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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고구려의 주몽 신화 읽기
  • 2) 고구려 주몽 신화의 전승 자료와 내용
  • 라. 이규보의 『동명왕편』 중 「구삼국사」 인용 부분

〔사료 2-2-04〕 『동명왕편』 소재 「구삼국사」 인용 부분

(가) ○ 「본기」의 기록은 이렇다. 부여 왕 해부루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사 지내 왕위를 이을 아들을 구하려는데, 타고 가던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왕이 이상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니 (거기에) 한 자그마한 아이가 있는데 금빛이 나고 개구리 생김새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내게 귀한 아들을 주심이라!” 하고는 거두어 길렀다. 이름을 ‘금와’라 하고 (지위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그 재상 아란불이 말했다. “일전에 하느님이 제게 강림하시어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하겠으니 너는 피하라. 동해 바닷가에 땅이 있는데 ‘가섭원’이라고 한다. 땅이 오곡이 자라기에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였다.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여 도읍을 옮기게 하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부여의 옛 도읍에는 해모수가 와서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며 도읍하였다.

本紀云. 夫余王解夫婁老無子, 祭山川求嗣, 所御馬至鯤淵, 見大石流淚.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金色蛙形. 王曰, 此天錫我令㣧乎, 乃收養之. 名曰金蛙, 立爲太子. 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 將使吾子孫, 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迦葉原. 土宜五穀, 可都也. 阿蘭弗勸王移都, 號東夫余. 於舊都, 解慕漱爲天帝子來都.

(나) ○ 한나라 신작 3년 임술년에 천제(天帝)가 태자를 부여의 옛 도읍에 내려 보내 돌아다니게 하였다. 그의 이름은 ‘해모수’였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오룡거를 탔고 시종 백여 사람은 모두 흰 고니를 탔다. 채색 구름이 하늘 위에 떠 있고 음악은 구름 속에서 울려 퍼졌다. 웅심산에 머물다가 십여 일이 지나 비로소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오우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을 차고 있었다.

漢神雀三年壬戌歲, 天帝遣太子降遊扶余王古都. 號解慕漱. 從天而下, 乘五龍車, 從者百餘人, 皆騎白鵠. 彩雲浮於上, 音樂動雲中. 止熊心山, 經十餘日始下, 首戴烏羽之冠, 腰帶龍光之劍.

○ 아침이면 정사를 돌보고, 저녁에는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그를 ‘천왕랑’이라고 하였다.

朝則聽事, 暮卽升天, 世謂之天王郞.

○ 그 여인들이 왕을 보고 곧 물에 뛰어들었다. 신하들이 “대왕께서는 왜 궁전을 지어 여자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막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왕이 그럴 듯하다고 여기고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구리 집이 문득 크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방 안에 자리 셋을 마련하고 술도 한 동이나 내 놓았다. 여인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서로 권하며 술을 마시다가 크게 취했다.

其女見王卽入水. 左右曰, 大王何不作宮殿, 俟女入室, 當戶遮之. 王以爲然, 以馬鞭畫地, 銅室俄成壯麗. 於室中, 設三席置樽酒. 其女各坐其席, 相勸飮酒大醉云云.

○ 왕이 세 여인이 크게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나타나 막으니 여인들이 놀라 달아나다가 맏딸 유화가 왕에게 붙들렸다.

王俟三女大醉急出遮, 女等驚走, 長女柳花, 爲王所止.

○ 하백이 크게 분노하여 사자를 보내 말했다. “너는 웬 놈인데 내 딸을 억류하고 있느냐?” 왕이 대답하기를 “저는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이제 하백 집안과 혼인하고자 합니다.” 하백이 또 사자를 시켜 물었다. “네가 만약 하느님의 아들이고 내게 구혼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중매인을 시켰어야 했다. 갑자기 내 딸을 붙들어 두니 이런 실례가 어디 있는가? 왕이 부끄러워하며 이제 하백에게 가 만나려 하였으나 궁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그 용이 끄는 수레가 딸을 놓아주려 하였으나 여자가 왕과의 애정을 확인하였으므로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이런 말을 하였다. “용이 끄는 왕의 수레가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다다를 수 있지.” 왕이 하늘을 가리키며 부르니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오룡거가 내려왔다. 왕이 여인과 함께 이 수레에 오르니 바람과 구름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그 궁실에 이르렀다.

