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처음 내면서
오늘날 이 시대에 매일 진보해 가는 온갖 과학, 온갖 학문, 또 사회의 모든 문화부터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르러, 어느 것 하나 말과 글의 힘 없이 된 것이 없다. 말과 글이 이렇듯 우리 인생에 잠시도 없으면 안 될 가장 귀중하고 필요한 것임은 여기에서 새삼스레 떠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각기 자기 나라 말과 글이 있어, 모두 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조선 민족에게는 좋은 말, 좋은 글이 있다. 더욱이 우리 글–한글은 말과 소리가 같고, 모양이 곱고,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훌륭한 글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까지 도리어 이것을 푸대접하고 짓밟아 버렸으므로, 매우 좋았어야 할 한글이 지금에 와서는 이토록 지저분하며 모양 없이 된 것이다. 40여 년 전에 주시경
선생이 바른 길을 열어 준 뒤부터 그 뒤를 따르는 이가 적지 않았고, 또 이를 위하여 꾸준히 일하려는 이가 많이 일어난 것은 우리 한글의 앞길을 위해 크게 기뻐할 일이다.
'주시경' 관련자료
우리가 우리글을 잘 알아야 한다는 소리가 근년에 와서 더욱 높아 간다. 우리는 하루 바삐 황무지같이 거친 우리 한글을 잘 다스려,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때문에 4년 전에 뜻 같은 몇 분이 『한글』 잡지를 내기 시작하여 1년 남짓 이어 왔으나, 온갖 것이 다 침체되는 우리의 상황인지라 이것마저 이어 갈 힘이 모자라 지금까지 쉬게 된 것은 크게 유감스러운 바이다. 우리는 이제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본회의 사명을 다 하고자 『한글』 잡지를 내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 한글의 정리와 통일을 완성하게 되리라 믿는다. 무릇 조선 말을 하고 조선 글을 쓰는 이로써 이에 공감하지 아니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오직 뜻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 우리의 말과 글이 더욱 환한 빛을 내도록 하자. 이로써 『한글』을 내기에 앞서 한마디 하는 바이다.
『한글』 창간호 제1권 제1호, 1932년 5월 1일, 「한글을 처음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