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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의 혁명, 직지심체요절

<흥덕사지(충북 청주시)>   
문화재청

“이번 궁궐에서 난 불로 또 귀한 책들이 다 불에 타 버렸다네.”

“그 책들 모두 다시 찍어 내려면 바쁘겠구만.”

“저번처럼 나무활자가 자꾸 쪼개지면 안될 텐데, 걱정이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은 고려의 목판 인쇄술이 얼마나 발달하였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에요. 고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쇄술을 더욱 발전시켰어요. 직지심체요절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직지심체요절은 무엇인가요?

<직지심체요절 본문>   
문화재청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말 승려 백운이 지은 불교 관련 책이에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에요. 제목이 굉장히 길고 복잡하지요? 그래서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 등으로 부르지요. 지금부터는 직지로 부를게요.

책 제목을 풀이해 보면 이 책에 대해 알 수 있어요. 백운(白雲) 승려(和尙)가 부처님(불 佛)과 스님들(조 祖)이 마음의 본모습을(심체 心體) 바로 가리켜 보인(직지 直指) 가르침 중에서 중요한 부분(요절 要節)을 뽑아 기록하여(초록 抄錄) 펴냈다는 뜻이에요.

즉 직지는 고려의 승려 백운이 부처와 스님들의 말씀,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만든 책이에요. 그래서 직지는 당시 승려들이 수행하거나 공부할 때 교과서로 사용하였지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 직지

그런데 직지가 왜 유명해졌을까요? 바로 이 책이 세계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이기 때문이에요. 1377년에 백운의 제자들이 청주 흥덕사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직지를 상·하 2권으로 엮어 금속 활자로 만들었어요.

직지는 세계 인쇄의 역사를 새롭게 바꾸었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금속 활자는 서양에서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직지의 발견으로 우리나라 금속 활자 기술이 더 앞섰다는 것이 확인되었거든요.

사실 고려는 직지 간행 이전부터 금속 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 1234~1241년 최우의 명령에 따라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금속 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상정고금예문』은 옛날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예문(예절, 의례 등)을 모아 편찬한 책이에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기록만 있고 실물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지요.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1440년대 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로 성서를 찍어 내는 데 성공했어요. 그래서 이 구텐베르크의 인쇄본 성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책이라 여겼지요.

그런데 고려의 직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런 사실이 바뀐 거예요. 직지는 현재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이에요. 그래서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더구나 『상정고금예문』의 경우로 볼 때 고려는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활자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서서 금속 활자로 책을 인쇄했던 것이에요. 이 같은 사실을 보면 고려 인쇄술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직지가 얼마나 가치 있고 자랑스러운 금속 활자본인지 알 수 있어요.

<직지심체요절(금속 활자본)>   
강화역사박물관(e뮤지엄)

고려가 금속 활자를 만든 이유는?

금속 활자는 왜 만들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책을 읽으려면 책이 여러 권 필요하겠지요. 이럴 때 옛날 사람들은 그냥 손으로 일일이 책을 베껴 썼어요. 이것을 ‘필사’라고 하지요.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책 한 권을 옮겨 적는 것은 힘들기도 하거니와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러다 목판 인쇄술이 발명되었어요. 그때부터 같은 책을 펴내기가 매우 쉬워졌지요. 일단 목판을 새겨 놓으면 같은 내용을 수없이 찍어 낼 수 있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고려의 팔만대장경이 있지요.

그런데 그런 목판 인쇄도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책의 내용을 고칠 때마다 목판을 다시 새겨야 했거든요. 그리고 다른 책을 만들려면 또다시 새로운 목판을 만들어야만 했어요. 책의 한 면 한 면을 그대로 새기는 것이기 때문에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요. 또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이 찍거나 오래되면 부서지거나 썩었어요.

금속 활자 인쇄는 금속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만들어 놓고서 책의 내용대로 글자를 조합하여 인쇄하는 것이에요. 활자는 글자 그대로 살아 있는 글자란 뜻이에요. 글자를 한 자씩 새겨 놓아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옮겨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금속 활자는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새로운 책을 한꺼번에 계속 찍어 낼 수 있었어요. 또 나무가 아닌 금속이라 더 튼튼하고 세월이 흘러도 글자 모양도 쉽게 변하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었어요.

고려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들은 대부분 불교와 관련된 책들이에요. 고려 사람들은 불교를 믿었고 모든 지식인들에게 불교 지식은 필수였지요. 고려의 지배층은 모든 백성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교육시켜서 불교 사상으로 통일시키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책이 인쇄된 것이 아니라 지식인과 백성들이 꼭 읽어야 할 필수 도서만을 인쇄한 것이에요. 또한 고려에서 인쇄된 책들은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지식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반면 서양에서는 금속 활자로 그리스 고전 작품들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을 인쇄했어요. 성경도 다양한 언어로 인쇄되어 라틴어를 몰랐던 사람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요.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상이 지식의 독점을 깨고 유럽 전체에 퍼져 나갔어요. 이것이 유럽을 변화시킨 결정적 요소가 되었지요.

서양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 인쇄를 ‘천 년 동안의 최대 사건’으로 꼽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금속 활자는 목판의 단점을 보완하여 많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양의 책을 손쉽게 읽을 수 있게 해 주었어요. 그 전에는 일부 지배층만이 책을 읽었지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쉽게 접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어요. 책은 곧 정보와 지식이었지요. 금속 활자의 발명으로 인류 역사는 또 한 번 크게 발전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직지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이유는?

『직지심체요절』은 승려 경한(백운은 그의 호)이 상·하 2권으로 지은 책이에요. 그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세 번째 해인 1377년에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간행하였어요.

그런데 그런 『직지심체요절』이 현재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886년 조선은 프랑스와 통상 조약을 맺었어요. 이후 1887년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프랑스를 대표한 외교관으로 우리나라에 근무하게 되었어요. 그는 우리나라에 있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고서와 각종 문화재를 수집하였어요.

『직지심체요절』의 수집 경로는 정확하게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1901년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저술한 「조선서지」의 보유판에 『직지심체요절』이 게재된 것으로 보아 분명한 것은 1900년경에 이미 꼴랭 드 쁠랑시가 프랑스로 가져간 수집품들 속에는 『직지심체요절』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1911년 『직지심체요절』은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3)라는 사람이 경매를 통해서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1950년경 『직지심체요절』은 앙리 베베르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기증되었지요.

그럼 프랑스에 있던 『직지심체요절』은 어떻게 발견되었을까요?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유학생 박병선 박사에 의해 발견되었어요. 1972년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었던 그녀는 유네스코가 후원하는 국제 도서 전시회에 전시할 책을 고르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서고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끼여 있던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오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 책이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지요.

『직지심체요절』의 운명이 참으로 파란만장하지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의 존재조차 세상의 빛을 못 볼 수도 있었으니까요.

여러분도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많은 책을 읽고 있지요. 이렇게 책이 많아지고 그 책들을 읽으며 지식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은 선조들의 인쇄 기술 덕분이에요. 우리나라가 예부터 인쇄 기술이 발달된 나라였다니 뿌듯하지 않나요? 이제 여러분이 책을 읽을 때 우리나라 역사의 자랑스러움이 함께 생각나지 않을까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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