河伯大怒, 遣使告曰. 汝是何人, 留我女乎. 王報云, 我是天帝之子. 今欲與河伯結婚. 河伯又使告曰, 汝若天帝之子, 於我有求昏者, 當使媒云云. 今輒留我女, 何其失禮. 王慙之, 將往見河伯, 不能入室. 欲放其女, 女旣與王定情, 不肯離去. 乃勸王曰. 如有龍車, 可到河伯之國. 王指天而告, 俄而五龍車從空而下. 王與女乘車, 風雲忽起, 至其宮.

○ 하백이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자리에 앉자 묻기를 “혼인의 법도는 천하의 공통된 규범인데 어찌 실례를 저질러 우리 가문을 욕보이는가.” 하였다.

河伯備禮迎之, 坐定謂曰, 婚姻之道, 天下之通規, 何爲失禮, 辱我門宗云云.

○ 하백이 말했다. “왕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이함이 있는가?” 왕이 대답하기를 “그저 시험해 보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했다. 이에 하백이 뜰 앞 물에서 잉어가 되어 물결을 따라 헤엄치니 왕이 수달이 되어 붙잡았다. 하백이 또 사슴이 되어 달아나니 왕은 승냥이가 되어 쫓았다. 하백이 꿩이 되자 왕은 사냥매가 되어 공격했다. 하백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 예를 갖추어 성혼하였으나 왕이 딸과 함께할 마음이 없을까 걱정하여 음악을 베풀고 술을 차려 내 왕으로 하여금 크게 취하게 하였다. (그러고는) 딸과 함께 작은 가죽 수레에 집어넣고 용거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내려 하였는데, 그 수레가 아직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 왕이 곧 술이 깨어 여자의 황금 비녀로 가죽 수레를 뚫고 구멍으로 혼자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河伯曰. 王是天帝之子, 有何神異. 王曰, 唯在所試. 於是河伯於庭前水, 化爲鯉, 隨浪而遊, 王化爲獺而捕之. 河伯又化爲鹿而走, 王化爲豺逐之. 河伯化爲雉, 王化爲鷹擊之. 河伯以爲誠是天帝之子, 以禮成婚, 恐王無將女之心, 張樂置酒, 勸王大醉. 與女入於小革輿中, 載以龍車, 欲令升天, 其車未出水, 王卽酒醒, 取女黃金刺革輿, 從孔獨出升天.

○ 하백이 크게 노하여 딸에게 “네가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끝내 우리 집안을 욕보였다.” 하고는 옆에 있는 신하들을 시켜 딸의 입을 묶어 당기게 하니 그 입술이 세 자나 되게 길어졌다. 다만 종 둘만 주어 우발수 속으로 내쳤다. ‘우발’은 소택지의 이름인데 오늘날의 태백산 남쪽에 있다.

河伯大怒, 其女曰, 汝不從我訓, 終辱我門. 令左右絞挽女口, 其唇吻長三尺. 唯與奴婢二人, 貶於優渤水中. 優渤澤名, 今在太伯山南.

(다) ○ 어부 강력부추가 아뢰었다. “요즘 어량에 잡힌 물고기를 도둑질해 가는 것이 있는데 어떤 짐승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에 왕이 어부를 시켜 그물로 끌어내게 하니 그물이 찢어졌다.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끌어내 비로소 한 여자를 얻었는데 돌에 앉아 있다가 나왔다. 그 여자의 입술이 길어 말을 할 수 없었으니 세 번 자르게 한 다음에야 말하게 되었다.

漁師强力扶鄒告曰, 近有盜梁中魚而將去者, 未知何獸也. 王乃使魚師以網引之, 其網破裂. 更造鐵網引之, 始得一女, 坐石而出. 其女唇長不能言, 令三截其唇乃言.

○ 왕이 천제 아들의 왕비임을 알고 별궁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 안으로 해가 비쳐 이로 인하여 임신하였다. 신작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을 낳았는데 울음소리가 매우 크고 뼈대와 생김새가 뛰어났다. 처음에 왼쪽 겨드랑이로 알 한 개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쯤 되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이 새알을 낳다니,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겠다.” 하고는 사람을 시켜 목마장에 버리게 하였는데 말 떼가 밟지 않았다. 깊은 산에 버렸더니 온갖 짐승들이 모두 보호하였다. 구름 끼고 어두운 날에도 알 위에는 늘 햇빛이 비쳤다. 왕이 알을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 기르게 하니 알이 마침내 갈라지며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도 말이 정확하였다.

王知天帝子妃, 以別宮置之, 其女懷中日曜, 因以有娠. 神雀四年癸亥歲夏四月, 生朱蒙, 啼聲甚偉, 骨表英奇. 初生左腋生一卵, 大如五升許. 王怪之曰, 人生鳥卵, 可爲不祥, 使人置之馬牧, 羣馬不踐. 棄於深山, 百獸皆護. 雲陰之日, 卵上恒有日光. 王取卵送母養之, 卵終乃開得一男. 生未經月, 言語並實.

