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 피고들에게 말하노니, 이번 재판도 거의 진행되어 최후의 진술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앞에서 두 변호인에게서 상세한, 그리고 피고들에게 유익한 변론도 들었는데 이제 피고들도 할 말이 있다면 그 진술할 기회를 주겠다.
안중근
: 아직까지 나는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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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 피고는 이제까지 중복된 것을 잘 말하는데, 중복되지 않도록 순서 있게 말해 보라.
안중근
: 이틀 전 검찰관의 논고를 대강 들어 봤으나, 그 중에는 검찰관이 오해한 부분이 아주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그 요령만을 간추려 말하고자 한다. 일례를 든다면, 하얼빈에서 검찰관이 취조할 때 내 아들에 대해서 조서를 꾸민 사실이 있었다. 이틀 전에 그 심리한 결과를 들으니, 내 사진을 내 아들에게 보이면서, “이게 네 아버지이지” 하고 물으니, “바로 내 아버지다” 하고 그 애가 대답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내가 고향을 떠난 때가 3년 전이니 바로 내 아들이 두 살 때였다. 그 후 전혀 만나본 일이 없으니 그 애가 나를 알아볼 리가 없다. 이 일례를 보더라도 그 심리가 얼마나 거칠고 엉성하며, 또한 착오가 많았는가를 입증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 재판 자체에 관해서 한 가지를 말하겠는데, 대체로 나의 이번 거사는 나 개인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님을 재삼 말하였으니 양해해 주었을 줄로 믿는다. 또 국제관계를 심리함에 있어 재판관을 비롯하여 통역,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본인으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변호사도 와 있고, 나의 동생도 와 있는데 왜 그들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가. 변호사의 변론이나 검찰관의 논고는 모두 통역을 통해서 다만 요지만을 들려주었으나, 그 점도 나의 견해로서는 매우 미심쩍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편벽된 취급이라는 인상을 면치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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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니, 모두들 이등(伊藤)
의 시정방침은 완전무결한데, 내가 그것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말들이다. 이등
의 시정방침은 결코 완비된 것이 아닐진대 어찌 오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등
의 시정방침이라는 것들을 잘 알고 있으나, 이등
이 한국에 주재하며 대한 정책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자세히 말할 시간이 없으므로 그 줄거리만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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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5개 조약이 체결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보호조약인데, 그때 한국의 황제를 비롯해서 한국의 국민은 누구나 모두 일본의 보호를 받고자 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등
은 마치 한국 측에서 희망하여 조약을 체결한 것처럼 말했었다. 그것은 이등이 일진회
를 사주하여 금전을 제공하여 그 운동을 벌이게 하고, 황제의 옥새도 없고 총리대신의 승낙도 받지 않았으며, 다만 권세로써 기만하여 5개 조약을 체결케 한 것이지, 결코 한국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등
의 대한 정책에 대하여 한국의 뜻있는 유지들은 분개한 나머지 여러 차례 황제께 상주하여 이등
의 정책의 개선을 꾀한 바가 있다. 러일 전쟁 때 일본 황제의 선전 조칙에는 동양 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므로, 한국인도 이를 매우 신뢰하여 일본과 함께 동양에 진출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이등
의 정책은 정당하지가 않았던 까닭에 전국에서 폭동이 자주 일어나 하루라도 백성들이 안도의 숨을 쉴 날이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비참한 운명은 모두가 이등
의 정책 때문이었으므로, 최익현(崔益鉉)
은 의병
을 일으켜 싸우다가 잡혔고, 그 후에도 방침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으므로 한국의 선비들은 때때로 헌책(獻策)을 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런 상태 아래서 전 황제께옵서는 2명의 밀사
를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에 파견하시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5개조의 보호 조약이 일본 측의 폭력에 의해 체결된 것으로서 왕의 옥새가 찍힌 것도 아니며 총리대신이 보증한 것도 아니므로 그 경위를 널리 알리자는 뜻으로 평화 회의에 참석시켰으나, 어떤 사정 때문인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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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등
이 다시 한국에 와서 궁중에 참내(參內)하고 있을 때, 칼로 황제를 협박하고 7개조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왕위를 폐하고 일본에 사죄하는 사신을 파견할 것이 그 7개조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국민은 상하를 막론하고 분개한 나머지 뜻을 가진 자는 배를 갈라 순국하고, 일본과 항전하기 위해서 일반 민중은 총칼을 들고 일본군에 저항하는 병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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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수십만의 의병
이 조선 8도 도처에서 봉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황제께옵서는 일본이 한국을 정복하려는, 참으로 국가의 운명이 위급한 순간에 가만히 앉아서 굼뜨고 어리석게 방관하는 자는 백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라는 조칙을 내시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한국 국민은 더욱더 분개하여 오늘날까지 항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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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늘날까지 역살(逆殺)당한 한국인은 10만 이상을 헤아릴 줄로 안다. 10여만 명의 한국인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으니, 이것은 본래의 소망이겠으나 사실은 이등
