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는 정치적·경제적 처지가 어려운 상태이고 밖으로는 세계적으로 새로운 사조(思潮)의 영향이 강해 조선의 무산대중(無産大衆)은 이제 그 나아갈 길로 나아갔다. 조선 민중운동은 실로 역사적 약속 아래에서 전개된 것이다. 그 전개는 급격했다. 그래서 운동이 전개된 지 겨우 6년 만에 우리 운동은 벌써 양적으로 큰 결과를 얻었다. 조선 민중운동은 이미 배회하는 괴물이 아니다. 장렬한 정의의 분투이다. 그러나 불행한 한계도 있지 않은가? ……(중략)…… 우리는 서로 굳게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근본적 임무를 저버리고 어떠한 목표의 차이, 정책의 차이도 없이 서로 유해무익한, 아니 증오해야 할 만한 상잔(相殘)의 추악한 모습을 보였다. 편협한 분열적 음모만이 능사가 되고, 계급적 운동 전체의 이익을 위한 지도 정신을 수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운동은 그 구렁으로부터 용감히 뛰어나오기 전에는 새로운 진전이 어렵게 되었고 어부의 이익은 늘어나게 되었다.
과거는 교훈이다. 우리는 과거를 그대로 연장해서는 안 됨을 벌써 충분히 배웠다. 현재의 모든 형세가 그것을 증명한다. 조선 전체로 확대된 파벌 분쟁, 경제적 투쟁에만 국한되어 있는 기존의 운동 형태 등은 우리 운동의 현재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필요한 운동의 집중·의식화·대중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유력한 모든 단체는 거의 모두 집회 금지 상태에 있으니 구체적 운동은 전 계급적으로는 고사하고 개별 단체적으로도 무력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 정치 운동의 경향이 은연 중에 또 공공연하게 점점 대두되어 우리 장래 운동에 대해 일대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 운동은 현재 부진한 상태에 빠져 있고 위태로운 때를 당했다. 그러므로 확고한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실로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이 같은 때를 맞아 정우회(正友會) 집행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운동방침을 세웠다. 우리는 이것이 다만 정우회의 운동 뿐 아니라 널리 모든 조선의 운동에서도 중대한 의의를 가짐을 확신한다.
1. 우리 운동을 우선 과거의 분열로부터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그리하여 과거의 무의미한 분열 정신은 그 마지막 잔재까지 완전히 매장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상단체의 통일부터 주장한다. 병립해 있는 다른 사상단체들이 성의로써만 대응해 준다면 정우회는 어떠한 양보를 해서라도 통합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2. 운동의 장래는 무엇보다 대중의 단결 여하, 의식 여하에 달린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태에 비추어 대중의 조직 및 교육에 한층 더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조직 운동이나 교육 운동에 있어서 노력이 관념적으로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임을 간파했기 때문에 실제 투쟁과 밀접하게 연결해야 한다. 실제 투쟁으로 만들어진 조직만이 진짜 조직이다. 대중 스스로의 실천과 연결된 교육만이 진짜 교육이다. 결국 조직과 교육은 활발한 일상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그 완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3. 민족주의적 세력의 등장하면서 진행된 정치적 운동의 흐름에 대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필연적 과정인 이상 우리는 무심히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그것보다 우리 운동 자체가 경제적 투쟁에 국한되어 있던 과거의 한계에서 벗어나 한층 계급적이고 대중적이며 의식적인 정치적 형태로 비약해야 할 전환기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아병적 증세에서 벗어나 실질적 승리로 나아가기 위하여 현재 가능한 모든 조건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해서는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질을 명백하게 인식하는 한편, 우리와 과정적 동맹자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것이 타락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의 개량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이전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분연히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로부터 얻을 최대 수확은 개량적 강령의 실현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얻을 대중의 조직과 훈련, 그리고 교육에 있다. 대중 스스로의 투쟁을 부정하고 외교적인 양해만으로 끝내려는 정치 세력과는 처음부터 싸워야 한다.
4. 이러한 각 방면의 상황과 거의 절정에 이른 권력의 위압은 운동을 더더욱 대중화하며 현실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따르지 않을 수 없지만, 이로 인하여 우리의 근본 목표에 동요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타협에만 그치는 타협, 개량에만 그치는 개량은 분명히 타락과 굴복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운동의 현재를 대표하는 동시에 미래를 대표해야 한다. 타협과 투쟁을 분리해서는 안 되며 개량과 XX을 대립시켜서도 안 된다. ……(중략)…… 한편에서는 대중이 실천한 결과를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눈앞의 개량에 만족하려는 모든 환상에 대해 무자비한 비판을 가해야 한다. 그리하여 현실과 우리의 주장을 연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중대한 임무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이 운동방침을 새로운 시대를 열도록 전환하여 현재를 극복하려 하며, 이 방침의 옳고 그름은 투쟁의 실천으로 증명하려 한다.
『조선일보』, 1926년 11월 17일, 「정우회의 신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