○ 어미에게 말했다. “파리 떼가 눈을 물어 잘 수가 없습니다. 제게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세요.” 어미가 댓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에 있는 파리를 쏘았는데 쏘았다 하면 명중이었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고 한다.

謂母曰, 羣蠅噆目, 不能睡. 母爲我作弓矢, 其母以蓽作弓矢與之, 自射紡車上蠅, 發矢卽中. 扶余謂善射曰朱蒙.

(라) ○ 나이 들고 자라자 재능이 다 갖추어졌다.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평소에 주몽과 함께 사냥을 나가 보면, 왕자와 시종이 사십여 명에 이르러도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주몽은 쏘아 맞춘 사슴이 매우 많았다. 왕자들이 질투하여 주몽을 붙들어다 나무에 결박해 놓고 사슴은 빼앗아 가자 주몽은 나무를 뽑아 버리고 돌아왔다. 태자 대소가 왕에게 말했다. “주몽은 신통하고 용맹한 놈이며 외양이 남다릅니다.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年至長大, 才能並備. 金蛙有子七人, 常共朱蒙遊獵. 王子及從者四十餘人, 唯獲一鹿, 朱蒙射鹿至多. 王子妬之, 乃執朱蒙縛樹, 奪鹿而去, 朱蒙拔樹而去. 太子帶素言於王曰, 朱蒙者, 神勇之士, 瞻視非常. 若不早圖, 必有後患.

○ 왕이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해 보려고 하였다. 주몽이 속으로 회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는 하느님의 손자인데 남을 위해 말을 기르고 있으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남쪽 땅으로 가 나라를 세우려 하나 어머니 계시니 감히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그 어미가 무어라무어라 했다고 한다.

王使朱蒙牧馬, 欲試其意. 朱蒙內自懷恨, 謂母曰, 我是天帝之孫, 爲人牧馬, 生不如死. 欲往南土造國家, 母在不敢自專. 其母云云.

○ 그 어미가 “이는 내가 밤낮으로 속을 썩이던 일이다. 내가 듣건대 사내가 먼 길을 가려거든 반드시 준마에 의지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말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하고는 드디어 목마장으로 가 긴 채찍으로 마구 때리니 말 떼가 모두 놀라 달려 나갔다. 한 붉은 말이 두 길이나 되는 울타리를 뛰어 넘자 주몽이 말의 우수함을 알아보고 몰래 말의 혀뿌리에 침을 찔러 두니 그 말이 혀가 아파 물도 꼴도 못 먹어 몹시 말랐다. 왕이 목마장에 순시 나왔다가 말 떼가 다 살진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말라빠진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이 말을 얻고 나서 바늘은 뽑아 버리고 더욱 잘 먹였다.

其母曰, 此吾之所以日夜腐心也. 吾聞士之涉長途者, 須憑駿足. 吾能擇馬矣. 遂往馬牧, 卽以長鞭亂捶, 羣馬皆驚走. 一騂馬跳過二丈之欄, 朱蒙知馬駿逸, 潛以針捶馬舌根, 其馬舌痛, 不食水草, 甚瘦悴. 王巡行馬牧, 見羣馬悉肥大喜, 仍以瘦錫足. 吾朱蒙得之, 拔其針加餧云.

(마) ○ 건너려 했으나 배가 없었다. 추격대가 갑자기 닥칠까 걱정하며 이에 채찍을 잡고 하늘을 가리켜 비분강개하며 탄식했다. “나는 하느님의 손자이고 하백의 외손자외다. 지금 어려움을 피해 여기까지 왔소. 하늘이여, 땅이여, 의지할 데 없는 자를 불쌍히 여겨 얼른 배다리를 마련해 주시오.” 말을 마치며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주몽은 바로 건널 수 있었고 한참 뒤에 추격대가 다다랐다.

欲渡無舟 恐追兵奄及, 迺以策指天, 慨然嘆曰. 我天帝之孫, 河伯之甥. 今避難至此. 皇天后土, 憐我孤子, 速致舟橋. 言訖, 以弓打水, 魚鼈浮出成橋. 朱蒙乃得渡, 良久追兵至.

○ 추격대가 강에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 다리가 곧 없어져 이미 다리 위로 올라갔던 자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追兵至河, 魚鼈橋卽滅, 已上橋者, 皆沒死.

