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 한국사
  • Ⅵ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민중의 성장
  • ① 조선 왕조의 재건과 정치적 변화
  • 가. 정치·군사 제도를 바꾸다

조선의 통치제도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두 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거치면서 무너지거나 변화하였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사 업무를 담당하던 비변사가 크게 강화되어 권한이 확대되었다. 비변사는 군사뿐 아니라, 외교·산업·교통·통신 등 나라의 주요 업무를 관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비변사의 기능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의정부6조와 같은 기존의 행정 기구는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에 무력하게 무너졌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포수(총), 사수(활), 살수(창)을 양성하였다.

일본과 청에게 수도 한양을 점령당한 경험을 겪고 난 다음, 군사 제도도 한양과 그 주변을 지키는 오군영(5개 부대) 체제로 바뀌었다. 비변사오군영은 정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서인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왕의 권한도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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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수어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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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국사 1708 대동법 실시 1712 백두산에 정계비 세움 1725 영조, 탕평책 실시 1750 균역법 실시 1776 정조 즉위, 규장각 설치 1796 수원 화성 완성 1811 홍경래의 난 1832 서양 배가 처음 통상 요구 1860 최제우, 동학 창시 세계사 1688 영국, 명예 혁명 1729 청, 아편 판매 금지 1765 제임스 와트, 증기 기관 완성 1776 미국 독립 1789 프랑스 대혁명 1840 아편 전쟁 1854 일본, 미국에 개항 1857 인도, 세포이 항쟁 1861 미국, 남북 전쟁(~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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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요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정치, 사회는 변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이 심해지고, 하나의 붕당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적 폐단도 커져 갔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에는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인 실학이 일어났다. 또한, 민간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력이 중시되면서 신분 제도가 흔들린 한편, 서민적 사상과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도 혼란한 사회와 어려운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힘썼다. 정치·군사·조세 제도를 바꾸어 나라를 새롭게 하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을 줄이기 위한 탕평책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나, 개혁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오히려 왕실 외척이 권력을 장악한 세도 정치가 진행되어, 정치 기강이 흔들리고 부정 부패가 크게 퍼졌다. 그 결과 정치가 더욱 혼란해지고, 농민에 대한 착취와 폭정이 심해졌다. 이에 맞서 농민들의 저항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어 국가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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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Following the two major wars of the Japanese and the Manchu invasion(Byeongja Horan), the politics and society of Joseon underwent significant changes. Factional strife deepened and as one single faction began to monopolize power, political abuses increased. This resulted in the emergence of Silhak, the School of Practical Learning, which advocated social reforms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oseon. Also, with the development of civilian commerce, greater importance was placed on economic power, which led to the crumbling of the social status system. The doctrines and cultures centered on the general populace also emerged. The government, for its part, exerted efforts to reinvigorate the society and the economy that had undergone many hardships. The government also strived to stabilize the livelihood of the peasants by revamping the political, military and tax systems. The government engaged in the‘ policy of impartiality’, known as tangpyeongchaek, to resolve confrontations among the differing factions, but to no avail. Rather, Sedo politics, a unique, abnormal style of politics, where the power was manipulated by members of the queen’s family, unfolded during this period, which led to the tumbling of the political hierarchy and widespread corruption. This resulted in further political disturbances, and the exploitation and tyrannic acts against the peasants worsened. The peasant rose in defiance and the state experienced further chaos nation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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