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 한국사
  • Ⅵ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민중의 성장
  • ② 사회ㆍ경제의 변화와 사회 개혁론
  • 가. 산업이 크게 발달하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각 분야의 산업이 더욱 발달하였다. 농업에서는 농기구 개량과 비료의 개발 등으로 농사짓는 방법이 발달하면서 생산량이 늘어났다. 특히 보나 저수지 등 물을 댈 수 있는 수리시설이 많아짐에 따라, 논농사에서 모내기법이 널리 보급되었다. 모내기법은 김메기 등의 일이 쉬워 일손을 줄였고, 쌀의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밭농사에서도 보리나 조의 생산량이 늘어났다.

상업이나 수공업은 원래 국가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개인이 상공업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울이나 개성, 의주, 동래 등의 일부 상인들은 큰 자본을 가지고 상업을 독점하는 한편, 청이나 일본과 무역까지 하였다. 수공업이나 광업도 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상인들은 상업 활동을 통해 모은 돈을 수공업이나 광산 등에 투자하였으며, 공장이나 광산을 직접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당시의 세계는

산업 혁명 - 대량 생산 시대가 오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인류 역사를 바꾼 산업상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풍부한 자본과 노동력의 바탕 위에 기계의 발명과 기술 혁신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산업 혁명이라고 한다.
영국에서의 산업 혁명은 면방직 공업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18세기 말기와 19세기에 서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면서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대량 생산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기차·증기선·통신 기기 등의 발명으로 일상생활도 급속도로 편리해졌다.
산업 혁명으로 물질생활이 한층 풍요로워진 한편,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급속히 이동하여 도시 중심의 산업 사회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산업 혁명 초기 노동자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워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이 심해지는 등 노동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또한 실업이나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등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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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기의 공장
산업 혁명기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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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5일장을 찾아 이리 저리로

보부상은 조선 시대 나라의 허가를 받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던 상인들이다. 이들은 물건을 봇짐으로, 또는 지게에 지고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보부상은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였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도 마련하였다.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거나 국가가 요구할 경우에는 집단 행동에 나서서 그 힘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정기 시장인 장시가 발달하면서 5일장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보부상은 5일장을 찾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이 때문에 보부상은 ‘장돌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 세기 중엽 이후 5일장이 거의 사라지고 현대식 정착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보부상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보부상은 전통적인 생활 모습의 하나로, 소설이나 드라마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정보의 교환, 상호 협조, 경제의 활성화 등 우리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는 역동적인 경제 생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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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19세기 초)
보부상(19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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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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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주요 상인 근거지(한강, 개성, 위주, 동래)와 국경 무역 지역
전국의 주요 상인 근거지(한강, 개성, 위주, 동래)와 국경 무역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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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국사 1708 대동법 실시 1712 백두산에 정계비 세움 1725 영조, 탕평책 실시 1750 균역법 실시 1776 정조 즉위, 규장각 설치 1796 수원 화성 완성 1811 홍경래의 난 1832 서양 배가 처음 통상 요구 1860 최제우, 동학 창시 세계사 1688 영국, 명예 혁명 1729 청, 아편 판매 금지 1765 제임스 와트, 증기 기관 완성 1776 미국 독립 1789 프랑스 대혁명 1840 아편 전쟁 1854 일본, 미국에 개항 1857 인도, 세포이 항쟁 1861 미국, 남북 전쟁(~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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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요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정치, 사회는 변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이 심해지고, 하나의 붕당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적 폐단도 커져 갔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에는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인 실학이 일어났다. 또한, 민간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력이 중시되면서 신분 제도가 흔들린 한편, 서민적 사상과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도 혼란한 사회와 어려운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힘썼다. 정치·군사·조세 제도를 바꾸어 나라를 새롭게 하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을 줄이기 위한 탕평책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나, 개혁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오히려 왕실 외척이 권력을 장악한 세도 정치가 진행되어, 정치 기강이 흔들리고 부정 부패가 크게 퍼졌다. 그 결과 정치가 더욱 혼란해지고, 농민에 대한 착취와 폭정이 심해졌다. 이에 맞서 농민들의 저항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어 국가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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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Following the two major wars of the Japanese and the Manchu invasion(Byeongja Horan), the politics and society of Joseon underwent significant changes. Factional strife deepened and as one single faction began to monopolize power, political abuses increased. This resulted in the emergence of Silhak, the School of Practical Learning, which advocated social reforms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oseon. Also, with the development of civilian commerce, greater importance was placed on economic power, which led to the crumbling of the social status system. The doctrines and cultures centered on the general populace also emerged. The government, for its part, exerted efforts to reinvigorate the society and the economy that had undergone many hardships. The government also strived to stabilize the livelihood of the peasants by revamping the political, military and tax systems. The government engaged in the‘ policy of impartiality’, known as tangpyeongchaek, to resolve confrontations among the differing factions, but to no avail. Rather, Sedo politics, a unique, abnormal style of politics, where the power was manipulated by members of the queen’s family, unfolded during this period, which led to the tumbling of the political hierarchy and widespread corruption. This resulted in further political disturbances, and the exploitation and tyrannic acts against the peasants worsened. The peasant rose in defiance and the state experienced further chaos nation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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