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
김지하
시를 쓰되 좁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럈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중략)
첫째도둑 나온다 제별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중략)
귀띔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잡고
천원공사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중략)
또 한놈이 나온다
국회의원나온다
(중략)
털투성이 몸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은 신악으로! 개조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이닷, 빈농은 이농으로!
(중략)
세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 분명쿠나
(중략)
네째놈이 나온다 장성놈이 나온다
(중략)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중략)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중략)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 아사한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배알하잣!
(중략)
김지하, 「오적」, 『사상계』 제18권 제5호(1970. 5)
-아침이슬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 작사, 「아침이슬」, 『김민기 1집』, 서울음반,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