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 제3장 정비된 혼인, 일탈된 성
  • 1. 올바른 혼인
  •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혼인인가
  • 과부는 재가할 수 없다
이순구

“부부는 인륜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부인은 삼종(三從)의 의미는 있지만 다시 시집가는 이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대부의 정식 부인 가운데 남편이 죽었거나 버림을 받았을 때, 혹 부모의 뜻에 따라, 또는 자신이 매파를 두어 그 남편이 둘 또는 셋에 이르니, 이는 절개를 잃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으로 풍속에 누(累)가 됩니다. 바라옵건대 양반의 부인 가운데 세 번 시집간 자는 법에 따라 자녀안(恣女案)에 기록하여 부인의 도를 바로 하십시오.”130)『태종실록』 권11, 태종 6년 6월 정묘. 이는 태종 때 등장하기 시작한 재가녀(再嫁女) 문제이다. 그러나 앞의 신하들 건의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세 번 시집가는 자’를 문제 삼는 데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종 때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경국대전』이 완간되기 8년 전인 1477년(성종 8)에 조정에서는 며칠 동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양반 여자로서 일찍 과부가 된 데에다가 부모마저 돌아가셔서 살아갈 방도가 막연하고 돌아갈 곳조차 없어 부득이 재가한 사람이나, 부모의 명 령으로 수절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식도 있고 또 집도 가난하지 않은데, 스스로 재가한 여자들은 세 번 시집간 예로 논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131)『태종실록』 권82, 태종 8년 7월 임오.

이때 논란의 요지는 삼가녀(三嫁女)는 반드시 법으로 다스려야 하지만 재가녀는 경우에 따라 선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당시 논의에 참여한 관료들의 의견을 보면 대체로 재가는 반드시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다수 의견에도 1485년(성종 16)에 반포된 『경국대전』에는 재가 자손에 대한 금고(禁錮)의 법이 실렸다. 그 내용은 ‘재가했거나 실행한 부녀자들의 아들과 손자, 서얼의 자손들은 문과를 볼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양반 여성들의 재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억제했던 것은 부계적인 가족 질서의 계통을 확고히 하고자 해서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