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로 본 한국사
  • 한반도 신탁 통치안
  • 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의 대한 정책과 신탁 통치안
  • 1) 미국의 전후 대한 구상과 한반도 신탁 통치안
  • 아. 소결 : 한반도 신탁 통치안의 형성

이상에서 살펴 본 미국의 한국 전후 처리 방안에 대하여 열강들은 대체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중국은 중경(重慶)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臨政)에 대한 지지를 통하여 한반도에 일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자신들의 영향력만 확보된다면 기꺼이 국제 신탁 통치에 협조하려 하였고, 기실 미국 측 안에 조기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전후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지위에 주된 관심이 있었던 영국 역시 일찌감치 미국 측 안에 동의하였다. 오히려 미국은 자기들의 구상을 관철시킬 만한 실질적인 여력이 없었던 중국과 영국을 자신들의 후원 세력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소련은 자신들의 복안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계속 다짐을 받으려는 미국 측에 마지못해 동의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전후 기획 과정에서 안출된 미국의 신탁 통치안은 한국의 전후 처리에만 적용되는 개별적 원칙은 아니었고, 식민지 종속 지역의 전후 처리를 위한 일반적 원칙의 성격을 가졌다. 미국은 신탁 통치안이라는 점진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 방식에 입각한 식민지 문제의 전후 해결책을 공식 정책으로 표방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기에는 각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이해 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의도도 아울러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반적 원칙과 구체적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현지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보다 현실성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했다. 해방 전후 각 식민 종속 지역에서 미국의 행동을 실제적으로 규정했던 것은 미국이 마련했던 현실적 대응책과 현지 사정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반도 신탁 통치안에 담긴 미국의 대응 방안은 국제적 차원과 한국 내부적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미국이 고려한 것은 한반도 신탁 통치를 통하여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소련과 일본을 견제하고 미국의 안보 이해를 보장받는다는 점과, 신탁 통치안을 식민 종속 지역의 전후 영토 문제 처리의 일반 원칙으로 고수한다는 점이었다. 한국 내부적 차원에서 미국의 고려 사항은 한국의 정치적 독립 실현 방식과 절차, 한국 민족 운동에 대한 대응이라는 문제였다. 양 측면은 현실의 진행 과정에서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일단 각각을 내용적⋅논리적으로 분리시켜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국제적 측면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미국이 식민지의 정치적 독립 문제를 제기할 때 피압박 민족의 내재적 요구 해결이라는 측면보다 강대국 간 영토처리의 일환이라는 측면을 선행시켰다는 점과, 미국의 안보 이해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이다. 신탁 통치안과 관련해서 분석해야 할 다른 측면은 전후 한국의 내부 정세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이다. 이 문제야말로 미국의 대한 정책과 전후 한국 정치 사이의 직접적 관련성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신탁 통치안이 한국에 적용될 때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한국 내부 정세에 대한 대응책 마련 과정에서 그 핵심은 점령에서 완전 독립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수립될 통치 기구였다. 미국은 신탁 통치를 위하여 다단계 관리 방식을 구상하였고, 그 가운데 한국 현지에 수립될 통치 기구로 국제 민간 행정 기구(International Civil Administrative Authority)를 구상하였다. 국제 민간 행정 기구는 주권과 통치권이 이 기구에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 국가의 정치적 대표인 정부(Government)와는 구별되었다. ‘국제’라는 수식어는 정무 권한(Governing Power)이 한국인에게 맡겨지지 않고 국제 연합(UN)의 위임을 받은 외국인들로 구성된 기구에게 맡겨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또 ‘민간’이라는 수식어는 군정(Military Government)과 구별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국제 민간 행정 기구라는 일종의 과도 정부 형태에 대한 구상은 전후 기획의 전개 과정에서 일찌감치 정식화되었다. 실제로 이 국제 민간 행정 기구의 구성, 권한, 관리, 운영에 관한 문제는 한국의 전후 처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후 기획 집단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논란을 벌인 사안 가운데 하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것은 신탁 통치 실시에서 가장 중요한 통치 권력과 그 관리자에 관한 문제로, 미국의 주도권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강대국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후 기획 집단은 국제 민간 행정 기구 설치에 대하여 두 가지 구체적인 안을 준비하였다. 하나는 1인의 고등 판무관(高等辦務官, High Commissioner)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를 구성하고, 고등 판무관이 연합국에서 적당한 요원을 선발하여 관리를 등용하는 방안이었다. 다른 하나는 1차 대전 이후 국제 연맹에서 사르 지역에 파견한 사르 위원단(Saar Valley Commission)처럼 5명 정도 판무관의 집합체로 기구를 설치하고,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와 같은 2등국 대표를 의장으로 지명한 뒤 나머지 4명의 위원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서 뽑는 방안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민간 행정 기구에 행정 요원이나 행정에 관한 훈련을 목적으로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뒤에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이 제안한 한국 문제 해결 방안은 위의 두 가지 안을 절충한 것이었다.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은 주권과 시정권(施政權)을 분리하여 주권의 행사를 일반적인 국제 기구로 넘기는 한편, 4강대국에게는 감독권과 시정권을 통하여 한국의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였다.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은 구성의 절차와 방법에서 세부적 차이를 포함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자결권을 부정하고 시정권을 피신탁국에 맡기며, 이를 국제적 감독하에 둔다는 특징을 가졌다.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은 이후 한국 정부 수립과 한국 내정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미국이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을 제기한 주요 동기이기도 하였다.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이 미국에게 주는 이점은 한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의 전일적 지배를 방지하고, 미국이 이 지역에서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안보 이해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음으로 자칫 폭발적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종전 이후 한반도의 민족 운동 고양에 강대국들이 공동 대처함으로써 이를 조절하고 내정에 개입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민간 행정 기구 → 감독 이사회 → 국제 연합으로 이어지는 관리 체제하에서는 4대국 관리 방식을 통하여 어느 단계에서나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무렵 미국이 고안한 신탁 통치 제도는 해당 지역의 행정을 담당할 행정 기구, 해당 지역에 이해 관계를 갖는 강대국과 주변국으로 이루어지는 지역별 감독 이사회 또는 신탁 통치 위원회, 마지막으로 신탁 통치 지역의 시정을 감독할 일반적인 국제 기구(UN)로 이루어지는 3단계 관리 체계를 상정하였다. 미국이 구상한 이러한 신탁 관리 제도는 이후 국제 연합 헌장의 신탁 통치 관련 조항에도 반영되었다.