(바) ○ 주몽이 이별할 때에 차마 떠나지 못하니 그 어미가 말하기를 “너는 이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마라.” 하고 오곡의 종자를 싸 주며 보냈다. 주몽이 생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잃어버렸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 왔다. 주몽이 말하기를 “틀림없이 신모께서 사자를 시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게야.” 하고 바로 활을 당겨 쏘니 화살 한 대로 한 쌍을 다 잡았다. 목구멍을 열어 보리 종자를 얻고는 물을 뿜어 주니 다시 소생하여 날아가 버렸다.

朱蒙臨別, 不忍睽違, 其母曰, 汝勿以一母爲念, 乃裏五穀種以送之. 朱蒙自切生別之心, 忘其麥子. 朱蒙息大樹之下, 有雙鳩來集. 朱蒙曰, 應是神母使送麥子, 乃引弓射之, 一矢俱擧. 開喉得麥子, 以水噴鳩, 更蘇而飛去云云.

(사) ○ 비류 왕 송양이 사냥을 나갔다가 왕의 용모가 남다름을 보고 데려와 함께 자리에 앉아 말했다. “궁벽하게도 바다 귀퉁이에서 지내다 보니 아직까지 군자를 만나 보지 못했소. 이제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오.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어디에서 왔소?” 왕이 말했다. “나는 하느님의 손자이며 서쪽 나라의 왕이오. 감히 묻건대 임금은 누구의 후예인가?” 송양이 말했다. “나는 선인의 후예요. 대대로 왕 노릇을 해 왔소. 지금 땅이 몹시 좁아 나누어 두 임금이 될 수가 없소. 그대가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용국이 되는 것이 좋으리라.” 왕이 말했다. “나는 하느님의 뒤를 이었지만 지금 왕은 신의 자손도 아니면서 억지로 왕을 일컫고 있으니 만약 내게 귀순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오.” 송양은 왕이 자주 하느님의 후손임을 일컫는 데 대하여 의심하여 그 재주를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이에 말하기를 “왕과 더불어 활을 쏘아 보기를 바란다.” 하고 그린 사슴을 백 보 안에 놓고 쏘는데 그 화살이 사슴의 배꼽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손이 밑으로 처지는 듯했다(힘이 빠지는 듯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를 가져다 백보 밖에 매달아 두고 쏘았는데 기왓장 부서지듯 산산이 깨졌다. 송양이 크게 놀랐다.

沸流王松讓出獵, 見王容貌非常, 引而與坐曰. 僻在海隅, 未曾得見君子. 今日邂逅, 何其幸乎. 君是何人, 從何而至. 王曰, 寡人天帝之孫, 西國之王也. 敢問君王繼誰之後, 讓曰, 予是仙人之後. 累世爲王. 今地方至小, 不可分爲兩王. 君造國日淺, 爲我附庸可乎. 王曰. 寡人繼天之後, 今主非神之冑, 强號爲王, 若不歸我, 天必殛之. 松讓以王累稱天孫, 內自懷疑, 欲試其才. 乃曰願與王射矣, 以畵鹿置百步內射之, 其矢不入鹿臍, 猶如倒手. 王使人以玉指環, 於百步之外射之, 破如瓦解. 松讓大驚云云.

○ 왕이 말하였다. “나라의 기업이 새로 만들어져 아직 북과 나발의 위엄이 없다. 비류국의 사자가 오가는데 내가 왕의 예로써 맞이하고 보내지 못하니, 때문에 나를 업신여기겠지.” 시종하는 신하 부분노가 나아가 말했다. “제가 대왕을 위하여 비류국의 북과 나발을 가져오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다른 나라가 비장하고 있는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겠느냐.” 부분노가 대답하기를 “이는 하늘이 준 물건입니다. 어찌 가져오지 못하겠습니까? 대왕께서 부여에서 곤욕을 당하고 계실 때에는 누가 대왕이 여기까지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습니까. 지금 대왕께서는 만 번 죽을 고비가 있는 위급한 지경을 떨치고 나와 요동에서 이름을 날리고 계십니다. 이는 하느님이 시켜 그리 되는 것인데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이에 부분노 등 세 사람이 비류국으로 가서 북을 가져왔다. 비류국 왕이 사신을 보내 이러쿵저러쿵하는데 왕이 (비류국 쪽에서) 북과 나발을 와서 볼까 두려워하여 북과 나발의 색을 어둡게 해 옛 물건인 것처럼 해 놓으니 송양이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王曰. 以國業新造, 未有鼓角威儀. 沸流使者往來, 我不能以王禮迎送, 所以輕我也. 從臣扶芬奴進曰. 臣爲大王取沸流鼓角. 王曰. 他國藏物, 汝何取乎. 對曰. 此天之與物, 何爲不取乎. 夫大王困於扶余, 誰謂大王能至於此. 今大王奮身於萬死之危, 揚名於遼左. 此天帝命而爲之, 何事不成. 於是扶芬奴等三人, 往沸流取鼓而來. 沸流王遣使告曰云云, 王恐來觀鼓角, 色暗如故, 松讓不敢爭而去.

