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 신체제와 조선 문화의 진로
내선일체는 단순한 정책적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 조선 민중에게는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 나 자신의 사활 문제요, 내 자손의 사활 문제이다. 이러한 중대 문제에 마주치는 것은 인생으로서 극히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나는 아침에 잠을 깬다. 오전 6시의 사이렌이 운다. 이 사이렌은 전 일본 국민이 다 기상하라는 사이렌이다. 종래에는 이러한 일이 없었다. 몇 시에 자거나 몇 시에 깨거나 자유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조국은 전국민이 오전 6시면 일제히 일어나기를 명령한다. 이렇게 아니하고는 중대 시국을 돌파하고 국가가 현재 목적하는 대업을 완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략)…… 그때 또 사이렌이 울었다. ‘무엇일까?’ 아직 이러한 국민 생활에 익숙지 못한 자는 이 사이렌이 오전 7시 궁성 요배(宮城遙拜)
정해진 시간에 일본 천황의 궁궐을 향해 절하는 의식
사이렌인 것을 얼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이렌을 들으면 모든 가족이 사용인(使用人)까지 모두 정결한 곳에 정렬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궁성을 요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있는 곳’에서 하라고 했다. 방에 있던 자는 방에서, 부엌에서 일하던 자는 부엌에서, 길을 가던 자는 길에서. 어디서나 그 자리에서 하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사정만 허락한다면 모든 가족이 일제히 하는 것이 더욱 정성스럽고 또 인상적일 것이다. 나는 마침 곁에 있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와 둘이서 요배를 했다. 그러고 난 뒤 안방에 갔더니 학교에 가기 위해 미리 밥을 먹던 5학년인 아들, 1학년인 딸, 두 아이가 “(일본어로) 아버지, 지금 사이렌이 궁성 요배 사이렌이에요”라고 내게 일깨워 주었다. 그들은 밥 먹다 말고 궁성 요배를 한 모양이다.나는 어제 조선 대박람회장에서 정오의 ‘사이렌’을 들었으나 시계를 맞출 것은 기억하고도 묵도할 것은 잊어버렸다. 이 모양으로 나는 아직 국민 생활이 서투르다. 이것이 자리 잡히려면 아마 수년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체 내선일체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재래의 조선적인 것을 버리고 일본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이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2,300만이 모두 호적을 들추어 보기 전에는 내지인인지 조선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최후의 이상이다. 그러므로 내선일체가 되고 안 되는 것은 오직 나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될 것은 아니지만 우선 일본 국민이 되기에 필요한 것은 빨리 습득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빨리 되면 빨리 조선인에게 행복이 오고 더디게 되면 더디게 행복이 오며, 만일 조선인이 이 공부에 게으르면 마침내 올 것이 안 오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 시급한 것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무엇보다도 황실에 대한 충성의 정조(情操)를 함양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황실에 대한 감정은 실로 독특한 것이어서 조선인으로서 그 정도에 달하자면 깊고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충군애국이라고 하던 그러한 충(忠)이 아니다. 일본인의 충의 감정은 한자의 충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 도리어 유대인의 여호와에 대한 충과 비슷할 것이다. 일본인은 내가 향유한 모든 행복을 천황께서 받잡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 토지도 천황의 것이요, 내 가옥도 천황의 것이요, 내 자녀도 천황의 것이요, 내 몸과 생명도 천황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황께로부터 받자온 몸이니 천황이 부르시면 언제나 끓는 물이나 불에라도 뛰어든다는 것이요, 자녀도 재산도 천황께 받자온 것이니 천황께서 부르시면 고맙게 바친다는 것이다. 천황은 살아계신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이나 유럽의 군주 대 신민 관계와 판이한 점이다. ……(하략)……
『매일신보』, 1940년 9월 4일, 「문화계의 신체제 - 심적 신체제와 조선 문화의 진로」
내선일체에 대한 소신
……(전략)……
내선일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조선 측에서 여러 가지 비평이 있었으나, 나는 그에 관해 네 가지만 이야기하여 내 소신을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 내선일체라는 것은 이미 병합 당시에 구체화된 것으로 이번에 다시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오류이다. 마치 이번 생애에 태어난 아이가 어른과 똑같아 보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선인도 병합 당시는 단순히 일본 국민으로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20년 남짓 교육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조선인도 병합 이래 29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일본 국민으로서, 일본인과 똑같이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요컨대 병합 이래 29년 간의 총독 정치는 우리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일원화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때문에 총독 정치의 각 단계는 서로 달랐고 정치 그 자체에도 다양한 뉘앙스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사이토 총독의 통치 목표는 내선 융화(內鮮融化)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우가키 총독의 시대에 변화되어 자력갱생(自力更生)의 표어가 되었다. 다시 오늘날 미나미 총독의 시대가 되어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표어가 통치 목표가 되었으나, 이것들은 각 시대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표어의 변경 그 자체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 본질적인 이치는 조선의 민도(民度)를 일본인과 같이 끌어올려 이로써 내선일체를 완성하는 데 있다. 그 때문에 내선일체가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모순도 없으며, 그것은 차라리 당연하다고 말하겠다.
