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있는 초등역사
  • 조선
  • 김홍도
  • 김홍도, 조선 백성을 그림에 담아내다

김홍도, 조선 백성을 그림에 담아내다

<단원미술관(경기 안산시)>   

“이보슈, 당신 뭔데 자꾸 우리들을 훔쳐보는 거요?”

“진정하시게. 난 결코 이상한 사람이 아닐세. 난 도화서 화원이라네. 그대들의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 뿐이네.”

“도화서 화원이면 궁에서 임금님이나 그릴 것이지 우리 같은 백성들 사는 모습은 뭐 하러 그린다 말이오?”

도화서는 조선 후기 나라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고 관리하던 관청이에요. 여기에 소속된 화가를 화원이라 하였어요. 그런 도화서 화원이 왜 궁의 일이 아닌 천한 백성들의 생활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까요? 이 도화서의 화원은 누구일까요?

스승 강세황을 만나다

어릴 때부터 김홍도는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홍도 어머니는 자식의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주변의 사람들도 그림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훌륭한 스승에게 배울 것을 권했지요.

마침 당시 조선을 주름잡던 화가 강세황이 안산에 내려와 살고 있었어요. 김홍도는 친척의 소개로 그를 찾아 갔지요. 그는 김홍도의 그림들을 찬찬히 보았어요.

“음~ 이 그림들을 저 아이가 그린 것이 맞소?”

강세황은 믿기지 않은 듯한 놀란 표정을 지었지요.

“그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제대로 그림 공부를 더 하면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될 듯하구나. 앞으로 우리 집에서 그림 공부를 하도록 하여라.”

강세황은 김홍도를 칭찬하고 제자로 받아 주었어요. 김홍도가 강세황을 스승으로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당시 그림 그린다 하는 사람들은 강세황에게 한 마디의 평가라도 듣는 것을 큰 영광으로 삼았지요.

김홍도는 강세황 밑에서 그림을 기초부터 다지며 착실히 배웠어요.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도 열심히 보며 그림을 보는 눈도 길렀어요. 스승의 말대로 글공부도 열심히 했지요.

“홍도야, 그림에 글씨가 있으니 더 멋지지? 훌륭한 화가가 되려면 글도 잘 짓고 글씨도 멋있게 쓸 줄 알아야 된단다.”

당시 글씨는 그림에 곁들여져 그림의 격을 높일 뿐 아니라 그림의 내용 등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무엇보다도 강세황이 김홍도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서로 비록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서로 아껴 주고 북돋아 주며 평생 스승이자 동지로 친하게 지냈어요.

도화서 화원으로 그림 실력을 뽐내다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을 통해 여러 솜씨 좋은 화가들과 사귀며 그림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스승 강세황의 자상한 가르침 덕에 그림 실력도 나날이 발전했어요.

마침내 김홍도는 스승의 추천으로 도화서라는 관청의 화원이 되었어요. 당시 중인 출신 화가들이 도화서 화원이 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이었어요. 이제 김홍도는 살림 걱정 덜 하고 편안히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지요.

“새로 화원이 들어왔는데, 그림 솜씨가 대단하다 하더군.”

“강세황 어른이 나라를 빛낼 재주라 칭찬할 정도면 말 다했지”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해서 벌써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다는군. 우리도 구경가세나”

도화서 화원이 된 후 김홍도는 곧 그림의 천재성을 드러냈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유명해졌지요.

1773년 29살의 젊은 궁중 화가 김홍도는 쟁쟁한 화가들과 영조와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화원으로서 최고의 영광스런 일이었어요. 김홍도는 초상화를 그린 공으로 벼슬까지 하게 되었어요. 이 일로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어요. 김홍도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졌고, 주문이 밀려 1년 넘게 기다리거나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한편 김홍도는 초상화를 그린 일로 정조와 만나게 되었어요. 이 둘의 인연은 정조가 먼저 죽기 전까지 지속되었어요.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도 참여하였어요. 또 나라의 중요한 행사 그림도 도맡아 그렸지요. 김홍도는 정조의 든든한 지원 속에 나라의 으뜸 화원으로 활약하게 되었어요. 정조는 그림 실력만큼 김홍도를 아끼고 믿었지요.

<도화서 화원 김홍도와 정조>   

백성들의 일상 생활모습을 그림에 담다

정조는 백성을 위한 개혁 정치를 하고자 노력하였어요. 그러기 위해선 백성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했지요.
정조가 김홍도의 풍속화를 감상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문득 정조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김홍도를 들라 명하였어요.

“네 붓 끝에 내 꿈을 실어도 되겠느냐? 네가 나의 눈이 되어 백성들이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숨김없이 그려오라.”

정조는 백성들을 잘 살피길 원했어요. 그래서 자신이 아끼는 김홍도에게 백성들의 생활 모습을 그려오게 하였던 것이에요. 김홍도는 백성들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했어요.
김홍도가 고민 끝에 먼저 간 곳은 바로 서당이었어요. 서당에서 또래들과 맘껏 어울리며 공부하는 모습이 궁금했어요.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서당에 한 아이가 훈장님께 회초리 맞을 일이 두려워서인지 대님을 느릿느릿 풀며 훌쩍이고 있었어요.

