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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金首露王]

금관가야의 시조

42년(대무신왕 24) ~ 199년(산상왕 2)

김수로왕 대표 이미지

김수로왕 표준영정

전통문화포털(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정보원)

1 개요

김수로왕은 금관가야(金官伽倻)의 건국 시조로 알려져 있다. 수로왕 설화를 통해 그가 이주민 계열로서 김해 지역의 토착 세력과 함께 금관가야를 건국하였음을 알 수 있지만, 통치자로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2 『삼국유사』 가락국에 보이는 수로왕 설화

금관가야라고도 하는 김해 가락국(駕洛國. 혹은 伽耶國)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수로왕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는 내용이 가장 자세하다. 수로왕의 탄생과 가락국의 건국에 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해 지역에서 9간이 사람들을 이끌고 살고 있었는데,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42년) 북쪽의 구지(龜旨)에서 하늘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 소리가 시키는 대로 노래를 부르니 하늘에서 자줏빛 줄에 묶인 금상자가 내려왔다. 금상자 안에는 황금 알 6개가 있었는데, 다음날 여섯 알은 여섯 남자아이로 변해 있었다. 이에 이들을 높여 공경하였으며, 그 중 한 명인 수로(首露)가 대가락(大駕洛)의 왕이 되었으며, 나머지 다섯 남아들도 각각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수로왕이 즉위한 후, 탈해가 와서 왕위를 빼앗고자 하였으나 신통력 대결을 통해 왕위를 굳게 지켰다. 48년에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으며, 이후 왕비와 함께 선정을 베풀다 189년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정리된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가락국기는 건국 시조로서 수로왕의 신이한 탄생 과정과 그의 신통력, 하늘이 맺어준 왕비에 관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사실로 믿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또한 가락국기 자체도 고려 문종대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전부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9간의 무리가 구지봉에 모여 구지가를 부르자 하늘에서 금빛 알 6개가 내려오고, 이 알이 남자아이로 변하자 9간이 이들 중 한명을 추대하여 수로왕으로 삼았다는 줄거리에는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수로왕보다 9간의 이름과 활동이 먼저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수로왕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김해 지역의 유력 세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내용은 수로왕이 9간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사람, 이주민 계열이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9간들의 추대에 의해 수로가 왕이 되었으므로 국가 형성에 있어 9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다른 사서에 기록된 수로왕 설화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 신라본기의 첫머리에는 시조와 건국 설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삼국사기』에는 가야의 본기가 실려 있지 않아서, 수로의 가야 건국 설화는 『삼국유사』에서만 보일 뿐이다. 다만 『삼국사기』에서도 수로왕과 관련된 내용들은 찾아볼 수 있다. 금관가야의 10대 왕이었던 구형왕(仇衡王)이 신라 법흥왕대에 신라에 항복하면서 그 후손들이 신라에서 관리로 활동하였는데, 신라의 삼국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유신이 구형왕의 3세손이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는 김유신의 가계를 설명하면서 수로왕이 김유신의 선조라 하여 수로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수로왕은 어디 사람인지는 알지 못하나, 42년에 구봉(龜峯)에 올라 가락 9촌을 보고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가야라고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 중 신이하여 사실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부분들을 생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이후 시기의 사서에도 김수로왕과 관련된 기록들이 존재한다. 먼저 『고려사』 지리지에서는 지금의 김해 지역에 해당하는 경상도 김주(金州)의 연혁을 서술하면서 수로왕과 가락국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알의 개수가 6개가 아니라 1개라는 점을 제외하면 『삼국유사』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왕후인 허황옥의 이야기는 빠져 있으며,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것까지 서술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사서 중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실학자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실린 내용이 눈길을 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싣고 있으나 『삼국유사』와 달리 알의 개수를 1개라 하여 『고려사』 지리지의 내용과 거의 같다. 그러나 『동사강목』에서는 수로왕 설화에서 신이한 부분을 모두 제외하고 김해 지역의 9간이 제사를 지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김수로라는 인물이 구지봉에서 9촌을 보고 내려왔는데, 수로와 그 형제들의 모습이 장대하여 이들을 세워 군주로 삼았다고 하였다. 안정복은 고대의 역사를 서술할 때 괴이한 이야기들은 따로 발췌하여 부록으로 정리하고, 이러한 괴설들을 변증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락국의 건국을 서술하면서도 수로왕 설화 중 신이한 부분들을 모두 제외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4 수로왕의 통치자로서의 모습

수로왕에 관해서 가장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삼국유사』에서도, 수로왕의 즉위 후 활동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9간의 명칭을 관직 명칭에 걸맞게 바꾸고, 신라와 중국의 관제를 모방하여 관직을 설치하였다는 것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신라본기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조에서 수로왕이 당시 소국이었던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의 영토 분쟁을 해결해 주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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