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늘이 백성을 내시고 이를 나누어 사민(四民)을 삼으셨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각 자기의 분수가 있습니다. 선비[士]는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농부는 농사에 힘쓰며, 공장(工匠)
은 공예(工藝)를 맡고, 상인은 물화(物貨)의 유무(有無)를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니 뒤섞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선비가 농사에 힘쓰고 농부가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려 한다면, 거스르고 어지러워 목적을 이루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으며, 위아래가 바뀌어 어찌 법이 없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의원과 역관
을 권장하고자 하시어 그 재주에 정통한 자를 특별히 동반(東班)
과 서반(西班)
에 뽑도록 하셨으니, 신 등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주례(周禮)』를 살펴보니, 의원은 의학 및 치료 등을 관장하여 독과 약을 모아서 의원의 일에 종사합니다. 연말에 그 일을 확인하여 녹봉
을 정하는데, 열에 열을 모두 완수한 자를 상등(上等)으로 하고 열에 넷을 잘못한 자를 하등(下等)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등급의 차례를 나누어 녹봉
의 많고 적음을 정한 것으로, 이를 가지고 고위 관료의 반열에 올렸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역관
의 경우 말을 전하여 타이르고 응대하는 일을 돕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 임무가 본래 가볍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의술이 화타(華佗)
에 열기(列記)할 수 없다는 것이 어찌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조정에서는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의관과 역관
을 따로 설치하였고 그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살펴 벼슬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여 녹봉
을 주었으니, 거의 중국 주(周)나라의 관리 제도에 부합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조금 우수한 자는 간혹 올려서 당상관
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2품으로 승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 또한 특별한 은전(恩典)이지 선왕(先王)의 제도는 아닙니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미천하고 본래 명사는 아닙니다. 그러니 외람되게 나라의 은혜를 입은 것이 지나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국가의 권장이 지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분수가 아닌 것을 희망하여 스스로 높은 관직을 차지하려 합니다. 마땅히 추궁하고 엄히 징계하여 그 나머지 무리를 경계해야 할 것인데, 전하께서는 죄를 주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또 채용하셨습니다. 이는 축문(祝文)을 낭독하는 사람에게 준(樽)
는 같은 반열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의원과 역관
은 그 일에 온 힘을 쏟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를 다 잃고 하나도 좋은 것이 없다 하겠습니다.
'공장(工匠)' 관련자료
'역관' 관련자료
'동반(東班)' 관련자료
'서반(西班)' 관련자료
'녹봉' 관련자료
'녹봉'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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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의 명의
와 같이 뛰어난 무리라고 하더라도, 전사(前史)에서는 모두 방기(方技)
의술(醫術) 및 천문(天文), 복서(卜筮), 상명(相命), 둔갑(遁甲), 감여(堪輿) 등의 술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로 열기(列記)하고 열전(列傳)
역사 편찬 방식 가운데 하나로, 사람들의 전기를 차례로 기록한 것
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그 일이 천하여서 사대부
'사대부' 관련자료
'역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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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때 술을 담는 그릇
과 조(俎)
제사 때 고기를 괴어 놓는 그릇
를 넘어서 포인(庖人)
요리하는 사람
의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자가 할 일을 하지 않고 맡아야 할 임무를 맡지 않으면 결국 귀천이 서로 혼란하게 되어 쓰고 버리는 것이 어긋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대부(士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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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농부와 공장
⋅상인⋅무당⋅의원⋅약사는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농업과 양잠[農桑]은 백성의 하늘이 되며 예악(禮樂)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니, 의원과 역관
