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고(故) 증찬성(贈贊成) 이원수(李元秀)의 부인 신씨(申氏)가 그린 것이다. 그 손가락 끝에서 나온 그림이 이처럼 원만하고 자연스러우니 마치 사람의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견주어 보건대, 오행(五行)의 뛰어남을 얻고 원기(元氣)의 융화(融和)가 모여서 진정한 조화(造化)를 이루었다. 율곡 이이(李珥)
선생을 낳았음이 마땅하다. 선생의 종증손(從曾孫)
의 막좌(幕佐)
'이이(李珥)' 관련자료
형제의 증손자
동명(東溟) 이백종(李百宗)이 조정에서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관련자료
종5품 도사(都事)
로 나가기에 앞서 이 첩(帖)을 나에게 보이며 그 위에 글을 써 달라고 하였다. 이 첩이 인가(人家)에 굴러다녀서 이씨의 소유가 되지 않은 지 여러 해인데, 이백종이 애써 찾은 끝에 올해 모월 모일에 한양의 어떤 이씨에게서 찾아 전과 같도록 수선하고 꾸며 다시 영원토록 집안 대대로의 보물로 삼았으니, 그 뜻이 간절하고도 지극하다 하겠다.
일찍이 들으니 율곡 이이
선생이 겨우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아들이 부모를 섬기는 모습과 당(唐)나라 때 장공예(張公藝)1)
의 9대(代)가 한집에 살았던 그림을 그려 놓고 단정히 앉아서 묵묵히 보았다고 한다. (신사임당
이 그린) 이 그림은 다행히 없어지지 않고 남았으니, 이 첩 밑에 붙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인의 어머니 됨과 선생의 아들 됨이 실로 뿌리와 줄기가 서로 이어진 것임을 알게 하여, 상곡군(上谷君)2)
의 집안만이 전대(前代)에 홀로 빛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백종은 소홀이 하지 말지어다. 숭정(崇禎)
즉위년, 1659) 섣달에 송시열(宋時烈)
이 삼가 쓴다.
'이이' 관련자료
1)
당(唐)나라 사람으로 9세(世)가 한 집에 살았다. 당나라 고종(高宗)이 근처를 지나다 그 집에 들러 화목하게 사는 이유를 물으니 장공예는 ‘인(忍)’ 100여 자를 써서 바쳤다. 이에 당 고종이 아름답게 여겨 비단을 내렸다고 한다.
'신사임당' 관련자료
2)
상곡군군(上谷郡君)에 추봉(追封)된 송(宋)나라 정호(程顥)의 어머니 후씨(侯氏)를 가리킨다. 후 부인(侯夫人)은 부덕(婦德)이 출중하여 가도(家道)를 일으키고, 아들 정호와 정이(程頤) 등의 도학자(道學者)
를 길러 냈다.
'도학자(道學者)' 관련자료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의 연호
기해년(현종
'현종' 관련자료
'송시열(宋時烈)' 관련자료
『송자대전
'송자대전' 관련자료
- 당(唐)나라 사람으로 9세(世)가 한 집에 살았다. 당나라 고종(高宗)이 근처를 지나다 그 집에 들러 화목하게 사는 이유를 물으니 장공예는 ‘인(忍)’ 100여 자를 써서 바쳤다. 이에 당 고종이 아름답게 여겨 비단을 내렸다고 한다.
- 상곡군군(上谷郡君)에 추봉(追封)된 송(宋)나라 정호(程顥)의 어머니 후씨(侯氏)를 가리킨다. 후 부인(侯夫人)은 부덕(婦德)이 출중하여 가도(家道)를 일으키고, 아들 정호와 정이(程頤) 등의 도학자(道學者)
'도학자(道學者)'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