미국이 구상한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하여 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이 구상과 종전 이후 한반도에 수립될 경제 체제 구상의 관련성이다. 미국의 정책 결정 집단 내부에 한반도 신탁 통치안이 분명히 자리잡기 전까지만 해도 만주 문제의 해결이 한국의 장래 지위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점이 전후 대한 구상에서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한반도 신탁 통치안이 공식 정책으로 제기되면서 한반도를 주변 지역의 영토 문제 처리에 종속된 문제로 파악하기보다 하나의 독립된 문제로 사고하기 시작하였다. 정책 준비 이전의 초벌 논의 단계 때만 해도 미국은 주변 강대국들에게 한국의 전후 처리를 맡기는 방안도 고려하였으나, 신탁 통치안을 해결 방안으로 결정한 뒤에는 영토 문제 처리에서 한국을 하나의 독자적인 단위로 간주하였고,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을 그 구체적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미국의 전후 기획 집단은 신탁 통치 기간 중 강대국의 자본 제공과 기술적 원조를 통하여 한국 경제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한국의 즉시 독립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경제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가질 경우,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산업 시설의 국유화 위험이 뒤따르고 대중들의 경제적 욕구가 급격히 분출됨으로써 위기가 초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탁 통치하에서 외국 자본의 자유로운 교류와 접근은 허용하되, 종전 이후 한국 경제의 급격한 구조 변화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후 기획 집단은 중경 임정조차도 강령에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제기한 점을 들어, 한국에 대한 즉시 독립 허용이 세계 경제 체제로부터 한국 경제가 이탈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이 구상했던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은 과도기의 체제 재편을 담당할 관리 기구의 성격도 함께 가졌다.

