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해 내 다케시마(竹島) 외 일도(一島)의 지적 편찬 방향 문의
다케시마 관할 건으로 시마네 현(島根縣)에서 별지의 문의가 와서 조사하였습니다. 이 섬의 건은 겐로쿠(元祿) 5년(1692, 조선 숙종
18) 조선인이 섬에 들어온 이래 별지 서류에 기록한 바와 같이, 겐로쿠 9년(1696) 1월에 제1호 옛 정부(막부)에서 평의(評議)하였던 취지에 따라, 제2호 역관(譯官)에게 준 달서(達書), 제3호 해당 국가(조선)에서 온 서간, 제4호 우리나라(일본)의 회답 및 구상서(口上書)
'숙종' 관련자료
말로 설명하거나 토론한 기록을 적어서 상대국에 전하는 외교 문서
등과 같습니다. 즉, 겐로쿠 12년(1699)에 이르러 각각 왕복이 끝났으며,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판도의 취함과 버림은 중대한 일이므로 별지 서류를 첨부하여 만일을 위해 이 내용을 문의합니다.메이지(明治) 10년(1877) 3월 17일
내무경(內務卿)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대리(代理) 내무소보(內務少輔) 마에지마 히소카(前島密)
우대신(右大臣)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
문의한 다케시마 외 일도의 건은 우리나라와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
메이지 10년 3월 29일
「일본해 내 다케시마 외 일도 지적편찬 방향 문의」, 명치10년(1877) 3월 17일, 태정관, 『공문록』 메이지 10년(1877) 제25권 내무성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