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로 본 한국사
  • 한반도 신탁 통치안
  • 3.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조선에 관한 결정’
  • 1) 점령 직후 주한 미군 사령부의 신탁 통치안 반대 입장
  • 다. 점령 초기 신탁 통치안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

국무부는 신탁 통치를 위한 국제적 협정을 고집하면서 이를 언론 보도를 통하여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오히려 국무부 극동국장 빈센트의 신탁 통치 발언이 한국의 정계에 끼친 파문에서 보듯이 이러한 구상이 흘러나오자 한국의 정치 세력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이에 반대하였다. 국내의 『매일신보』 1945년 10월 23일자는 샌프란시스코 발로 빈센트(J. C. Vincent) 극동국장의 신탁 통치 관련 발언을 보도하였다.

이 보도에 의하면 빈센트는 ‘조선이 당장 자치를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미국은 우선 신탁 관리제를 실시하여 조선 민중이 독립한 통치를 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제창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20일 미국 대외 정책 협회(Foreign Policy Association)에서 하였다.

〔사료 3-1-03〕 미 국무부 극동극장 빈센트의 신탁 통치 발언

[뉴욕 20일발 샌프란시스코 동맹(紐育20日発SF同盟)] 미 국무성 극동국장 빈센트는 20일 미국 외교 정책 협의회 회합에서 미국의 극동 정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一. 중국 및 소련과의 협력 정책은 극동 안정을 위하여 불가결한 요건임. 소⋅중 양국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 극동에 서 미국 정책의 목적은 달성될 것이다.

一. 베트남 정세에 관해서는 미국 정부는 당지에 있는 프랑스 주권을 문제 삼지 않을 의향이다. 네덜란드 령 동인도 정세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주권국이 관리를 위하여 강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하여 미국은 원조는 물론, 참가도 하지 않을 작정인데, 베트남 및 네덜란드 령 동인도에 평화 협정을 수립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원조할 작정이다.

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이미 9월 22일 화이트 하우스 성명에서 그 개요가 명백히 밝혀졌다. 즉 일본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 군사력을 박탈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근본적 인권 존중에 대한 일본 국민의 희망을 조장⋅촉진시키는 데 있다.

一. 조선에 대해서는 동국의 신탁 관리제를 수립하기에 앞서 먼저 소련과의 의사 소통 후에 산적한 정치 문제들을 해결하게 하고 싶다. 조선은 다년간 일본에 예속되었던 관계로 지금 당장 자치를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우선 신탁 관리제를 실시하여 조선 민중이 독립된 통치를 행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갖도록 할 것을 제창한다. 미국은 조선을 가능한 빨리 독립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 작정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민주주의 정부를 가진 강대하면서도 협조적인 통일 국가가 실현되도록 조장하는 데 있다. 미국은 미⋅중 양국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과의 협력을 계속할 생각이다. 중국은 극동에서 소련과 미국 사이의 간섭 지대 내지 교량적 역할을 해 왔다. 금후도 미국은 중국이 교량적 역할에 노력하여 주기를 환영한다.

一. 소련과의 협력 관계는 우호적인 미⋅소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소련도 미국이 극동에 대하여 중대한 이해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출처: 『매일신보』, 1945년 10월 23일)

이에 대하여 10월 25일자 ’매일 신보’는 탁치 실시는 조선에 대한 중대 모욕이므로 신탁 관리제에 단연 반대하자고 호소하였으며, 국민당의 안재홍 위원장은 이 보도가 허보(虛報)이기를 절망(切望)한다고 말하면서 민족의 통일된 의지로 반대할 것을 호소하였다. 또 조선 공산당의 김삼룡도 빈센트의 발언이 조선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인민의 의지를 무시한 충격적인 탁치에 반대하기 위하여 통일 전선을 만들어 조선 인민의 힘을 과시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어서 중앙 인민 위원회와 한민당도 반탁을 결의하였다. 이렇듯 국내 신문을 통하여 흘러나온 미 국무부 관리의 신탁 통치 제안에 대하여 국내의 정치 세력들은 좌우를 불문하고, 모두 신탁 통치 반대 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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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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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3-1-04〕 각 정당 행동 통일 위원회에서 발표한 반탁 성명서

각 정당 행동 통일 위원회 전체 위원회에서 결의된 신탁 통치에 대한 반대 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 성명서

일본이 패배하자 조선은 카이로 회담에 의하여 당연히 완전한 자주 독립이 될 것을 확신하고 연합국에 만강의 사의를 표하면서 그 실현이 급속하기를 고대하였다. 우리가 목하 제종의 불평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정에 최대의 협력을 아끼지 않는 것도 자주 독립의 과도적 단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신은 조선 통치설을 전하고 있으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기대에 배치됨이 너무나 크며 모멸감이 이에 더할 데 없다.

조선 민족은 4천 년의 장구한 역사와 혁혁한 문화를 가졌고 완전한 독립 국가를 유지하며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과 열의를 가진 것은 각국이 충분히 인식할 줄 믿는다. 일본의 통치하에서도 우리는 국내⋅외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혈전 고투하여 해방에 노력해 온 것을 그들이 시인하고 원조까지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탁 통치 운운함은 조선 민족을 모욕하고 기만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3천만 민족의 총의를 대변하여 완전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신탁 통치를 절대 반대한다.

1945년 10월 26일

각 정당 행동 통일 위원회

(출처: 『매일신보』, 1945년 10월 29일)

전체적으로 미 국무부는 분할 점령으로 야기된 점령 통치상의 어려움과 이것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알고 있었고, 신탁 통치안을 한국인들에게 납득시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의 기본 틀을 유지한 채 이 기구에 한국인을 최대한 참여시킨다는 정도의 수정을 통해 한국인들을 설득하려 하였고, 신탁 통치 협정을 조속히 마련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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