에 비교하면 그 중요함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의원과 역관
을 권하고 장려하고자 하여 동반
과 서반
에 채용한다면, 예악을 일으키고자 하면 악공을 동반
과 서반
에 뽑아야 하고,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고자 한다면 농부를 동반
과 서반
에 뽑아야 할 것이니 그것이 옳겠습니까? 성왕(聖王)이 사람을 쓰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서, 크고 작은 것과 길고 짧은 것을 각각 그 재질에 맞게 해야 합니다. 약한 나무는 마룻대와 들보가[棟樑] 될 수 없고, 큰 재목은 빗장과 문설주[扂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상에는 모름지기 재상감의 인재를 써야 하고, 판서에는 모름지기 판서감의 인재를 써야 하며, 아래로 일반 관리에 이르기까지 각기 그 재능에 마땅한 뒤에라야 그 직임에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의원과 역관
에게 의술이나 통역의 일을 익히게 하지 않고 사대부
의 벼슬을 시키고자 하시니, 농부에게 모든 일을 다스리게 하고 약한 재목을 마룻대와 들보에 쓰려 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옛사람이 비록 “어진 이를 등용하는 데에는 그 부류를 따지지 않는다.” 하고,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하였으나, 이른바 ‘어진 이’와 ‘가르침’이 어찌 의원과 역관
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까? 옛날을 살펴보면 맡은 바가 각각 달라서 서로 침범할 수 없었으며, 지금을 살펴보아도 귀천이 길이 달라서 서로 섞일 수 없으니, 뒤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 명백합니다. 전하의 흠명문사(欽明文思)1)
하심은 모든 제왕 가운데서 뛰어나시지만, 오히려 날마다 경연(經筵)
에 나아가셔서 학문에 부지런히 힘쓰시고 밤늦도록 독서를 하셔 피로함을 잊으심이, 어찌 유생(儒生)과 박사(博士)를 본받아 글귀를 아름답게 꾸미고 입으로 읽는 일을 위한 것일 뿐이겠습니까. 이는 이전 시대를 넓게 살피시고 득실을 밝게 보아, 일을 행하는 것이 성왕들과 같아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관에게 숭반(崇班)
을 청렴한 선비들 사이에 섞을 수 없다는 것을 전하의 밝은 지혜와 덕으로 어찌 아시지 못하겠습니까? 만약에 “대비께서 연세가 많으시니 의약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명나라 및 이웃 나라와 외교를 위해 역관
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시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
께서 재위에 계실 때 통역을 잘한 자로 김하(金何, ?~1462)와 이변(李邊, 1391~1473)이 있었고, 오늘날에 의약을 잘하는 자로 한계희(韓繼禧, 1423~1282)와 임원준(任元濬, 1423~1500), 권찬(權攢, 1430~1487)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천품(賤品)의 출신이 아닙니다. 만약에 거듭 강이(講肄)
'공장' 관련자료
'역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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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관련자료
'서반'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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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관련자료
'사대부' 관련자료
'역관' 관련자료
1)
요(堯)임금의 덕을 칭송한 말이다. 흠(欽)은 몸을 삼가는 것이며, 명(明)은 이치에 환한 것이고, 문(文)은 문장(文章)이 외부에 빛나는 것이며, 사(思)는 생각이 깊은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1494)
이 이러한 덕을 지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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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지위
을 줄 수 없고 의원과 역관
'역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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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습
와 습독(習讀)의 법을 분명히 하시고, 그 중에 총명한 자를 택하여서 상벌을 분명히 하여 장려하신다면, 김하와 이변, 한계희와 임원준, 권찬만 한 자가 어찌 앞으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데에는 힘쓰지 않으시고, 오로지 옛 법을 변경하여 선대(先代)의 규범을 훼손하여 조정을 낮추고 군자를 욕되게 하시고, 선왕(先王)의 제도를 버리시어 미천한 사람을 높이려고 하시니, 신 등은 그것이 옳은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속히 명(命)을 거두시어 신민(臣民)의 소망에 부응케 하소서.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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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堯)임금의 덕을 칭송한 말이다. 흠(欽)은 몸을 삼가는 것이며, 명(明)은 이치에 환한 것이고, 문(文)은 문장(文章)이 외부에 빛나는 것이며, 사(思)는 생각이 깊은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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