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 제1장 개방적인 성, 혼인의 폐쇄성
  • 2. 혼인 관계의 사회화
  • 혼인의 과정
김선주

고대 중국은 중매인을 통하여 중매를 하고, 부모가 주혼자(主婚者)로 혼례를 진행하며, 그렇게 혼례한 남녀 결합만을 혼인으로 보았다. 그 외에는 분(奔) 또는 사통(私通)이라고 표현하였다. ‘중매’를 혼인의 성사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건국 설화를 비롯한 고대 삼국의 문헌 자료에서는 ‘중매’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남녀 당사자들에 의한 자유로운 교제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또한 중국 사서인 『삼국지』 「고구려조」를 보면 “장유와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라든지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밤이 되면 읍락(邑落)마다 남녀가 무리지어 서로 노래하며 논다.”고 하여 고구려에서는 남녀 사이가 비교적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시집 장가가는데 남녀가 서로 좋으면 바로 혼례를 치른다.”고 한 『수서(隋書)』나 『북사(北史)』의 설명에서도 남녀 결합이 비교적 개방적이고 자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남녀의 개방적인 결합은 고구려뿐 아니라 백제나 신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유신의 부모인 서현(舒玄)과 만명(萬明)이 길에서 만났는데 “서로 마음에 들어 눈짓으로 꾀어 중매를 거치지 않고 결합하였다.”24)『삼국사기』 권41, 열전(列傳), 김유신(金庾信).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문희 역시 김춘추와 정식으로 혼인 관계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김유신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기는 했지만 정식 혼인이 아닌데도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 없이 결합하였다. 태종무열왕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강수(强首)도 20세가 되어 부모가 혼인시키려 하자, 이전에 사귀어온 야장의 딸을 아내로 내세웠다.25)『삼국사기』 권46, 열전, 강수(强首). 원성왕 때의 김현(金現) 역시 신라 풍속에 따라 흥륜사 전탑을 도는 탑돌이를 하다가 한 처녀와 눈이 맞아 탑돌이를 마친 뒤 바로 정을 통하였다.26)『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 김현감호(金現感虎). 또한 「서동요」의 배경 설화에서 선화공주는 귀양 가는 길에 서동이 나타나 동행하겠다고 하자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기뻐하며 따라가 관계를 맺었고, 나중에 그가 서동임을 알고 나서야 동요가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에 서동을 따라 백제로 갔다.27)『삼국유사』 권2, 기이, 무왕(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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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례로 미루어 남녀의 결합이 비교적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합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관계를 맺은 뒤 자신의 집으로 따라온 김현에게 처녀는 자신이 호랑이라고 밝힌 뒤 “천첩(賤妾)이 낭군과 비록 유는 다르나 하루저녁의 환락을 모셨으니, 이는 부부를 맺은 것보다 중하다.”라고 말한다. 이는 물 론 두 사람이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결합을 혼인과는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부모의 의사가 크게 개입되었다. 서현과 만명은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결합하였지만 여자의 아버지인 숙흘종의 반대에 부딪혔다. 숙흘종은 딸을 가두고 지키게 했는데, 갑자기 벼락이 치는 틈을 타서 만명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서현과 결합할 수 있었다. 강수 역시 야장의 딸과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결합하였지만, 강수의 부모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강수를 집안 좋은 다른 여자와 혼인시키려 하였다. 문희와 관계를 맺어 임신하였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김춘추의 태도 역시 사회적으로 공식화되는 혼인 관계는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예이다.

설씨녀(薛氏女)의 아버지는 자신 대신 군역을 서 주고 딸과 혼인하기로 한 가실이 기한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다른 집에 시집보내려 하였다. 평강왕 역시 공주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주를 상부 고씨의 집안으로 시집보내려 하였다. 꿈으로 된 설화인 조신(調信)의 이야기에서도 김흔의 딸이 “내가 일찍이 그대의 낯을 알아 마음으로 사랑하여 잠시도 잊지 못하였으나, 부모의 명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을 따랐다.”고 한 것은 혼인에 있어서 오히려 부모가 결정권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고대 사회에서 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신분’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골품제가 운영되었던 신라는 물론이고 고구려와 백제에서 혼인은 신분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당서(唐書)』 「신라전」에 보면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며 아내도 또 그 정도 집안이라야만 되었으며, 낳은 자녀들도 제1골이 되었다. 첩잉(妾媵)이면 몰라도 제2골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은 없었다.”28)『당서(唐書)』 권220, 열전, 동이(東夷) 신라. 하여 신분내혼(身分內婚)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료에는 가끔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혼인을 성취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신분내혼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서현과 만명, 김춘추와 문희의 사례는 비록 집안의 지체에 차이가 있어 어려움은 있었지만, 진골이라는 신분의 금기를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신분의 벽을 넘어 공주와 사랑을 성취했다고 알려진 온달 역시 가난했다지만 공주와 혼인할 수 있는 신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나중에 온달은 임금에게 사위로서 인정을 받고 대형(大兄)이라는 벼슬을 받게 되는데, 이는 신분제 사회에서 그가 그 정도의 벼슬을 할 수 있는 신분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에 반해 김유신과 천관녀(天官女)의 사랑은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의 만류로 비극으로 끝났다.29)『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慶州府) 고적조. 천관의 존재에 대해 해석이 다양하지만, 혼인할 수 없는 신분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분내혼의 엄격성은 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라 하대 문성왕은 자신을 왕위에 오르게 해 준 절대적인 후원자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 하였는데, 신하들이 “궁복(장보고의 다른 이름)은 섬사람이거늘 어찌 그 딸로 왕실의 배우를 삼을 수 있겠냐?”고 반대하자 신하들의 의견을 따랐다.30)『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 문성왕 7년. 결국 이는 장보고의 난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낳았는데,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의 금기를 깨는 것이 어려웠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강수는 다른 여자에게 장가보내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처음 맺은 여자와 부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렇지만 강수가 죽은 뒤 여자가 나라에서 받은 것을 내놓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부부 관계는 유지했지만 사회에서 떳떳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아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데,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있었다 해도 신분제 사회에서 아버지의 적자로서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신분이 서로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불이익을 당했다. 통일신라시대에 헌강왕의 서자이면서 왕위에 오른 효공왕은 어머니의 신분 을 극복하고 왕이 된 최초의 인물이지만, 결국은 시해되고 말았다.31)『삼국사기』 권12, 신라본기, 효공왕 15년. 특히 효공왕이 천첩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신하인 은영(殷影)이 이를 간했는데, 왕이 듣지 않자 그 첩을 잡아 죽였다고 한다. 왕이 사랑하는 여자를 한낱 대신이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은 효공왕이 왕으로서의 권위를 발휘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고대 사회에서 일시적인 관계는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맺어질 수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혼인 관계를 형성할 때에는 부모에게 결정권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신분내혼이라는 규칙이 중요했음을 보여 준다.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결합하였다고 하더라도 신분이 다르거나, 신분이 같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일시적인 만남으로 그치거나, 공인받지 못한 혼외 관계로 남거나, 여자의 경우 첩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신분제 사회에서 부모가 주혼자로 혼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므로, 연애가 혼인으로 이어졌다고 하여 당시의 혼인 제도를 자유혼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혼인하는 계기가 중국처럼 반드시 중매로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당사자들끼리 자유롭게 결합하다가 혼인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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