○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져 부용을 정하려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웠다. 덕분에 천 년은 된 것 같았다. 송양이 와서 보고 끝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다투지 못하였다.

松讓欲以立都先後爲附庸, 王造宮室, 以朽木爲柱. 故如千歲. 松讓來見, 竟不敢爭立都先後.

○ 서쪽으로 순수 나갔다가 흰 사슴을 잡았다. 해원에서 거꾸로 매달아 놓고 저주하였다. “하늘이 만약 비를 내려 비류국의 왕도를 물바다로 만들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라. 이 고난을 벗어나고 싶다면 너는 이제 하늘에 호소하라.” 그 사슴이 슬피 우니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장맛비 온 지 이레 만에 송양의 왕도가 물바다가 되었다. 왕은 갈대 밧줄로 물길을 횡단하고 오리와 말을 타고 다녔으며 백성들도 모두 그 밧줄을 잡고 있었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곧 줄어들었다.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받들어 와서 항복하였다.

西狩獲白鹿. 倒懸於蟹原, 呪曰, 天若不雨而漂沒沸流王都者, 我固不汝放矣. 欲免斯難, 汝能訴天. 其鹿哀鳴, 聲徹于天. 霖雨七日, 漂沒松讓都. 王以葦索橫流, 乘鴨馬, 百姓皆執其索. 朱蒙以鞭畫水, 水卽減. 六月, 松讓擧國來降云云.

(아) ○ 7월 검은 구름이 골령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그 산을 볼 수 없었다. 수천 사람의 소리가 나 무슨 토목 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해 성을 쌓는다.”라고 하였다. 이레 만에 구름과 안개가 흩어지고 나니 성곽과 궁실과 누대가 저절로 완성되어 있었다. 왕이 하늘에 절하고 가서 (거기에서) 지냈다.

七月, 玄雲起鶻嶺, 人不見其山. 唯聞數千人聲以起土功. 王曰, 天爲我築城. 七日, 雲霧自散, 城郭宮臺自然成. 王拜皇天就居.

(자) ○ 가을 9월 왕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았다. 이때 나이는 마흔. 태자가 왕이 남긴 옥 채찍을 용산에 장사 지냈다.

秋九月, 王升天不下. 時年四十. 太子以所遺玉鞭, 葬於龍山云云.

(차) ○ 유리가 어렸을 때 일이라고 한다. 어려서 일삼아 참새를 쏘았는데 한 아낙이 물동이 이고 있는 것을 쏘아 동이를 깨뜨렸다. 아낙이 화를 내며 욕하기를 “아비 없는 놈이 내 물동이를 쏘아 부수었다.”고 하였다. 유리가 크게 부끄러워하며 진흙 탄환을 먹여 쏘아 물동이의 구멍을 막으니 이전과 같았다. 집에 와 어머니에게 묻기를 “내 아버지는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어미가 유리가 어리다고 여겨 장난으로 말하기를 “네게는 딱히 아버지가 없다.”고 하니 유리가 울면서 말했다. “사람에게 아버지가 없다면 무슨 면목으로 남을 대합니까.” 드디어는 스스로 목을 찌르려고 하였다. 어미가 크게 놀라 말리며 말했다. “아까 한 말은 놀리느라 한 말이었다. 네 아버지는 하느님의 손자이고 하백의 외손이시다. 부여의 신하 신세임을 원망하여 남쪽으로 떠나가 나라를 열었다. 네가 가서 뵙겠느냐?” 유리가 대답하였다. “아버지는 남의 임금인데 아들은 남의 신하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비록 재주는 안 되지만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어미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떠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 일곱 돌 위에 물건을 감추어 두었다. 이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내 아들이다.’라고.” 유리가 산골짜기로 가 찾다가 못 찾고 지쳐 돌아왔다. 유리는 집에서 슬픈 소리를 들었다. 그 기둥은 바로 주춧돌 위의 소나무였고 몸통에 일곱 모가 나 있었다. 유리가 스스로 깨달아 말하였다.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라면 일곱 모서리이다. 돌 위의 소나무라면 기둥이다.” 일어나 가 보니 기둥에 구멍이 있었다. (거기에서) 부러진 칼 한 도막을 얻어 크게 기뻐하였다. 전한 홍가 4년 여름 4월에 고구려로 달아나 칼 한 도막을 받들어 왕에게 올리니 왕이 가지고 있던 부러진 칼 한 도막을 꺼내 서로 맞추어 보았다. 피가 나면서 이어져 온전한 칼 한 자루가 되니 왕이 유리에게 말하였다. “네가 참으로 나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성을 지닌 바가 있느냐?” 유리가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날려 솟아올라 창을 타고 햇빛을 가려 신통한 이적을 보이니 왕이 크게 기뻐하며 태자로 삼았다.

