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知訥, 1158∼1210)은 고려 중기의 선종 승려로, 불교 결사 운동을 펼치고 교선일치(敎禪一致)의 선사상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무신정변(武臣政變) 이후 무신들간의 권력 다툼을 거쳐 최충헌(崔忠獻)이 집권 체제를 확립해가는 시기에 활동하였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뒤로 문벌귀족의 후원을 받아왔던 교종 사원들이 무신 집권에 반대하여 항거하고, 승려들이 민란에 개입하거나 난을 일으켜 무신들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한 가운데 다시 선종(禪宗)이 집권 무인들의 후원을 받으며 일어나게 되었다. 지눌은 결사 운동을 벌여 선(禪)을 부흥시키고, 불교 개혁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지눌은 황해도 서흥(瑞興) 출신으로, 속성은 정씨(鄭氏),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다. 그의 아버지는 국학[고려](國學)의 학정(學正)을 지낸 정광우(鄭光遇)이고, 어머니는 개흥군부인(開興郡夫人) 조씨였다. 일찍이 8세에 종휘(宗暉)를 스승으로 모시며 출가하여,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 중 사굴산파(闍崛山派)에 속한 승려가 되었다. 지눌이 일찍 출가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기도 때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이 많아 약을 써도 낫지 않자 아버지가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만약 병을 낫게 하면 출가시키겠다고 서원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서원을 세우자마자 어린 지눌의 병이 곧 완쾌되었다. 출가한 뒤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여러 고승을 찾아가 배우며 수학에 전념하였다.

1182년(명종 12) 승과(僧科)에 급제한 뒤,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동지 몇 사람과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어 함께 수행할 것을 기약하였다. 지눌은 남쪽으로 내려가 창평(昌平) 청원사(淸源寺)에 머물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열었던 당나라 혜능(慧能)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1185년(명종 15)에는 다시 예천(醴泉)의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로 옮겼는데, 이곳에서 대장경(大藏經)을 열람하던 중 당나라 이통현(李通玄, 636∼673)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을 보고 선과 교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결사를 맺기로 약속했던 동지 중 한 사람인 득재(得材)가 공산(公山) 거조암(居祖庵)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를 청하였다. 1190년(명종 20)에 지눌은 거조암으로 가서 결사의 취지를 밝힌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정과 혜를 닦는 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비좁은 암자에 많은 사람이 결사에 모여들어 문제가 발생하자, 지눌은 1198년(신종 1)에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지눌은 보문사에서 2번째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도 가슴속에 걸리는 것이 원수같이 있어 괴로웠는데, 지리산에서 드디어 확연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술회하였다. 이것이 3번째 깨달음이다. 그는 이때 송나라 임제종의 선사인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대혜어록(大慧語錄)』을 읽고 있었다. 선이란 것은 조용한 곳에도, 분주한 곳에도 있지 않고, 날마다 인연을 따라 주고 받은 곳에도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으나, 제일은 조용한 곳, 분주한 곳, 날마다 수응하는 곳, 생각하여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선하지 않아야만 홀연히 눈이 열리어서 이것이 다 집안에 일임을 알 수 있다는 구절에서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는 무엇이 가슴에 걸리지 않고 원수가 함께 있지 않아 안락하여 졌다고 한다.

1200년(신종 3)에 결사의 근거지를 승주(昇州)의 송광산(松廣山) 길상사(吉祥寺)로 옮기고, 몇 년 뒤에는 그 이름을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로 바꾸었다. 수선사에서 지눌은 10여 년간 자신의 독창적인 선사상을 바탕으로 대중을 지도하며 선풍(禪風)을 떨쳤다. 이후에도 수선사는 지식인 중심의 수행단체로 왕실과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으며 지속되었다.

1210년(희종 6) 봄, 지눌은 대중들과 함께 선법당(善法堂)에서 문답한 뒤, 법상에 앉아 입적하였다. 뒤에 국사(國師)로 추증되어,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와 감로(甘露)라는 탑호(塔號)가 내려졌다. 탑비는 1213년에 건립되었다.

지눌의 저술로는 『권수정혜결사문』 외에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염불요문(念佛要門)』, 『상당록(上堂錄)』, 『법어가송(法語歌頌)』 등이 있다. 문하 제자는 혜심(慧諶)을 비롯해 천진(天眞)·확연(廓然)·인민(仁敏) 등 수백 인에 이른다. 혜심은 지눌에 이어 수선사의 2세 사주가 되어, 간화경절문을 크게 떨쳤다. 수선사에서는 고려 말까지 15인의 국사가 배출되어, 고려후기 불교계에서 수선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지눌은 먼저 「권수정혜결사문」에서,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정혜를 익히는데 힘쓰자’고 주장하였다. 승려들이 명예와 이익을 좇아 수도에 힘쓰지 않고 있는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불교 교리를 말하면서 마음을 볼 줄 모르고, 선 수행에만 몰두하여 교리에 어두운 것도 큰 문제라고 보았다. 이것을 지양하는 방법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였다.

