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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지구는 둥글고 스스로 돈다!

<홍대용과학관(충남 천안시)>   

“자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는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인가?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해?”

“청에 다녀온 어느 유명한 학자가 말했다네.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네. 자네도 그가 지은 책을 한 번 읽어보게나.”

과연 조선 시대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렇게 주장한 실학자는 누구일까요?

실용의 중요성을 깨우치다

홍대용은 1731년(영조 7년) 충청도 천안의 수촌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홍대용의 집안은 당시 권세 있는 가문에 속해 있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자랐어요.

열두 살이 되던 해 홍대용은 서원에 들어갔어요. 홍대용은 서원에서 존경하는 스승 밑에서 열심히 학문을 익혔어요.

홍대용은 명이 망한 뒤에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자 중국의 문명을 계승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점차 비참해지는 것을 보고서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경전 문구만 외운다고 나라가 강해질 수 있을까?’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홍대용>   

학문이 깊어짐에도 의구심을 풀지 못한 홍대용의 마음은 답답했어요. 홍대용은 호기심이 많았고 생각이 자유로웠지요. 그런 홍대용에게 더 넓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했요.

“백성과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세상에 관심 두지 못할 것은 없다. 그것이 선비의 길이다.”

‘참된 학문을 하는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래 의문을 가져야 해! 호기심과 의문이야말로 학문의 시작이야!’

홍대용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기를 즐겼어요. 뿐만 아니라 관찰하고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늘의 법칙에 관심을 갖다

어느 날 홍대용은 훗날 유명한 실학자로 성장한 박지원을 만났어요. 두 사람은 이리 잘 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지요. 이날은 홍대용에게 자신보다 어리지만 평생의 벗을 얻은 뜻깊은 날이었어요.

홍대용이 박지원과 광통교를 지나고 있을 때였어요.

“지금 농사철일 텐데 왜 이리 거지들이 많을까요?”

“시골에서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당시 시골에는 자기 논밭을 가지고 농사짓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대부분 농사지을 땅을 빌려 먹고 살았지요. 그런 땅조차 없던 사람들이 떠돌거나 한양으로 모여 들었어요.

“양반들도 문제입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먹고살기 힘들어 구걸하는데 여기저기 놀고먹는 양반들이 널렸어요. 쯧쯧…”

박지원은 한양의 양반들을 보며 혀를 찼어요.

홍대용은 잠시 깊이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어요.

“그래! 아무도 반대하지 못할 하늘의 법칙을 연구하겠어. 하늘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계산해서, 모든 별과 해와 달의 움직임이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보여 줄 거야.”

유교의 가르침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정말로 하늘이 평등하다면 땅도 평등할 것이겠지요. 그럼 신분 따위를 내세우며 놀고먹는 양반들은 없어질 것이고요. 홍대용의 말에 박지원은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혼천의를 제작하다

홍대용은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도구인 혼천의를 만들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이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나주 목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나경적이라는 학자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홍대용은 나경적을 찾아가 자신의 생각들을 얘기해 주었어요. 그러자 그는 홍대용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 갔어요. 그의 방에는 매우 정교하게 만든 자명종이 있었어요. 홍대용은 그가 얼마나 훌륭한 과학자인가 금방 알 수 있었어요. 홍대용은 바로 나경적에게 가르침을 구했어요.

<홍대용과 나경적의 만남>   

1760년 이들은 합심하여 혼천의를 만들기 시작하였어요. 홍대용의 서양 과학에 대한 깊은 지식과 나경적의 정교한 제작 솜씨가 없었다면 혼천의 제작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1년을 훌쩍 넘기고 드디어 혼천의를 완성하였어요. 홍대용은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어요. 그런데 톱니 개수도 틀리고 생각보다 복잡하였고 크기도 컸어요. 혼천의에 표시한 작은 눈금 차이에도 실제 하늘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지요.

‘보다 간편하고 정확한 혼천의를 만들어야겠어.’

‘자명종을 움직이는 톱니바퀴 방식을 응용해 보자.’

또 다시 1년이 흘러 이번엔 정확한 혼천의를 만들어 냈어요.

“드디어 혼천의를 완성했다! 해냈어!”

홍대용은 감격에 겨워 목이 메었어요. 홍대용이 그토록 원하던 혼천의를 가지게 된 순간이었어요.

<천문을 관찰하는 홍대용>   

홍대용은 고향인 수촌 마을에 농수각이라는 누각을 짓고 완성된 혼천의를 설치하였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천문대가 탄생된 것이지요.