類利少有奇節云云. 少以彈雀爲業, 見一婦戴水盆, 彈破之. 其女怒而詈曰, 無父之兒, 彈破我盆. 類利大慙, 以泥丸彈之, 塞盆孔如故. 歸家問母曰, 我父是誰, 母以類利年少, 戱之曰, 汝無定父. 類利泣曰, 人無定父, 將何面目見人乎, 遂欲自刎. 母大驚止之曰, 前言戱耳. 汝父是天帝孫, 河伯甥. 怨爲扶餘之臣, 逃往南土, 始造國家. 汝往見之乎. 對曰, 父爲人君, 子爲人臣. 吾雖不才, 豈不愧乎. 母曰, 汝父去時有遺言. 吾有藏物七嶺七谷石上之松. 能得此者, 乃我之子也. 類利自往山谷, 搜求不得, 疲倦而還. 類利聞堂柱有悲聲. 其柱乃石上之松木, 體有七稜. 類利自解之曰, 七嶺七谷者, 七稜也. 石上松者, 柱也. 起而就視之, 柱上有孔. 得毁劒一片, 大喜. 前漢鴻嘉四年夏四月, 奔高句麗, 以劒一片, 奉之於王, 王出所有毁劒一片合之. 血出連爲一劒. 王謂類利曰, 汝實我子, 有何神聖乎. 類利應聲, 擧身聳空, 乘牖中日, 示其神聖之異, 王大悅, 立爲太子.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동명왕편』은 고려 후기에 활동했던 이규보가 26세 되던 해인 명종 23년(1193)에 지은 것으로,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중심 소재로 하여 오언(五言)으로 읊은 운문체(韻文體)이다. 본문과 「구삼국사」에서 인용한 상세한 주(註)로 이루어져 있다.

동명왕편』의 서문에서 이규보는 “처음에는 동명왕 설화를 귀신(鬼)과 환상(幻)으로 여겼으나, 거듭 읽어 본 결과 요술이 아니라 곧 ‘성(聖)’이었고, 귀신이 아니라 곧 ‘신(神)’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것을 시로 쓰고 세상에 펴서 우리나라가 원래 성인지도(聖人之都)임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라고 저작 동기를 적고 있다.

이규보가 당시의 유교적인 중화 중심 역사 의식에서 탈피하여, 「구삼국사(舊三國史)」에서 소재를 취하여 고려의 주체성과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인의 자부심을 역사에 전하겠다는 의도에서 쓴 것으로, 작자의 국가관과 역사관 등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전하는 기사만 보더라도 「구삼국사」가 신이하고 설화적인 내용이 풍부한 반면, 고구려 본기는 어느 정도 유교적인 합리적 사관에 의해 윤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 사례만 들어 보자.

「구삼국사」에는 주몽이 도읍하여 성곽과 궁실을 축조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료 2-2-05〕 『동명왕편』 소재 「구삼국사」 인용 부분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그 산을 볼 수 없었다. 수천 사람의 소리가 나 무슨 토목 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하여 성을 쌓는다.”라고 하였다. 7일 만에 구름과 안개가 흩어지고 나니 성곽과 궁실과 누대가 저절로 완성되어 있었다.“

이와는 달리 고구려 본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료 2-2-06〕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명왕조

동명성왕 4년 여름 4월에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사람들은 7일 동안이나 빛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가을 7월에 성곽과 궁실을 지었다.”

이 두 내용을 비교해 보면, 고구려 본기는 유교적인 합리적 사관에 입각하여 기술하고 있는 반면, 「구삼국사」는 신이한 기록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구삼국사」 주몽 신화의 내용 구성

동명왕편』이 인용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기사는 주(註)에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 주는 본문 시의 설명 주석이므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 전체를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라, 이규보가 필요에 따라 발췌하여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구삼국사」의 내용 전체를 알기는 어렵고, 인용 기사를 연결해 놓아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중간중간 빠진 대목이 적지 않으리라 추정된다. 따라서 『동명왕편』에 인용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주몽 신화와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일단 『동명왕편』 주의 기사를 중심으로 「구삼국사」 주몽 신화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자.

