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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왕 대조영[大祚榮]

고구려의 장수, 발해를 세우다

미상 ~ 719년(고왕 22)

고왕 대조영 대표 이미지

대조영 표준영정

전통문화포털(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정보원)

1 개요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은 발해의 첫 임금으로 발해를 세우고 698년부터 719년까지 재위하였다.

2 대조영의 출자(出自)에 대한 기록들

발해에 관한 기록은 중국사서의 열전에 적혀 있는 몇 장이 전부이고, 대조영에 관한 기록은 한 줄에 불과하다. 그나마 적혀 있는 대조영의 출신에 관한 내용도 사서마다 달라서 혼란스럽다. 각 사서에 기록된 대조영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경향성을 보인다.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원래 고구려의 별종이다”라고 하였고, 『신당서(新唐書)』에서도 “발해는 원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붙은 자로 성은 대씨이다”라고 하였다. 『구당서』와 『신당서』에서는 대조영의 출신에 대하여 원래는 속말말갈이고, 고구려의 별종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말갈적 요소와 고구려적 요소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반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한국 측 사서인 『삼국사(三國史)』와 『신라고기(新羅古記)』를 인용하여 고구려의 옛 장군 조영의 성은 대씨(大氏)인데 고구려의 유민을 모아 나라를 세워 발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조영의 종족적 출신에 대해서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은 채 고구려의 장군 출신이라고 하고, 발해를 세운 주체가 고구려의 유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삼국사』와 『신라고기』는 발해에 대하여 고구려적 요소만을 서술하고 있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도 대조영을 고구려의 옛 장수라고만 언급하였고,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도 발해는 속말말갈인데 “고구려인 대조영(高句麗人 大祚榮)”이 발해를 세웠다고 하여 대조영을 고구려인으로 규정하고 고구려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말갈적 요소만을 언급한 기록도 확인되는데 최치원은 대조영이 원래 속말말갈 출신이라고 하였고, 『삼국유사』에서 중국의 『통전(通典)』을 인용한 내용에서는 “발해가 원래 속말말갈로 그 추장인 대조영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고 하여 속말말갈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조영의 출자에 대한 기록은 말갈적 요소와 고구려적 요소를 동시에 언급한 경우, 고구려적 요소만을 언급한 경우, 말갈적 요소만을 언급한 경우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3 대조영은 고구려인? 말갈인?

이처럼 복잡하게 기록된 대조영의 출자는 발해의 국가 정체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시각들을 낳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발해의 말갈적 요소에 중점을 두고 말갈계 국가로 인식하고, 우리나라과 북한, 일본은 대체로 고구려계 국가라는 시각에서 발해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발해가 당에 속한 지방 정권이었는가, 별개의 독립된 국가였는가의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대조영의 출자와 관련하여 언급된 ‘고려별종(高麗別種)’, ‘속말말갈(粟末靺鞨)’, ‘고려구장(高麗舊將)’을 종합하는 것이 대조영 출자의 실체를 밝혀주는 실마리라 생각한다. 말갈은 7부(部)의 말갈이 있었는데 백산부(白山部)·속말부(粟末部)·백돌부(伯咄部)·안거골부(安車骨部)·불녈부(拂涅部)·호실부(號室部)·흑수부(黑水部)이다. 그 중 속말부가 속말말갈로 속말수(粟末水: 송화강) 일대를 본거지로 하고 있어 일찍부터 고구려와 인접하고 있었다.

말갈은 군사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구려와 주변국과의 전쟁 기사 중에는 말갈이 고구려와 함께 전쟁을 수행하는 내용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645년 당태종이 고구려와 당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고구려인은 모두 풀어주는 대신 말갈인 3,300명은 모두 파묻어 죽였고, 654년에는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거란을 공격했으며 655년에는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말갈은 고구려와 함께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전쟁에 동참하였다.

6세기 말부터 고구려가 속말수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일부 세력이 고구려로 투항하였고 대조영의 선조도 이때 고구려로 이주한 것으로 생각한다. 대조영의 출자를 설명하는 ‘고려별종(高麗別種)’은 대조영이 종족적으로는 ‘고구려’와 다른 종류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조영은 종족적으로 ‘속말말갈’이었으나 그 선조 대에 고구려로 이주하였고 말갈 특유의 군사적 능력을 바탕으로 고구려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대조영은 고구려에서 장군(高麗舊將)으로 활약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는 고구려에서 생활하면서 상당히 고구려화 된 인물로 ‘고려별종’은 속말말갈이면서 고구려화 된 대조영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대조영은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과는 달리 성은 대(大), 이름은 조영(祚榮)이라는 한화된 이름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아버지 단계보다는 한층 고구려화의 진전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한다.

고구려의 장군 대조영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발해를 건국하기 전 대조영 집단이 있었던 곳은 영주(營州)로 이 지역은 고구려의 유민들이 강제로 이주되었던 곳이고 거란, 해(亥), 말갈 등의 종족들도 이곳에 이주되었다. 따라서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군으로서 고구려 유민의 신분으로 영주 지역으로 강제로 옮겨졌고 거란의 반란을 틈 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등을 규합하여 영주를 벗어나 요동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결국 ‘속말말갈(粟末靺鞨)’, ‘고려별종(高麗別種)’, ‘고려구장(高麗舊將)’으로 다양하게 기록된 대조영의 출자는 말갈계 고구려인으로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대조영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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