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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승려로서 일본군에 맞서다

<건봉사(강원 고성군)>   

“아, 고향으로 가고 싶네.”

“우리가 언제까지 왜놈 땅에 있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우리를 찾으러 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들은 낯선 일본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끌려 온 사람들을 다시 고향으로 데리고 갈 사람이 조선에서 건너왔다는 소식에 힘이 났어요. 과연 이들을 구하러 온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님이 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을 다시 고향으로 데리온 분은 사명대사에요.

“이 물고기들을 다시 강에 풀어줘야겠어요.”

“응규야, 오랫동안 기다려서 잡은 물고기인데 왜 그러니?”

“작은 물통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이 강물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요.”

사명대사가 스님이 되기 전 이름은 임응규였어요. 어렸을 때 응규는 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잡아 온 물고기를 다시 강에 풀어주었어요. 마음씨가 곱고 책 읽기를 좋아한 응규는 부모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시면서 뜻하지 않게 세상에 홀로 남겨졌어요. 부모님을 잃은 슬픔으로 응규는 몹시 힘들어했어요. 이로 인해 응규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응규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직지사에 찾아갔어요.

“자네는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저도 스님처럼 부처님 말씀을 새기며 평생 살고 싶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새기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세.”

“예,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수련하여 부처님의 큰 뜻을 새기며 살아보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주지 스님도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는 응규에게 기회를 주었어요. 응규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루하루 수련을 이어나갔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주지 스님은 응규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며 유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사실 스님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스스로를 살피고 또 부처님 말씀을 새기며 꾸준히 수련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에요. 유정은 스님으로서 지켜야 할 일들을 배우면서 인정을 받았어요.

“승과 시험에 도전해 보거라.”

유정의 모습을 줄곧 지켜 본 주지 스님은 스님들이 응시할 수 있는 과거 시험을 보라고 추천해주셨어요. 유정은 그 말을 따랐고 마침내 승과 시험에 합격했어요. 유정은 승과에 합격하고 나서도 처음처럼 부처님 말씀을 새기며 수련을 계속해 나갔어요.

유정은 높은 학식과 인품으로 나라 안팎에서 유명해졌어요.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유정과 만나려 했어요. 유정은 신분이 높고 낮은 것을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부처님 말씀을 전하였어요. 궁궐에서도 유정을 모셔 이야기를 듣고자 했어요.

그런데 유정은 오히려 자신이 맡은 자리들을 내어놓으며 속리산, 오대산, 금강산 등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절을 찾아다니며 수행했어요. 수행을 하고 또 여러 절들을 찾아다니는 길에서 마주한 백성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서 생각을 키워갔어요.

무예를 배워 나라를 구하다

전국을 다니며 수행한 유정은 묘향산 보현사에서 평생의 스승과 운명적으로 만났어요. 바로 서산대사에요. 서산대사는 유정을 보면서 굉장히 기뻤어요. 열심히 수행하면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했기 때문이에요. 유정 역시 큰 가르침을 건네주시는 서산대사와 함께하는 것이 좋았어요.

“이제는 불경만이 아닌 무예를 닦아 보거라.”

“아니, 스님이 어찌 무예를 배운단 말인지요?”

스승 서산대사가 유정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했어요.

<무예를 수련하는 승려들>   

“무예를 닦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 또한 부처님의 뜻이니라. 스님이라고 해서 불경을 외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무예를 통해 도를 깨치는 것 역시 중요한 수련이다.”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은 유정은 불경을 공부하듯 열심히 무예를 닦았어요. 사명대사는 무예를 익혀 어느새 출중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어요.

스승은 무예뿐만 아니라 유정에게 병법도 공부하게 했어요. 유정은 병법도 열심히 익혔어요. 금강산으로 돌아온 유정은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무예와 병법을 다른 스님들과 함께 익히며 수련해갔어요.

“스님, 큰 일 났습니다. 왜적이 쳐들어옵니다.”

