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 제3장 정비된 혼인, 일탈된 성
  • 1. 올바른 혼인
  • 부부 관계
  • 우호적 부부 관계의 가능성
이순구

조선의 부부들은 극단적으로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혼인의 결합성이 공고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녀는 인륜(人倫)의 시작이기 때문에 혼인할 때부터 신중을 기해야 했고, 또 나아가서는 헤어지는 것이 거의 용납되지 않았다. 국가는 부계적인 가족 제도에 따라 사회가 운영되는 것을 이상으로 한 만큼 가족의 안정성을 절대시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 관계도 잘 유지되기를 바랐고, 그래서 가능한 한 이혼을 할 수 없게 하였다.

흔히 조선시대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고 해서 여자들이 쉽게 쫓겨났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이 칠거지악으로 부인이 쫓겨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칠거지악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여성을 철저히 교육했을 뿐만 아니라 자식을 낳지 못하면 양자 제도 같은 대안을 두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혼 가능성이 희박했으므로 부부는 상황에 적응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혼인이 개인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조선의 부부를 더 심한 갈등 관계에 놓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집안 대 집안의 결합이라는 것은 오히려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부모는 충분히 숙고한 끝에 환경이 비슷한 사람과 혼인을 맺어 주었던 만큼, 부부는 문화적 배경이 유사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근대 이후에서처럼 개인적인 갈등으로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부부라고 해도 동거 비율이 매우 낮았던 것이 부부 갈등이 첨예화하는 것을 막아 주는 데에 일조하였다. 사실 오늘날처럼 부부가 한 방에 거주하는 문화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조선에서는 남귀 여가혼으로 혼인하면 남자가 처가와 자신의 본가를 오가는 생활을 꽤 오랫동안 지속하게 되는데,138)조선 말기의 경우에도 대략 이 기간은 1∼2년 정도였다. 그렇다면 조선 초기나 중기에는 더 길었을 확률이 높다. 이 동안 부부는 가끔 만나 합방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혼인 형태뿐만 아니라 남편이 관직 생활을 해서 지방으로 파견 나가거나 유배라도 가게 되면 부부는 몇 년씩 떨어져 있어야 했다. 앞에서 소개한 유희춘도 40년 동안 부부 생활을 했는데, 동거 기간은 20년이 채 안 된다고 했다.139)이성임, 「16세기 양반 관료의 외정」, 『고문서연구』 23, 2003. 이는 그의 유배 생활과 외직(外職) 파견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부부에게는 계속 부딪치면서 갈등을 겪을 요인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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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시대 양반 집은 아주 가난한 경우가 아니면 으레 안방과 사랑방이 구분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부부가 나쁜 관계를 만들거나 지속시 키지 않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공간 분리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소원함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존중감을 유지하고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데는 오히려 유용했을 것이다.

또한 부부의 역할이 잘 분담되어 있었던 것도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는 부부간에 서로 삼가는 데서 시작된다. 집을 지을 때에 내외를 구분하여 남자는 바깥에 거처하고 여자는 안쪽에 거처하며 문단속을 철저히 한다. 남자는 함부로 내당(內堂)에 들지 않고 여자는 밖에 나가지 아니 한다.”, “남자는 집안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고 여자는 밖의 일을 말하지 아니한다.”140)『예기』 권12, 내칙.는 등의 『예기』 「내칙」의 글들은 조선시대 부부 역할 구분의 엄격성과 그에서 비롯된 권한의 분담, 부부 각자의 책임성들을 짐작하게 해 준다. 역할이 잘 구분되어 있고 그 경계가 명확한 것은 양자 사이에 갈등이 오히려 적게 할 수 있다. 즉, 부부간의 역할 구분은 부부 관계가 좋게 유지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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