정혜쌍수는 불교 수행의 핵심을 이루는 두 요소, 곧 정(定)과 혜(慧)를 같이 수행하자는 실천 운동이었는데, 그 바탕은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이었다. 지눌에 따르면, 깨달음에 이르면 인간의 본성은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돈오라고 하며, 비록 돈오하였다 해도 다겁(多怯)에 쌓여온 망습(妄習)은 갑자기 제거되는 것이 아니므로 점수(漸修)라고 하는 실천 수행이 뒤따라야 한다. 돈오에 입각한 점수는 정과 혜를 같이 수행하는 것이며, 정과 혜는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지눌은 이러한 돈오점수, 정혜쌍수의 법을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이리고 하였다.

나아가 지눌은 화엄사상을 끌어들여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을 세웠다. 원돈신해문은 자기 마음의 무명(無明) 분별(分別)이 곧 부처의 부동명지(不動明知)임을 신해하여 수행하는 법이다. 곧 화엄과 선이 근본에서는 둘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는 원돈신해문을 세우는 데 화엄종에서 방계로 보는 이통현(李通玄)의 화엄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성적등지문과 원돈신해문은 아직 어로(語路), 의로(義路), 문해(文解)의 자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다. 지눌은 이러한 지해(知解)의 장애까지도 완전히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그러기 위해 선문(禪門)의 활구(活句)를 탐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이다. 간화경절문은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라고도 하는데, 일체의 앎과 헤아림의 분별을 떠나 정·혜에도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지눌의 선이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였다. 이것은 대혜종고가 말한 간화선의 뜻을 받아들여 간화선법을 크게 발전시킨 것이다.

한편 지눌은 불교에 처음으로 입문하는 이들을 위하여,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이라는 입문서를 지었다. 지눌이 처음 결사를 위하여 동료들에게 권하자, 당시 세상을 말법시대라고 하며 거부하였다. 그러자 지눌은 정법이니 말법이니 하는 것은 삼승을 나누는 임시방편의 가르침이지 본성은 아니라고 하면서, 지혜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심성과 교리에 따라야 한다고 탄식하였다.

이런 초기부터의 문제의식은 입문자를 위한 기본적인 계율과 교리를 가르치는 책을 짓게 만들었다. 또한 수선사의 소문이 퍼지자, 당시 승려는 물론 신도들이 명예와 벼슬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도 버리며 입사하였는데, 왕과 공경, 선비는 물론 사서까지 신분과 계층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자 자연히 함께 수행하는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계초심학인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3단계로 나뉘어져 초심자와 일반 승려 그리고 선수행자를 위한 계율을 전하는데, 특히 초심자에 대해서는 마음가짐은 물론 말하는 법, 어른과 선배를 섬기는 법과 세수하고 밥먹는 법까지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지눌로부터 시작된 수선사는 이후 혜심대에 최씨 정권은 물론 왕실과 사대부에서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신망을 받았고, 이후 고려 말까지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큰 사찰이 되었다. 이른바 송광사 국사전(松廣寺國師殿)에는 1세 보조(普照), 2세 진각(眞覺), 3세 몽여(夢如), 4세 혼원(混元), 5세 천영(天英), 6세 충지(冲止), 7세 일인(一印), 8세 자각(慈覺), 9세 담당(湛堂), 10세 만항(萬恒), 11세 자원(慈圓), 12세 혜각(慧覺), 13세 복구(復丘), 14세 정혜(淨慧), 15세 홍진(弘眞), 16세 고봉(高峰)의 순서로 봉안되어 있다. 이런 명망은 조선까지 이어져, 태조대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은 물론 중기 선수(善修)와 각성(覺性), 수초(守初)대로 이어지고, 조선 숙종대 백암성총도 송광사를 중시하였다.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과 간화경절문, 삼문(三門)의 실천 체계는 이론보다 실천에 중심이 있으며, 지눌의 독창적인 선사상이다. 그는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고 깨달음 뒤에도 꾸준히 수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부처의 마음을 전한 것이 선이고, 부처의 말씀에 따른 것이 교이므로, 선과 교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선과 교를 함께 익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지해에서 벗어난 간화선을 추구하였다. 지눌에 이르러, 고려 불교는 교선의 절충 단계를 넘어 교선일치의 사상 체계를 마련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적 불교로 나아갔다. 또한 선의 입장에서 선과 교의 대립을 해소하고 깨달음과 닦음을 하나로 보는 한국 선사상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이런 지눌로부터 이어지는 사상은 현대 한국 불교의 중요한 전통이자 유산으로 면면히 계승되고 있으며, 함께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