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 한국사
  • Ⅵ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민중의 성장
  • ③ 민중의 성장과 항쟁
  • 라. 홍경래 난 - 지역 차별과 수탈에 맞서다

세도 정치 아래 탐관오리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이루어졌으며, 평안도 농민들은 그 위에 중국 사신에 대한 접대 등으로 더 큰 고통을 당하였다. 더구나 평안도 출신 사람들은 높은 관직에 올라가지 못하는 등 조선 초기부터 계속되어 온 지역 차별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평안도에서 몰락 양반홍경래가 난을 일으켰다. 이 난에는 농민뿐 아니라 광산 노동자, 수공업자, 상인, 날품팔이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난을 일으킨 반군은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관군의 반격으로 더 이상 세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패하였다. 그러나 홍경래 난세도 정치로 유지되던 조선 정부의 권위에 커다란 손상을 주었다. 홍경래 난 이후에도 사회 불만은 줄지 않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봉기가 잇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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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국사 1708 대동법 실시 1712 백두산에 정계비 세움 1725 영조, 탕평책 실시 1750 균역법 실시 1776 정조 즉위, 규장각 설치 1796 수원 화성 완성 1811 홍경래의 난 1832 서양 배가 처음 통상 요구 1860 최제우, 동학 창시 세계사 1688 영국, 명예 혁명 1729 청, 아편 판매 금지 1765 제임스 와트, 증기 기관 완성 1776 미국 독립 1789 프랑스 대혁명 1840 아편 전쟁 1854 일본, 미국에 개항 1857 인도, 세포이 항쟁 1861 미국, 남북 전쟁(~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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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요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정치, 사회는 변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이 심해지고, 하나의 붕당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적 폐단도 커져 갔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에는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인 실학이 일어났다. 또한, 민간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력이 중시되면서 신분 제도가 흔들린 한편, 서민적 사상과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도 혼란한 사회와 어려운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힘썼다. 정치·군사·조세 제도를 바꾸어 나라를 새롭게 하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을 줄이기 위한 탕평책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나, 개혁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오히려 왕실 외척이 권력을 장악한 세도 정치가 진행되어, 정치 기강이 흔들리고 부정 부패가 크게 퍼졌다. 그 결과 정치가 더욱 혼란해지고, 농민에 대한 착취와 폭정이 심해졌다. 이에 맞서 농민들의 저항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어 국가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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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Following the two major wars of the Japanese and the Manchu invasion(Byeongja Horan), the politics and society of Joseon underwent significant changes. Factional strife deepened and as one single faction began to monopolize power, political abuses increased. This resulted in the emergence of Silhak, the School of Practical Learning, which advocated social reforms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oseon. Also, with the development of civilian commerce, greater importance was placed on economic power, which led to the crumbling of the social status system. The doctrines and cultures centered on the general populace also emerged. The government, for its part, exerted efforts to reinvigorate the society and the economy that had undergone many hardships. The government also strived to stabilize the livelihood of the peasants by revamping the political, military and tax systems. The government engaged in the‘ policy of impartiality’, known as tangpyeongchaek, to resolve confrontations among the differing factions, but to no avail. Rather, Sedo politics, a unique, abnormal style of politics, where the power was manipulated by members of the queen’s family, unfolded during this period, which led to the tumbling of the political hierarchy and widespread corruption. This resulted in further political disturbances, and the exploitation and tyrannic acts against the peasants worsened. The peasant rose in defiance and the state experienced further chaos nation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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