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공도에서는 선비와 평민의 자제가 공부하였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싶은 이가 공부한 것이다. 따라서 과거 급제에 뜻이 없거나,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이는 이곳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었고, 공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문헌공도에 속해 공부하는 이는 주로 재경(在京) 관인의 자제였다.
드물지만 지방 출신 인사가 사학에 소속되어 공부하는 일도 있었다. 이승장(李勝章)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주선으로 개경으로 올라와 문헌공도의 솔성재(率性齋)에 유학하고 1168년(의종 22) 봄에 대사성 김돈중(金敦中)의 문하(門下)에서 두 번째로 급제하였다. 공부하기 위하여 지방에서도 문헌공도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규보는 14세 때 문헌공도에 들어가 공부하였다고 한다. 이규보는 능력이 출중한 덕분에 어린 나이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한 지 2년 만에 사마시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고 한다.