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작가에게 드리는 말
황산덕
참다 못하여 붓을 들어 일면식도 없는 귀하에게 몇 마디를 올리겠습니다.
저는 귀하와의 동일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소위 문화인은 아니기 때문에 귀하가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라든가 또는 귀하의 작품의 문학적 가치라든가에 관하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문제가 되어 있는 귀하의 작품 『자유부인』까지도 저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처럼 저는 귀하를 인간적으로나 또는 작품을 통하여서나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요사이 대학에 나아가면 이곳저곳에서 귀하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저주(咀呪)하는 말소리가 매일같이 들려옵니다. 그래 저도 그 욕설을 방청하는 동안에 자연히 귀하가 쓰신 작품의 스토오리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귀하는 지금 대학 관계자들 중에서 어떤 의미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대학교수를 상대로 귀하는 도하(都下) 일류신문의 연재소설에서 갖은 재롱을 다 부려가면서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교수를 양공주(洋公主) 앞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중략)……
귀하가 가슴에 손을 대고 양심껏 반성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마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는 다행히도 그렇게 부패하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대학교수의 부인들은 봉건적 가정주부의 모습을 가장 많이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뜻있는 인사는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 앞으로 새싹이 트게 된다면 그것은 이러한 대학교수와 그 밑에서 배우는 대학생의 손에 달릴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학교수가 아직 부패하지 않은 데 대하여 우리 민족은 크게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배짱도 좋고 예술도 좋으나 귀하 개인의 자제의 장래의 교육만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리고 귀하의 대작 『홍길동전』을 읽는 수십만 중학생의 장차의 진학을 위해서라도 대학교수를 사회적으로 모욕하는 무의미한 소설만은 쓰지 말아 주시길 앙망(仰望)하나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법대교수)
『대학신문』, 1954년 3월 1일, 「자유부인 작가에서 드리는 말」
탈선적(脫線的) 시비를 박(駁)함
『자유부인』 비난문을 읽고 황산덕(黃山德) 교수에게 드리는 말
정비석
방금 본지에 연재 중인 졸작 『자유부인』에 대하여 귀하가 본인에게 주신 공개 비난문(『대학신문』 3월 1일부 제69호 게재)은 잘 읽었습니다. 본인은 직업이 소설가인 만큼 25년간 작품을 발표해오는 동안에 그 작품 속에 취급된 부류의 인사들한테서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아온 일이 지금까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탄의 거의 전부가 문학을 전연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사적 흥분에 불과하기에 본인은 그런 터무니없는 지탄을 일체 묵살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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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비난도 터무니없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무명인사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본인의 평소의 신념으로서는 귀하께 대해서는 당연히 침묵을 지켜야 옳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대학교수이신 귀하에게 대한 예우를 생각해서 이번만은 몇 마디의 답변을 드리기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구태여 문학론을 전개할 것 없이 남의 작품을 비난하는 데 있어서의 귀하의 불성실한 태도만을 몇 가지 거론하겠습니다.
첫째, 귀하는 『자유부인』을 “아직 읽어본 일도 없으면서” 뜬소문에 의하여 “「스토리」만 안다”는 정도의 비난을 퍼부으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참말 기막힌 말씀입니다. 적어도 남의 작품을 비난(비평이 아님)하자면 그 작품을 한번쯤은 충실히 읽어보고 붓을 드는 것이 작가에게 대한 예의일 뿐만 아니라 귀하의 의무이기도 할 터인데 귀하는 읽어보지도 않고 노발대발하면서 『자유부인』을 중단하라는 호령을 내리셨으니 이 무슨 탈선적 발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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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귀하는 “대학교수를 양공주에게 굴복”시켰다고 개탄하셨는데, 본인이 지금 쓰고 있는 『자유부인』에 양공주가 등장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무슨 허무맹랑한 허위날조이십니까. 추측컨대 미군부대에 영문 “타이피스트”로 다니는 “박은미”이라는 여성을 가리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귀하는 설마 미군부대에 다니는 직업여성을 모조리 양공주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중략)……
좀더 침착히 좀더 냉정히 좀더 성실한 학자적 태도로 작품을 음미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대고 양심껏 반성해보라”는 귀하의 말씀은 고스란히 그대로 귀하에게 반환하고 이제부터나마 『자유부인』을 애독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서울신문』, 1954년 3월 11일, 「탈선적 시비를 박함 - 자유부인 비난문을 읽고 황산덕 교수에게 드리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