(가)는 동부여 건국 설화의 내용으로 고구려 본기와 그 내용이 동일하다. 동부여 건국 설화의 주인공은 해부루와 금와왕이다. 주몽 신화와의 연관을 보면 본래 해부루가 있던 지역에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며, 금와왕은 주몽의 어머니 유화를 거둔 인물이다. 이들은 주몽의 부와 모를 통하여 주몽 신화의 배경을 이루는데, 주몽 신화 첫머리에 동부여 설화가 배치된 주요 이유로 볼 수 있다.

(나)는 해모수 신화를 전하고 있다. 이 해모수 신화는 고구려 본기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구삼국사」와 고구려 본기의 주몽 신화를 비교할 때 내용 구성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인데, 「구삼국사」 주몽 신화의 주요 요소는 오히려 이 해모수 신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해모수 신화가 아래의 주몽 신화와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즉 해모수와 하백의 딸인 유화가 혼인하여 주몽을 임신하는 것이 아니라, 유화는 다시 일광(日光)에 의하여 주몽을 임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해모수 신화는 주몽 신화가 성립된 이후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는 고구려 본기와 『위서』의 주몽 신화가 상통함을 보여 준다. 일광(日光)에 의하여 유화가 임신한다는 점에서 동명 신화의 변용 형태로서의 주몽 신화라는 전형적인 내용 구성을 지닌다.

(라)는 주몽이 금와왕의 아들들에 의해 시련을 겪는 내용으로, 고구려 본기와 내용이 유사하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마) 역시 부여를 탈출한 주몽이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큰 강을 건너는 장면으로 동명 신화의 기본 모티브이다. 고구려 본기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지만 부여에서 유화의 충언으로 부여에서 탈출하게 되는 동기가 빠져 있다. 본래의 「구삼국사」 주몽 신화에는 이 부분이 기술되어 있었겠지만, 이규보에 의하여 인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바)는 주몽이 남하 중에 유화가 보낸 비둘기로부터 곡식 종자를 얻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오직 「구삼국사」에서만 전해지는 기사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유화가 지모 신(地母神)의 성격을 지닌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뒤에 서술하겠지만 유화가 주몽과 더불어 고구려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대상이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사)는 주몽이 비류국의 송양왕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고 비류국을 복속하는 내용이다. 매우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어, 장대한 서사시로서 주몽 신화의 원래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고구려 본기의 내용과는 달리 『동명왕편』에는 주몽이 남하하는 도중에 모둔곡에서 3인을 신하로 거느리게 되는 대목이나, 졸본에 도읍을 정하여 고구려를 건국하는 내용이 빠져 있다.

(아)는 성곽과 궁궐을 하늘의 도움으로 짓는 내용인데, 그 설화적 기술의 양상이 고구려 본기와 차이가 있음은 앞서 검토한 바와 같다.

(자)는 주몽의 죽음 및 유리왕 설화이다. 유리왕이 부여에 있을 때의 관련 설화는 고구려 본기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보이는데 「구삼국사」의 기술이 훨씬 설화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 해모수 신화와 해부루-금와왕 설화의 성립