“이 녀석 숙제를 안했나? 훈장님께 혼쭐이 나겠구나”

그런데 누가 혼나면 분위기가 무거운데 오히려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어요. 김홍도는 바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어요. 훈장과 아이들의 표정과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훈장님의 표정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우는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 듯 했어요. 입을 가린 채 무언가 말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어요. 훈장님이 물어보는 문제의 답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어요. 아예 책을 쓱 밀어 주면서 답을 알려주는 듯한 아이도 있었어요. 갓을 쓴 것으로 보아 어린 나이에 장가를 든 모양이에요. 등지고 있는 작은 아이는 킥킥거리며 웃고 있는 듯 보였어요.

김홍도는 울고 웃는 아이들과 갈등하는 훈장의 모습들을 읽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감정들을 표정과 입고 있는 옷의 주름선으로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였지요.

어디서인가 와하는 함성 소리가 들려왔어요. 김홍도는 발걸음을 옮겼어요. 씨름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어요.

“어허 씨름판이 벌어졌군. 어어 누가 이기려나. 선수들이나 구경꾼들의 표정이 재미있군.”

구경꾼과 선수들이 어우러진 씨름판의 열기는 뜨거웠어요. 김홍도는 지체 없이 종이를 펼쳤어요. 씨름판의 열기와 장면들을 그대로 담고자 김홍도의 붓놀림은 거침이 없었어요.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   
국립중앙박물관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상대 선수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어요. 승패가 막 갈리기 전이에요. 구경꾼들과 선수들의 표정들은 엇갈리고 있었어요. 김홍도는 제각기 다른 얼굴 표정과 엇갈려 앉은 자세를 힘 있고 간결한 붓선으로 표현하였어요.

김홍도는 씨름판에 있는 무려 22명의 인물들을 모두 개성을 살려 화폭에 담아냈어요. 땅바닥 짚고 입을 헤 벌리고 재미있어 하는 사내가 보였어요. 인자한 듯 보이는 노인의 모습과 어른들 뒤에 움츠린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표현하였어요.

점잖게 부채로 표정을 감춘 선비가 저린 다리를 참지 못하였는지 슬그머니 다리를 앞으로 뺐어요. 선수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내도 보였어요. 벗어놓은 신발로 보아 출전을 기다리는 다음 선수일 것 같았어요.

유독 먼 하늘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엿장수도 그렸어요. 승패가 갈리면 이기는 편으로 재빨리 달려가려는 듯 보였어요. 두 선수가 벗어놓은 가죽신과 짚신으로 신분도 알 수 있었어요. 김홍도는 양반과 백성이 함께 어울려 씨름을 구경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어요.

어느 봄날이었어요. 어디서 은은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왔어요. 김홍도는 연주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였어요. 여섯 명의 악공에 둘러싸여 한 아이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어요. 한창 흥이 올라와 있는 춤판이었어요.

“연주 소리에 맞추어 춤추는 아이의 모습이 감동적이구나.”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무동>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는 순간 숨이 멎었어요. 춤추는 아이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어요. 춤추는 아이의 춤사위는 아름다웠고 관객들은 흥에 겨워하고 있었어요. 소리가 마치 정지된 듯 했어요.양 볼에 힘주어 피리를 부는 악공과 하늘 높이 올라가려는 무동의 춤동작이 함께 어울리고 있었어요.
이것을 놓칠 김홍도가 아니었어요. 김홍도는 얼른 붓을 꺼내 들고 이 장면을 그렸어요. 마치 연주 소리에 어울려 춤을 추는 듯이 말이지요.

무동의 흥을 표현하기 위해 김홍도가 선택한 것은 선이었어요. 굵어졌다 가늘어지고 선명하다 흐려지는 선으로 실제와 똑같이 표현하였어요. 김홍도는 무동의 얼굴과 옷자락에 역동적인 흥까지 넣고자 하였어요.

이 밖에 김홍도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타작하는 모습, 우물가의 모습, 빨래터의 모습, 주막의 모습 등 백성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동감 있게 그림으로 담아내었어요.

정조는 김홍도의 생생한 풍속화를 보고 무릎을 치며 감동하였어요. 정조는 김홍도 덕에 백성들의 삶을 실제로 더 잘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를 정치에 반영하고자 하였지요.

김홍도는 최고의 화원으로 대우 받게 되었어요. 그는 정조의 특별한 배려 속에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었어요.

김홍도는 조선 후기 당시 백성들의 생활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었어요. 백성을 위한 정조의 정책과 김홍도의 천재적인 재능이 더해져 조선 후기에는 백성의 삶이 담긴 풍속화가 꽃을 활짝 피우게 되었어요.

김홍도가 그린 수많은 풍속화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었어요. 만약 여러분이 지금 김홍도와 같은 풍속화가라면 사람들의 어떤 생활 모습을 그림에 담을 것인가요?

[집필자] 조윤호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