미국은 일본의 한국 경제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종식시킴으로써 일본의 블록 경제를 해체시키는 한편, 한국 경제의 일정한 자립과 함께 세계 경제로의 재편입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구상은 아직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행동 방침을 수반하지 않은 정책 요강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그것이 관철하고자 했던 대한 정책의 전략적 기조는, 한반도를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경제 단위로 하여, 전후 미국이 주도하게 될 세계 경제에 점진적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얄타 회담이 개최될 무렵에 이르러 미국의 전후 대한정책에 관한 기획과 준비는 대체로 완성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미국에게는 태평양 전쟁의 전황과 관련하여 위의 정책 요강을 관철시킬 수 있는 현실적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중요해졌다. 미국은 얄타 회담이 끝난 뒤에는 신탁 통치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획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의 종결이 임박하면서 국무부와 군부의 정책 협의를 본격화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국무부⋅육군부⋅해군부 삼부 조정 위원회(SWNCC, State-War-Navy Coordination Committee, 이하 ‘삼부 조정 위원회’) 극동 소위원회(Sub-committee on Far East)는 1945년 3월 하순경부터 연합국의 한국 점령 방식, 점령 이후 군정 실시 방법, 국제 관리 기구 구성을 위한 강대국 간 협의를 위하여 정책 지침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한 정책 준비 과정과 논의 내용을 요약하여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2-1-2>태평양 전쟁기 미국의 대한 정책 구상의 발전 과정

  총론적, 원칙적
토론 단계
정책 준비 단계 정책 결정 단계
해당
시기
1942년 2월∼
1943년 6월
1943년 3월∼1945년 1월 1945년 3월∼
관련
문서

작성
시점
’P31, 정치 소위
원회의 잠정 견해:
한국과 사할린‘
1942. 8. 1.
’T318, 한국의
내부 정치 구조‘
1943. 5. 19.
’P-B81, 한국의 독
립 정권 수립 문제’
1944. 5. 28.
’H200, 한국: 정
치 문제: 국제적 감
독 기구의 필요성’
1944. 11. 13.
SWNCC 77, 78,
79, 101 계열의
점령, 군정, 국제
민정 기구에 관한
일련의 정책 문서
작성
목적
한국에 대한 전후
처리 원칙의 제시
관련 사실 수집과
조사⋅분석
정책 작성을 위한 잠
정 지침의 제시
정책 요강(Policy
Summary) 제시
정책 지침 작성
주요
내용
전후 식민 종속
지역에 적용할
신탁 통치안의
일반 원칙 마련과
지역별 적용
방안 점검.
한반도 국제 신탁
통치안 제시
독립 실현 방안,
국내 정치 구조,
주변 강대국의
태도,
경제 자립 전망,
영토와 국경선
문제 등 한반도
신탁 통치안의
실시와 관련된
구체적 문제
검토
① 점령∼독립 사이
의 과도기에 적용될
정책 계획 제시; 군정
실시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이후는 군정
실시 단계와 연합국의
민간 행정 단계로
구분
② 국제 민간 행정부
의 구성, 관리, 운영
방법 제시
③ 4강대국의 협정에
의한 군사적 안전
보장 장치 마련의
필요성 제기
한반도의 독립과
관련하여
① 국제적 측면,
② 안보 문제,
③ 한국인의 독립
능력의 세 측면을
구체적으로 검토.
연합국의 공동 점령,
공동 관리를
지향
점령군의 구성,
군정에 의한
한국인 취급 원칙,
군정청 행정에서의
한국인 이용 문제,
과도적 국제 기구
등의 개별 사안
들에 대한 실무적인
정책 지침 논의
담당
기구
자문위 정치 소위 자문위 영토 소위 외교 협회 ‘기획’ 정치
소위원회
국무부 정책 기획
위원회 한국
소위원회
삼부 조정 위원회
및 산하의 극동
소위원회
비고   카이로 선언
한국 관련 조항의
기초
  얄타 회담을 위한
요약 보고서의
성격
최종 지침은 1945
년 9월∼10월에
완성

(출처 : Harley A. Notter, Postwar Foreign Policy Preparation 1939--1945;
외교 협회 기록 중 ‘한국’, ‘극동 아시아’ 관련 문서;
노터 파일 중 ‘한국’ 관련 문서;
삼부 조정 위원회 십진 분류 문서철, SWNCC 77, 78, 79, 101 계열 문서들로부터 작성.)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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