고구려 본기의 주몽 신화는 『위서』 고려전 기사의 기본 골격이나 문장을 많이 참조하여 작성하였기 때문에 본래 고구려 자체의 전승 그대로는 아니다. 그렇지만 고구려 본기 편찬자들이 주몽 신화를 편찬할 때 「구삼국사」 등의 자료를 참조하였기 때문에 『위서』 고려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가 상당수 추가되어 있다. 예컨대 부여왕 해부루가 곤연에서 금와를 얻은 후 동부여를 건국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해부루’ 신화, 유화가 천제의 아들[天帝子] 해모수와 결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해모수’ 신화가 바로 그것인데, 서로 계통이 다른 이 두 신화는 유화가 해부루의 계승자인 금와왕에게 발견되어 궁에 유폐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 본기에 실려 있는 주몽 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화는 해모수와 사통하여 임신한 것이 아니라 금와왕의 궁실에 유폐된 이후 일광(日光)에 의하여 임신한 것이다(幽閉於室中, 爲日所炤, 引身避之, 日影又逐而炤之, 因而有孕.). 이는 『위서』 고려전의 기사를 참조하여 편찬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기에, 이 부분은 「구삼국사」의 주몽 신화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구삼국사」에서도 “왕이 천제 아들의 왕비임을 알고 별궁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 안으로 해가 비쳐 이로 인하여 임신하였다(王知天帝子妃 以別宮置之 其女懷中日曜 因以有娠.).”라 하여 거의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구삼국사」의 내용이 고구려 당대 주몽 신화의 원형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일단 국내 전승 자료에서도 주몽의 임신은 일광(日光)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서』의 주몽 신화와 상통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광(日光)에 의한 임신은 어미[母]가 시비(侍婢)인가, 하백녀(河伯女=柳花)인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앞 절에서 살펴본 부여 동명(東明) 신화의 기본 요소와 거의 동일하다. 즉 「구삼국사」의 주몽 신화와 앞의 해부루 신화, 해모수 신화 및 이와 연결되는 뒤의 주몽 신화 사이에는 줄거리 전개상에 일정한 간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용상으로 주몽은 천제의 아들[天帝子]인 해모수의 아들로 되어 있지만, 신화의 구조상 해모수 신화와 주몽 신화의 기계적 결합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해부루 신화와 해모수 신화를 제외한 주몽 신화는, 기본 골격에서 부여 동명 신화의 재현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부루 신화와 해모수 신화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주몽 신화와 결합되었을까. 『위서』 고려전의 주몽 신화에는 이러한 해부루 신화와 해모수 신화가 없기 때문에, 이 두 신화는 5세기 이후의 정치⋅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새로 첨가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고구려가 문자왕 대에 부여족을 완전히 흡수 통합한 뒤 부여와 고구려 왕실이 원래 한 핏줄이었음을 강조하여 부여족의 반발을 최소화하고자 부여족의 시조 전승인 해모수 신화를 자신들의 시조 신화에 삽입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는 4세기 후반 무렵에 부여의 동명 전승을 차용하여 『위서(魏書)』 고구려전과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주몽 전승이 성립하였으며, 6세기 중반 이후의 정치적 변동 속에서 동부여 출신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동부여 천도 설화와 금와왕 설화가 첨가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제의 시조인 비류 전승에도 해부루 계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뒤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해부루 신화가 뒤늦은 시기에 주몽 신화와 결합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해모수 신화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광개토왕비’와 ’모두루 묘지’를 비교 검토해 보도록 하자.

광개토왕비’에서는 시조 추모(鄒牟; 주몽)를 ‘천제지자(天帝之子)’라 하였지만, ‘모두루 묘지’에서는 ‘일월지자(日月之子)’라고 하였다. 이는 『위서』 고려전에서는 말하는 ‘일(日)’,‘일영(日影)’으로 표현된 양상과 서로 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5세기 당시 고구려에는 시조의 부계가 ‘천제(天帝)’라는 전승과 ‘해[日]’라는 두 가지 전승이 있었던 것이다. ‘천제지자(天帝之子)’와 ‘일월지자(日月之子)’는 내용적으로 서로 통하지만, 해모수 신화와 관련시켜 볼 때 양자 사이에는 일정한 차별성이 드러난다.

광개토왕비의 ‘천제지자(天帝之子)’로서의 주몽에 대한 인식은, 고구려 본기의 주몽 신화나 「구삼국사」의 주몽 신화에 전하는 ‘천제지자(天帝之子)’로서의 해모수의 존재를 보여 주는 신화와 상통한다. 해모수는 주몽의 부계(父系)를 하늘, 즉 천제(天帝)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개토왕비’는 매우 소략하지만 ‘천제지자(天帝之子)’라는 표현을 통하여 당시 해모수 신화가 성립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5세기 당시 주몽이 ‘천제지자(天帝之子)’라는 전승을 이미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내용이 왜 『위서』 고려전의 주몽 신화에는 반영되지 않았을까.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모두루 묘지와 같이 ‘일월지자(日月之子)’ 계통의 신화가 전해졌거나, 아니면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전승이 전해졌는데, 북위(北魏) 측에서 자신들의 천하관과 충돌하는 관념을 배제하고자 의도적으로 변개하였을 가능성이 고려된다. 필자는 전자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자료의 시기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해모수 신화를 포함한 ‘광개토왕비’가 가장 이르고, 동명 신화와 유사하게 ‘해의 아들[日子]’로서의 면모만 보여 주는 ‘모두루 묘지’와 『위서』 고려전의 주몽 신화가 보다 늦은 시기이기 때문에, 해모수 신화가 보다 늦게 성립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해모수 신화가 본래의 동명 신화에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화의 내용으로 볼 때 해모수의 존재는 그 이전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즉 해모수 신화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해부루 신화도 마찬가지로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당시의 해부루 신화에서 동부여 천도 전승 및 금와왕 설화까지 포함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해모수의 천강(天降)이 해부루가 동부여로 천도한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해부루 신화의 주된 줄거리는 동부여 천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금와왕 설화는 동명 신화와는 전혀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는 서로 다른 계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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