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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담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경(울산 울주군)>   
문화재청

“할아버지, 어떤 짐승들이 있어요? 또 사냥은 어떻게 하나요?”

“얘야, 이 바위를 잘 보렴. 여기 많은 짐승들이 보이지? 사냥하는 우리 마을 사람도 보이는구나.”

옛날 일들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제일 먼저 기록과 유물이 떠오르겠지만 바위 그림도 빼놓을 수 없어요. 거대한 바위 그림이 있는 울산으로 가 볼까요?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나서다

울산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을 따라 내려가면, 높은 절벽이 병풍처럼 강을 막고 서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되지요. 산과 계곡,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이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넙죽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여기를 ‘반구대’라고 불러요.

“이처럼 다양하고 규모가 큰 바위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요?”

반구대의 거대한 바위에는 높이 약 5미터, 너비 약 8미터에 걸쳐 여러 가지 동물들과 사냥 도구 및 사냥하는 모습 등이 빼곡히 그려져 있어요. 저런 높이의 바위에 그림 그리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 같으면 사다리차라도 부르면 될 텐데 말이지요.

학자들은 반구대 암각화가 한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대를 이어 가며 그려 나간 것으로 보고 있어요.

반구대 마을 선사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꿈과 희망을 바위 그림으로 새겨 놓았어요. 한마디로 반구대 바위는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린 선사 시대의 도화지였던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신석기 시대를 지나 청동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바위 그림이 많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지요.

  

다양한 동물들을 그리다

바위 그림은 물감 같은 것으로 칠한 그림이 아니에요. 날카로운 도구로 바위 면을 긁어서 새겼지요. 돌칼과 같은 도구로 선을 그어 형체를 표현한 그림도 있지만, 안쪽 면을 끌 같은 것으로 우묵하게 파내어 형체를 표현한 그림이 많이 보여요.

<반구대 암각화>   
문화재청

반구대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요. 배, 그물, 작살, 방패 등 사냥과 물고기 잡이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해 개, 호랑이, 표범, 사슴, 멧돼지, 여우, 늑대 등의 뭍짐승과 물개, 상어, 거북, 고래 등의 바다짐승이 새겨져 있어요. 또한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 탈을 쓰고 있는 주술사, 그물이나 울타리에 갇혀 있는 짐승 등 구체적인 실제 모습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요.

<반구대 바위 그림의 탁본>   
문화재청

고래잡이를 하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놀랍게도 고래잡이 나가는 배의 그림을 포함해 다양한 고래 그림도 잔뜩 그려져 있어요. 이곳에 고래가 살았고 당시 사람들은 고래잡이를 하였음이 분명하지요.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고래가 많이 있었나요?”

“선사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큰 고래를 사냥할 수 있었죠?”

더욱 신기한 것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들도 다양하고, 고래 종류마다 독특한 특성을 잘 표현해 놓았다는 것이에요. 등에서 두 갈래로 물을 뿜어 내는 긴수염고래, 작살이 꽂힌 고래, 새끼를 가진 고래,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쇠고래, 새끼에 젖을 주는 고래, 머리 모양이 뭉툭한 향유고래 등 고래의 특징을 잘 살렸어요.

옛날 선사 시대 반구대 사람들은 배를 타고 지금의 태화강을 따라 내려가 울산 앞바다에서 주로 고래잡이를 하며 살았어요. 고래잡이는 그들에게 풍요로운 수확이었어요. 고래를 잡으면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게다가 고래를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중요한 고래잡이를 나가기 전에 그들은 바위 그림 앞에 모여 성공을 비는 의식을 치루었어요. 돌아와서는 고래잡이 성공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였지요. 그리고 고래잡이의 경험을 바위에 그려 놓았지요. 이렇게 바위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전설이 되고 지혜가 되었어요. 고래를 잡았던 선사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나요? 고래잡이에 성공한 용사들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그림을 보며 생각해볼까요?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삶을 배우다

암각화는 대부분 강가 절벽이나 바위에 새겨졌어요. 바위 그림 밑에는 대개 넓은 공간이 있어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올렸어요.

“선사 시대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든 바위 그림을 그렸을까요?”

반구대 바위 그림에는 물고기와 바다짐승, 뭍짐승이 가장 많이 그려져 있어요. 그리고 이들 짐승을 잡는 도구와 무기도 함께 그렸지요.

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사냥과 고기잡이를 배웠어요. 창을 던지는 법, 그물 치는 법, 짐승의 종류와 물고기의 생김새 등등을 하나씩 배워 나갔지요. 뭍에 사는 사람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할 때 경험 많은 어른의 지혜를 배워야 했어요. 사냥은 여럿이 힘을 모아 하는 일인 만큼 지식과 기술의 학습이 필요하겠지요.

이것으로 볼 때, 이 거대한 바위 그림은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사냥과 고기잡이를 가르치는 일종의 그림 교과서가 아닌가 싶어요.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서 마을 어른들의 설명을 들으면 훨씬 이해하기 쉬웠겠지요. 반구대 암각화 앞 공간은 이렇게 마을 학교의 구실을 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마을 사람들이 험한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갈 때에는 이 암각화 앞에 모여 고기를 많이 잡아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어요. 반구대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성한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장소였어요. 그리고 함께 모여 정보를 나누고 소통하는 광장이 되었지요.

울산에 있는 암각화에는 신석기·청동기 시대에 사냥과 고기잡이를 주로 하며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새겨져 있어요. 울산 반구대 바위에 그린 그림은 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바람까지 알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유적이지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절을 찾다가 발견한 바위 그림

1970년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울산 지역 불교 유적들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조사단은 원효가 머물렀다고 하는 반고사라는 절의 터를 찾고 있었지요. 삼국사기에 반고사 위치는 반구대 위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절터는 찾을 수 없었어요. 당시 반구대는 사연댐 때문에 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실망스런 상황이었어요.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불탑 흔적이 남아 있는 탑거리가 있소.”

그때 근처 마을에 사는 최경환 노인이 조사단에 희망을 주었지요. 조사단은 노인과 함께 탑거리에서 탑 흔적을 살피고 있었어요.

“이 보시오. 저기 아래 바위에 무슨 그림이 있소.”

노인은 바위 하나를 가리키며 소리쳤어요. 조사단은 마애불이려니 하고 내려가 보았어요. 그런데 바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이듬해 조사단을 이끌었던 문명대 교수는 일행과 다시 이곳을 답사했어요. 바위 그림이 못내 궁금해서였지요. 마을 주민 최경환씨 등의 도움을 받아 사연댐 상류 지역의 바위면을 조사하였어요. 이번엔 참 운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심한 가뭄으로 물이 빠져 바위가 통째로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울주 천전리 각석’이에요.

국보 제147호로 지정된 울주 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암각화에요. 바위에는 겹마름모, 겹동그라미 등의 무늬와 사슴, 물고기, 사람 얼굴의 동물 등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어요. 이후 암각화는 전국에서 약 30여 곳이 발견되었어요.

여러분은 자신의 삶의 모습을 어딘가에 표현해 본 적이 있나요? 이번 현장체험학습에는 가족들과 함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살펴보고 소중한 사진을 찍어 남겨 보면 어떨까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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