두 번째로, 내선일체는 좋은 것이더라도 제국의 입장에서 특별히 이를 완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나는 작년 9월 5일 미나미 총독을 만났는데, 미나미 씨는 나에게 조선 청년 지도에 관한 3가지 조항을 써줬다. 그 중 제2항에 “동양인의 동양 건설의 핵심은 내선일체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중략)……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는 현재 일본인보다 열등한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중략)…… 이러한 의문을 완전히 일소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지리적으로 보면 우리 조선은 제국의 대륙 정책상 실로 경시할 수 없는 요충지가 되어 있다. ……(중략)…… 새로운 동아시아 건설의 가능 여부는 실로 내선일체의 완성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에서 봤을 때 일본과 조선의 일원화, 즉 우리 조선인이 일본인과 똑같이 동양 건설을 위해 동등한 국민적 의무와 자격을 갖고 매진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지는, 제국의 대륙 정책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명백한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 봐도 일본의 경제학자가 강조하는 것과 같이, 조선에서 생산되는 미곡은 제국의 국가정책을 수행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중략)…… 나는 조선 민족의 우수한 소질을 항상 확신하고 있다. 근대적인 교육⋅문화⋅자격을 제공해 주면 내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동양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지도하기 위해서도 공헌할 수 있는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근래의 일을 봐도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군이 우리와 똑같은 반도인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며, ……(중략)…… 역시 조선인이 민족적으로 결단코 다른 민족보다 열등하지 않은 체력과 의지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가장 강력한 실례이다. ……(중략)……
세 번째는 조선인 측에서 나온 비평인데, 조선인이 내선일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주장이다. 이는 주로 민족주의적인 편견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에서 봐도 내선일체 이외에 조선인이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내선일체를 거부하면 조선인이 나아갈 방향은 명백히 공산주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이 공산주의를 통해 조선인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결정적으로 이를 배제하고 또 박멸하는 것이 우리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이는 상황에서 내선일체는 우리 조선인을 위해서도 실로 사활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마지막으로, 내선일체에 반대하는 논의로 소위 내주선종(內主鮮從)
일본을 주로 하고 조선은 종으로 한다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을 식민지로 보는 시각이다. 주지하다시피 일시동인(一視同仁)
일본인과 조선인을 동등하게 간주한다
은 황송하게도 천황 폐하의 성지(聖旨)이며, 우리도 동일하게 천황 폐하의 적자(赤子)라는 자격과 의무가 이 성지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을 식민지로 보는 것은 일시동인이라는 성지를 무시하는 형법상 불경죄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중략)…… 국가의 경찰이 간섭할 문제이지, 내가 간여해야 할 일이 아니다. ……(하략)……윤치호, 「내선일체에 대한 소신」, 『동양지광』 1939년 4월호, 동양지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