때문에 역살당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머리에 쇠사슬을 씌워 생살(生殺)하고 사회를 위협하기 위해 양민
들에게 그 광경을 보이는 등 참역무도(慘逆無道)한 짓을 공공연히 자행하여 10여만 명을 죽인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의병의 장교도 적지 않게 전사하였다. 이등
의 정책이 그러하므로 한 사람을 죽이면 열 사람이 일어나고 열 사람을 죽이면 백 사람이 더욱 연이어 일어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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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익은커녕 오히려 해독만 날로 더해 갈 뿐이니, 결국 한국에 대한 이등
의 시정방침을 개선하지 않는 한 한국의 독립은 요원하며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등
이란 놈은 스스로 영웅인 체하지만 사실은 간웅(奸雄)이다. 그놈은 간지(奸智)가 많아 한국의 보호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날로 발전하는 양 신문에 떠들고 일본 천황과 그 정부에 대하여 갖은 거짓말로 속이고 있었으니, 한국 국민은 오래 전부터 이등
을 증오하고 그 놈을 없애 버리고 말겠다는 적개심을 품어 왔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을 즐기려고 할지언정 죽기를 원할 자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 국민은 하루 24시간을 도탄에 빠져 고생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아마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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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는 이제까지 여러 계급의 일본인과 때때로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해 본 적이 많다.
……(중략)……
이와 같이 오늘 내가 말한 여러 계급의 인사들에게 다시 물어 봐도 모두 동양의 평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대개는 알 수 있을 줄 안다. 그와 동시에 간신 이등
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한국인으로서는 자기의 친척과 지기(知己)의 죽임을 당하는 마당에 어찌 증오해 마지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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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내가 이등
을 죽인 것도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한 것이지 결코 자객으로서 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친선을 저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은 바로 이등
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서 그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일본 천황의 취지와 같이, 동양 평화를 이루고 5대 주에도 모범을 보이고자 한 것이 그 목적한 바다. 내가 잘못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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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 그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안중근
: 아니 좀 더 할 말이 남아 있다. 내가 지금 말한 것처럼 이번 사건은 결코 잘못한 일이 아니므로, 오늘날 만일 일본의 천황이 한국에 대한 이등
의 시정방침이 실패했음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나를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칭찬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나를 단지 이등
을 죽인 자객으로 대우하지 않을 줄로 확신하는 바이다. 나는 아무쪼록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방침이 개선되어 일본 천황이 의도한 바 있는 동양의 평화가 한일 양국 간에 영원히 유지되기를 희망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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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한 마디 더 말해 둘 것은, 앞에서 두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광무3년(1899) 한청 통상 조약에 의해 한국인은 청나라에서 치외법권
을 가지며 또한 청나라는 한국에 대하여 치외법권
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인이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 아무런 명문(明文)이 없어 무죄라고 한 것은 매우 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은 모두 법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 살인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결코 개인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의병으로서 한 것이며, 따라서 나는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라 믿고 있으므로, 생각건대 나를 국제 공법에 의해 처벌해 줄 것을 희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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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 더 이상 할 말은 없는가?
안중근
: 모두 말했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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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 그러면 오늘은 이것으로써 본 건의 심문을 끝맺기로 한다. 본 건의 판결은 다음 14일 오전 10시에 언도하기로 한다.
한국독립운동사자료 6권, 안중근편Ⅰ, 五二. 公判始末書 第五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