북경을 다녀오다

‘서양 과학자들은 어떻게 하늘의 움직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듯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걸까?’

1765년 홍대용은 평생소원이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어요. 바로 청나라 수도인 북경(연경)에 사신단으로 가게 된 것이에요.

북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번화했어요. 상점가, 화려한 서양식 건물 등, 보는 것마다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청은 서양과 활발한 교류로 다양한 문물이 들어와 있었어요.

“청이 이토록 발전하였단 말인가!”

<베이징에서 만난 서양 문물>   

망원경을 살펴보았어요. 서양 악기인 오르간도 보았어요.

‘망원경 통은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통의 크기는 조총의 통만하고, 길이는 석 자 남짓, 양 끝에는 각각 유리를 끼웠다.

‘건반을 누르면 파이프 구멍이 열리고 닫히고.... 사람의 호흡이 필요 없고 기기만으로.... 역시 서양 방식이다.’

역시 홍대용의 호기심은 남달랐어요. 홍대용은 하루빨리 서양 선교사를 만나 천문과 수학에 대해 토론하고 싶었어요.

먼저 북경의 천주교당부터 방문하였어요. 서양식 건물의 응접실 벽면에 걸린 세계지도와 천문도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서양인 신부는 홍대용에게 천체 모형을 보여 주었어요.

홍대용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펼쳐진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 지구가 있었거든요.

“어떻게 저 넓고 먼 하늘에 있는 별들의 거리와 각도를 계산하여 만들었는지요?”

선교사는 기상대 그림을 가져와 각종 기기들에 대해 알려 주었어요. 그리고 그 기기들을 이용해 별 사이의 각도를 재고, 그것으로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별과 별 사이의 각도를 재어 거리를 알아낸다. 거대한 우주를 정확한 비율로 축소한 우주 모형을 만든다. 그것으로 우주의 모습을 알 수 있다.”

홍대용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잠시 멍하니 있었어요.

‘이것이 서양 과학의 비밀이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계산할 수 있는 학문이 서양 과학의 힘이다.’

천주당을 나서는 홍대용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어요.

이번 여행에서 홍대용은 청의 선비들과도 교류했어요. 그들과 인간과 우주, 유학에 대한 생각을 토론하였어요.

“먼 곳에서 마음의 벗을 만나다니, 매우 기쁜 일입니다.”

홍대용은 귀국하고도 이들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였어요. 그리고 이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조선도 변해야 한다.’

북학파의 희망이 되다

“어찌 이런 일이... 정말 청의 선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셨군요. 청의 오랑캐와 벗하다니 대단하십니다.”

홍대용이 북경을 다녀와 쓴 책은 박지원과 그의 젊은 제자들에게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어요. 이들은 모두 한양에 있는 백탑 근처 모여 살며 함께 토론하고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백탑파라 불렀어요. 그들은 홍대용의 쓴 책을 통해 변화하는 청의 선진 문물을 알게 되었어요.

홍대용은 백탑파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웠어요.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그들은 홍대용에게 바깥세상과 청의 선진 문물에 대해 알고 싶어 했어요.

“청의 선비들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공부를 하는지요?”

“청의 선비들은 여러 가지 공부를 한다네. 유학만이 옳다고 하면 금세 비웃음을 사지.”

홍대용은 백탑파 젊은이들에게 북경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세계의 변화를 알려 주었어요. 홍대용과 백탑파 젊은이들은 자주 모여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즐겼어요. 이때부터 이들은 북쪽에 있는 청의 발전된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 운동을 일으켰어요. 바로 ‘북학파’의 시작이었지요.

홍대용은 백탑파 젊은이들에게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을 틔워 주었고,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할 일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어요.

“모든 별들은 돈다. 공평하다. 중심이 없다. 어떤 별이든 중심이 될 수 있다.”

“하늘에서도 모든 별이 평등하고 소중하듯이, 이 세상에서도 장사꾼이든 똥지게를 진 사람이든 양반 사대부든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소중하다네.”

이것이 홍대용이 하늘을 연구하여 얻은 하늘의 진정한 모습이었어요. 홍대용의 이야기를 들은 백탑파 젊은이들의 가슴에 희망과 용기가 솟았어요.

조선의 선비 홍대용은 서양 과학에 뒤지 않는 우주론을 남겼어요. 특히 그가 지은 『의산문답』에서 그의 생각들을 잘 살펴볼 수 있어요. 홍대용의 과학에 대한 연구와 사상은 우리나라의 과학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지요.

<홍대용의 초상화
청의 선비 엄성이 그린 초상화이다. >   
실학박물관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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