“이 일을 어찌 해야 할까요?”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에요. 왜적들은 유정이 있던 금강산까지 쳐들어왔어요.

‘아, 스승님께서는 이런 날을 대비하셨구나.’

유정은 스승인 서산대사가 미리 무예와 병법을 익히게 한 점을 감탄하면서 스님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왜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자!”

유정은 승병을 모아 함께 평양으로 달려갔어요. 유정은 조선군과 함께 일본군에게 빼앗긴 평양성을 공격했어요. 함께 힘을 모은 조선군과 승병, 의병과 명나라 군대의 활약으로 마침내 평양성을 탈환했어요.

이후 유정은 한양 근처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서 벼슬을 받기도 했어요. 정유재란 때에는 이후 울산과 순천 전투에서도 승리했어요.

<임진왜란과 승병들의 활약>   

담판을 지어 잡혀간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다

임진왜란이 조선군의 승리로 끝나고 쫓겨 간 일본군은 조선과 화친조약을 맺기 위해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왔어요. 조선에서는 이들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또 다시 침략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 사람들 문제를 해결해야 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사람이 누구일지 의논하다가 찾은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유정이었어요. 유정은 뛰어난 학식을 갖추고 또 병법과 외교에도 능한 나라의 큰 어른이었기 때문이에요. 유정은 1604년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일본의 속셈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일본으로 떠났어요.

<조선통신사의 이동 경로>   

유정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수행원에게 조선 임금의 국서를 일본의 수장에게 전하게 했어요. 유정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어요.

“이제 일본과 적국이 되었음에 조선에서 ‘생불(生佛) 사명당’을 사신으로 보내니 재주를 견주어 국교를 바로잡고자 하노라.”

“‘생불’, 살아있는 부처란 말은 우리나라를 업신여기고 속이는 것이 분명하다.”며 일본의 수장은 편지를 보면서 당황했어요. 그래서 여러 신하들에게 유정을 시험해 보도록 했어요.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이는 사명대사(건봉사 사명당의승병기념관)>   

유정에게 이런 저런 문제를 내고 또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의 신하들은 놀랐어요. 유정이 당당하면서도 막힘없이 바른 말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왜 조선에서 유정에게 ‘생불’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일본의 수장 역시 처음의 의심을 거두고 유정에게 예의를 표하며 이야기를 열어갔어요.

유정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을 꾸짖었어요.

“그대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죄 없이 죽고 다쳤다. 게다가 조선 사람을 이곳 일본으로 끌고 온 것은 납득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일본의 수장은 자신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이전 수장이 무리한 욕심을 내었다며 대신 사과를 하고 전쟁 중 끌려 온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유정은 일본에 머물면서 포로가 되어 끌려 온 조선 사람들을 돌봤어요.

1605년 마침내 유정은 일본군에게 붙잡혔던 3천 5백여 명을 이끌고 조선으로 돌아왔어요.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수많은 이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한 유정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어요. 이후 유정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보며 지내다 1610년 해인사에서 열반에 드셨어요. 유정이 돌아가시자 나라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였어요.

사람들은 유정의 큰 활약을 기리면서 사명당이란 호를 갖고 있던 유정을 사명대사라 높여 불렀어요. 그래서인지 사명대사와 관련된 신비한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어요. 일본에 건너갔을 때 사명대사를 시험하기 위해 뜨겁게 달군 방에 넣었지만 막상 사명대사는 오히려 방안을 춥게 만들어 수염에 얼음이 맺혔다는 이야기 등등이에요.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극적으로 구해 냈던 사명대사를 기리면서 만들어진 이야기겠죠.

이런 신비한 이야기는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밀양 표충사에도 전해지고 있어요. 표충사에 있는 표충비는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려요. 신기하게도 이 표충비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면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사명대사가 펼친 활약들을 떠올리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살펴보면 어떨까요?

<표충비각(경남 밀양시)>   

[집필자] 배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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