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로 본 한국사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 3. 대한제국의 권력구조와 정치 개혁운동
  • 1) 대한제국의 정치 제도와 개혁운동
  • 마. 독립 협회의 의회 설립 운동과 좌절

독립 협회는 4월부터 시작된 의회 설립 운동을 보다 구체화하여, 10월 말에는 종래 자문기관에 불과한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하는 법 개정에 착수했다.

〔사료 3-1-16〕중추원 관제 개정건

제1조 중추원은 다음 사항을 심사하여 논의해서 정하는 처소로 할 일.

  • 일, 법률∙칙령의 제정∙폐지 혹 개정에 관한 사항.
  • 이, 의정부에서 논의를 거쳐 상주하는 일체 사항.
  • 삼, 칙령으로 인하여 의정부로부터 자순(諮詢)하는 사항.
  • 사, 의정부로부터 임시 건의에 대하야 자순하는 사항.
  • 오, 중추원에서 임시 건의하는 사항.
  • 육, 인민이 헌의(獻議)하는 사항.

제2조 중추원 직원은 다음 직원으로 구성할 일. 의장 1인, 부의장 1인, 의관 50인, 참서관 2인, 주사 4인.

제3조 의장은 대황제폐하께옵서 성간(聖簡)으로 칙수(勅授)하시고, 부의장은 중추원 공천에 의해 칙수하고, 의관은 반수는 정부에서 국가에 공로가 일찍이 있는 자로 회의에 추천하고 반수는 인민협회 중에서 27세 이상인 사람으로 정치∙법률∙학식에 통달한 자로 투표 선거할 일.

(출전 : 『주본』(규 17703) 「주본 234호 중추원관제개정사」(1898년 11월 2일), 「칙령 36호 중추원관제개정건」(1898년 11월 2일))

[사료 설명 : 첫째로 법률, 칙령 제정 폐지, 혹은 개정에 관한 사항을 우선으로 하였고, 의정부에서 의논하여 상주한 일체의 사항, 칙령으로 인하여 의정부에서 자순하는 사항 등 중추원의 결의 안건은 비교적 폭넓게 규정되어 있다. 개정 관제의 기본 취지는 의정부와 중추원의 기능을 행정권과 입법권을 가지고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중추원의 역할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았으므로 양 기구의 역할이 중첩될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의정부와 중추원의 결의는 반드시 황제를 거치게 됨으로써 대한제국의 권력구조는 황제를 최상위로 하여 그 아래 의정부와 중추원을 양립시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중추원의 의관 임명의 방식이 의관 50명 중 반수를 의정부에서 회의하여 상주하여 결정하도록 하고, 나머지 반수는 인민협회, 곧 독립 협회에서 투표하여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간선에 의한 대의적인 의회 성격도 포함하였다.]

1898년 11월 4일 정부도 독립 협회와 협의하여 중추원 관제를 새로 반포하였다. 중추원은 입법권, 조약비준권, 정부 정책에 대한 심사권과 건의권을 가진 의회와 같은 기능을 갖고 있었다. 다만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하지는 못하고, 정부와 독립 협회 인사들이 중추원의 의관(議官)을 각각 절반씩 선임하였다. 중추원의 개편으로 말미암아 기존 의정부 중심의 권력구조를 의정부와 중추원으로 분리하여 서로 대치하고, 그 위에 황제의 군주권이 군림하는 권력구조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보수파는 독립 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는 익명서를 퍼뜨려 독립 협회를 일시 해산시켰다. 이에 다시 서울 시민들은 만민 공동회를 열고 42일간 시위를 벌여 독립 협회의 복설, 개혁 내각의 수립, 중추원 재설립 요구 등을 관철시켜 나갔다. 12월 16일 처음으로 소집된 중추원 1차 회의에서는 권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새로 대신추천안을 결의하는 파행을 보였다. 고종 황제는 이를 빌미로 삼아 모든 의관을 면관시키고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 공동회독립 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사료 3-1-17〕사립흥화학교 교사 임병구, 중추원의 인재 투표 비판

