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다 죽고, 생계가 지극히 가난한 집안에서 장성해도 시집가지 못한 사족(士族)의 집 딸들은, 그들의 형제와 족친(族親)에게 주혼(主婚)하게 하여, 날을 정하여 제때에 혼인하도록 재촉한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관리들이 올리는 건의 사항에 단골로 등장하는 항목이다. 국가는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들 자손 가운데 혼수 비용이 없어 혼인 못하는 사람들은 직접 혼수를 부담해 주고, 또 딸이 30세가 넘었는데도 혼인시키지 않는 집의 가장에게 벌을 주게 하였다.
나이가 들었는데 혼인하지 못한 여자가 많으면, 그 여자들의 원망이 ‘조화로운 기운(和氣)’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 당시 적극 혼인을 권장하는 표면적인 이유였다. 조선은 부계적인 가족 제도로 여성에게 강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한편, 그들에게 기초적인 생활 여건을 마련해 주는 수준 높은 책임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