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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도독부

백제의 옛 땅에 설치된 당의 지배기구

660년 ~ 676년

1 개요

웅진도독부는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이 그 땅을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였으나, 신라가 백제 영역을 완전히 차지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2 백제의 멸망

7세기 중반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태였다. 백제의 의자왕은 641년에 즉위하였는데, 642년부터 신라에 대한 맹공을 시작하였다. 642년 7월에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 등 40여개 성을 함락시켰으며, 같은 해 8월에는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때 대야성의 성주였던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은 처자와 함께 항복하였으나 백제는 이들을 모두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매우 슬퍼하였고, 백제에 대한 복수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김춘추는 642년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선덕여왕의 허락을 받아 먼저 고구려와의 동맹을 꾀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신라 진덕여왕 2년(648년), 김춘추는 당에 사신으로 가서 백제를 공격하는 것을 도와줄 것을 청하였고, 당 태종이 이를 허락하면서 신라와 당의 연합이 성사되었다.

당이 신라와 연합할 것을 결정한 것은 고구려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 태종은 645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정벌의 의지를 꺾은 것은 아니었다. 이에 고구려 정벌을 원하는 당과 백제의 멸망을 원하는 신라는 연합하여 서로의 적을 함께 공격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1차적인 공격 대상은 백제였다. 660년 나당 연합군은 백제 공격을 시작하였고, 당시 내부 분열에 휩싸여 있던 백제 지배층은 연합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백제의 장수 계백의 저항을 물리치고 바닷길을 통해 온 당 장수 소정방의 군대와 만나서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포위하였다. 의자왕은 측근을 데리고 웅진으로 피하였으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신라·당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백제는 멸망하였다.

3 당의 백제 옛 땅 지배와 웅진도독부

처음 신라와 당이 연합할 때, 당은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신라는 백제 땅을 차지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멸망한 후 일단 그 땅을 차지한 것은 당이었다. 당군의 대총관 소정방은 백제 영역에 5도독부를 설치하고 항복한 의자왕을 데리고 당의 수도 장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면서, 당의 지배는 유명무실해졌다. 복신(福信)과 도침(道琛)이 이끄는 부흥군의 기세는 대단하여, 당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곳이라고는 당 정벌군 장수였던 유인원이 당군과 함께 주둔하던 사비성 일대가 거의 유일하였다. 당군은 다시 신라군과 함께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려 하였고, 왜의 원군이 합세한 백제부흥군과 당·신라군의 대격전이 백강구에서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부흥군이 패배하면서 당은 백제 영역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하였으나, 부흥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백제의 영역 일부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당은 백제 영역에 대한 지배 체제를 재정비하였는데, 영역이 축소되어 이전의 5도독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웅진도독부만 1도독부로 설치하고 그 이하에 7주 51현을 설치하여 백제 땅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의자왕과 함께 항복하여 장안으로 압송되었던 백제 태자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여 보냄으로써 백제인들의 저항이 재발할 것을 방지하려 하였다. 또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하고 문무왕을 계림대도독으로 임명하면서 부여융과 문무왕에게 서로 영토를 다투지 않을 것을 취리산에서 맹약하게 하였다.

웅진도독부의 활동은 사서에 잘 드러나지 않으며,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단편적이다. 이는 백제 영역을 지배했던 웅진도독부가 삼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였으므로 『삼국사기』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백제 부흥군의 잔병들이 일으킨 산발적인 저항을 도독부에서 진압하였다거나, 혹은 백제인으로 웅진도독부의 관리였던 예군(禰軍) 등의 이름이 확인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후 웅진도독부에서 당군이 철수하자 웅진도독 부여융도 장안으로 돌아가고 670년대에 들어서 신라가 백제 영역을 모두 차지하게 되면서 웅진도독부의 짧은 백제 영역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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