전일에 중추원 회의에 제출한 사건에 인재를 등용할 의안을 가결하여 민망이 있는 11인을 투표 선거 하였다 하니, 내 이를 듣고 기꺼이 가로대, “아국이 개국한 이후로 의원을 설치하였으니, 이러한 상거는 고금에 처음 있는 일이라. 어찌 성세에 아름다운 일이 아니며 또 이로 인하야 우리 국민의 자유권이 얼마만큼이나 회복한 것은 미루어 알지라. 그러하나 무릇 국민의 자유권이라 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를 밟아 행하야 진실로 그 도가 아니면 백번 꺾어도 굴치 아니하야. (중략) 내 일본에 유학하야 일본의 상하 의원의 권리를 약간 해득하나, 정부 대신이 그 사람이 아니면 의원이 탄핵하며 민국사를 의정하야 내각을 거쳐 상주 재가하는 권리는 있으나 인재를 선거한다 하야 몇 사람을 매거하는 주례는 없으며, (중략) 이제 대한은 개벽하야써 옴으로 전제국으로 다행히 중흥의 성운을 지음하야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덕과 우리 동포의 열심으로만 건하야는 눈을 씻을 일을 세워 표백함이 많아야 목하에는 비록 인심이 소란하며 세태가 정치 못하야 오유의 탄식이 없지 아니 하나 장래에 우리 제국 평화 진보의 기초를 공고케 함에 공효가 막대하며 후세에 표준이 될지라. 이와 같은 중대 사무를 어찌 깊이 생각하며 바로 행치 아니하리오. 지금 중추원을 설한 지 며칠이 못 되어 인재 선거하는 한 의안은 당금에 자유권을 수창한 영⋅미 국민도 없는 규례를 창거하니 내 처음은 듣고 기꺼워하다가 마침 나는 의혹함을 있기를 마지 못하노라. (중략) 우리 황실에 영광을 받들어 빛내며 우리 국가의 자주권을 더욱 굳세게 함을 급히 생각하지도 아니하며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직권을 넘는 일을 행하면 우리 인민의 자유권을 회복하며 보전하는 양책에 방해 되옴이 더 클 수 없다 이르노라.”

(출전 : 『매일신문』 1898년 12월 23일 ; 1898년 12월 24일)

〔사료 3-1-18〕칙령 20호, 중추원 관제 재개정 (1899년 5월 22일)

제1조 중추원은 다음 사항을 심사하여 논의해서 정하는 처소로 할 일.

  • 일, 법률∙칙령의 제정∙폐지 혹 개정에 관한 사항.
  • 이, 의정부에서 논의하여 상주하는 일체 사항.
  • 삼, 칙령을 인하여 의정부로부터 자순(諮詢)하는 사항.
  • 사, 의정부로부터 임시 건의에 대하여 자순하는 사항.
  • 오, 중추원에서 임시 건의하는 사항.
  • 육, 인민이 헌의하는 사항. (중략) 제3조 의장은 부의장과 칙임의관은 조칙으로 서임하고, 주임의관은 정부에서 논의를 거처 행할 것. (중략)

제11조 의정부와 중추원에서 의견이 합치되지 않을 때에는 부원(府院)이 합석 협의하여 타당 가결한 후에 시행하고, 의정부에서 바로 시행함을 득(得)하지 못할 사. 단 시급한 사정이 있어 자문을 기다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의정부로부터 바로 상주하고 추후로 그 이유를 조회 설명하며, 혹 예에 따라 행하게 하여 반드시 자문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바로 시행할 것.

(출전 : 『주본(3)』 1899년 5월 20일, 259~261쪽, 『관보』1269호, 1899년 5월 24일자)

[사료 설명 : 새로 개정된 중추원 관제의 내용 중에서 제1조의 심의사항은 종전 규정과 같으나 중추원 의관의 민선 규정을 없애고 대신에 칙임의관 10명은 황제가 직접 임명하고, 주임의관 40명은 의정부에서 임명하고, 주임 의관을 자격을 종전에 품질(品秩)이 있는 자로 규정하였다. 또한 긴급한 사정이 있을 경우 자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황제에게 상주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어 중추원을 단순한 자문기구로 격하시켰다.]

독립 협회의 정치 개혁운동은 보수파 관료들의 반발, 협회 내의 급진 소장파의 과격한 행동, 지도부의 전략 부족, 시민세력의 미성숙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독립 협회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민주주의 정치운동, 민권 계몽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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