 유성룡>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더불어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질 않길 바라는 유성룡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은 임진왜란이 어떻게 진행되고 펼쳐졌으며, 또 어떤 대비책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물이에요. 이로 인해 이미 조선 시대 당시에도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과 조정에서 귀하게 보존해왔어요. 오늘날에도 이 책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었어요.

유성룡은 높은 벼슬을 했음에도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은 백성들을 생각하며 자그마한 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청렴하게 살았어요. 1607년 유성룡은 66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유성룡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고향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어요.

부끄럽고 아픈 역사와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유성룡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그 참상을 기록하고, 또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한 대비책을 남겼던 것이에요. 부끄럽고 아픈 역사라도 유성룡처럼 마주대할 때 비로소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징비록
‘징비’란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돌아보고 후에 있을 변란을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집필자] 배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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